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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공주 공산성 입장료, 고마열차와 쌍수정 단풍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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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입장료, 고마열차와 쌍수정 단풍

 

 

백제 역사투어로 방문한 공주와 부여,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와 세 번째 도읍지인 웅진성과 사비성이 있는 백제역사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관광도시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왕도와 밀접한 유적으로 웅진(공주) 시대의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사비(부여) 시대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그리고 수도인 사비를 보완하기 위해 금마저(익산)에 조성된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주의 첫 번째 여행지로 찾은 공산성.

백제는 500여년을 도읍지로 삼았던 한성 백제시대를 마감하고 고구려군에 쫓겨 내려와 두 번째 도읍지로 삼았던 곳(475~538)이 바로 웅진성이며, 이곳이 바로 공산성입니다.

아마도 공주로 여행가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일 것 같습니다.

 

1500여년 전 백제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있는 웅진성인 공산성의 입장료와 주차장 그리고 공산성 풍경을 담았습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B.C 18)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하해 내려와 한강유역인 위례성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첫 번째 도읍지인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이끈 3만 대군에 도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은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고구려군에게 함락되기 직전 개로왕의 동생인 문주(후에 웅진천도하여 문주왕이 됨)는 신라에 원병 1만명을 얻어 돌아왔으니 이미 한성은 함락된 뒤였습니다.

 

 

백제는 웅진천도를 하게 되고, 이곳에서 두 번째 백제의 도읍지를 정했습니다.

475년부터 538년까지 60년 가까이 웅진성으로 도읍을 정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 요충지로는 손색이 없었으나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협소하여 성왕 시대인 538년에 부여인 사비성으로 사비천도를 하게 되었고, 660년 신라에 멸망해 680여년의 백제역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공산성 진입로에 있는 백제 무열왕릉 연문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렸습니다.

조선 선조와 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산성 입구에 있는 무령왕 동상

 

공주시는 무령왕릉 발굴 50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맞아 지난 9월에 무령왕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날 무령왕 동상 제막식을 진행하면서 무령왕을 기억하기 위한 기억상자를 동상 밑에 매립하여 50년 후인 2071년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은 1971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무열왕이 묻힌 왕릉이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이곳에서 수많은 백제 유물이 쏟아지면서 자료가 부족하던 백제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발굴기술이 부족해서인지 17시간 만에 발굴 조사를 마무리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공산성 관람을 위한 입구는 금서루입니다.

 

공산성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방문했을 당시 11.13일엔 야간개장함)

휴무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료(입장료) 성인 1,2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600원(현재 코로나로 무료입장)

주차장 무료(사진 우측으로 가면 공산성 주차장 있음)

 

고마열차

공산성 매표소에서 고마열차를 타고 공주 백제역사지구를 돌아 볼 수 있습니다.

 

고마열차 운행시간은 10:00~17:00(점심 12~13:00 미운행)까지 정시에 출발하며, 코스마다 내려 관람 후 다음 열차를 타는 식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3~11월 주말과 백제문화제기간에만 운행)

 

 

65세 이하는 3,000원, 청소년 2,000원, 36개월 이상 어린이는 1,000원입니다.

경로와 수급자, 장애인, 유공자는 50% 할인되며, 눈이나 비가오면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성에서 출발하여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 공주한옥마을, 고마, 국립공주박물관까지 가서 돌아오는 코스로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공산성 입구

 

공산성 475년에서 538년까지 63년 동안 두 번째 백제의 도읍지였고, 백제 무왕 31년(630) 서비(부여)의 궁궐을 수리할 때 5개월 동안 머물렀고, 660년 백제 멸망기에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머물기도 했습니다.

 

이후 웅진도독부, 통일신라시대 옹천주의 처소, 조선후기에는 충청감영, 이괄의 난에는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산성 내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와 임류각과 연지 등의 백제 왕궁관련 유적, 4개의  문지(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영은사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2015년에 백제역사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산성 진입로에는 비석군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인데요.

대부분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들로 총 47기가 세워져 있네요.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

지금은 사실상 공산성의 정문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993년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자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라네요.

 

공산성은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후 웅진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입니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만든 천영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에 이릅니다.

 

금서루에서 바라본 공주시 금성동 백미고을 음식문화거리 모습

 

공산성 성벽은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쌓은 석성이 함께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석성으로 다시 쌓았습니다.

 

고려시대에 공주로 온 어떤 안렴사가 금강가의 정저에 올라 금강의 물줄기와 산세를 감탄하여 어깨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던 안무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입니다.

 

금서루와 공산성 성벽 모습

 

전방으로는 공산정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백제큰다리와 금강

 

백제큰다리와 금강교

금강교 아래에는 미르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금강교 아래 미르섬

공주시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인 백제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이며, 가을엔 핑크뮬리가 장관을 이룬다는 곳입니다.

 

공산정 모습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강

 

아래쪽으로 보이는 문은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모습이며, 이 일대가 바로 백제시대 두 번째 왕궁이 있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한쪽엔 여전히 유적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주 시내 모습

반대편은 구시가지로 보이며 현재 사진 찍힌 부분은 신시가지인 듯합니다.

 

미르섬 앞에 작은 섬이 형성되어 있네요.

 

백제 왕궁터 모습

 

공북루 옆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공산성에 있는 깃발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랍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신도는 백제가 중국 남조와의 국제교류를 한 것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신도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습니다.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금강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주출입문입니다.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1603년(선조 36)에 공산성을 크게 고쳐 쌓고, 이때 공북루와 그 옆에 월파당을 함께 지었습니다.

 

공북루 앞에 있는 이 광장이 백제시대 대규모 왕궁관련 유적지입니다.

 

그동안 발굴조사로 백제가 웅진천도한 475년부터 만들어진 70여동의 기와 건물지와 도로, 축대, 배수로, 저수시설, 목곽고, 석축연못, 철기 공방지 등의 시설이 확인되었는데요.

현재의 모습은 평평하지만 원래의 모습은 사방에서 물길이 모이는 골짜기였다고 합니다.

 

한 5년 전에 백제문화제할 때 이곳 공산성을 방문했는데요.

축제 때에는 이곳 물길에 다리를 놓아 야경이 멋지게 펼쳐지곤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백제문화제를 찾고 싶어질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공주축제]성대하게 열린 64회 백제문화제 축제다녀왔어요

공주 야경선물세트, 로맨틱 백제별빛정원축제 이모저모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공산정

 

왕궁터에 있던 연지

 

왕궁 중심건물지

 

백제 최후의 날에 남겨진 철갑옷이 발견된 지점

 

2011년 공산성 유적발굴 현장에서 정관 19년(645년)이라는 글자가 적힌 백제시대 옻칠 갑옷이 발견되었습니다.

15년 후인 660년, 의자왕이 몸을 피했던 공산성이 당나라 군사에 의해 무참히 점령되고 백제가 망하게 됩니다.

그때 최후의 격렬한 싸움 끝에 남겨진 유물로 추정된답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부여 사비성이 함락되자 의자왕은 천혜의 요새였던 웅진성으로 피신했지만 항전 5일 만에 당나라에 항복했습니다.

믿었던 예식진 장군이 배신을 해서 의자왕은 당나라에 끌려간 지 얼마 안 되어 고국을 그리며 죽은 비운의 왕이 되었고 예식진은 당나라로 건너가 높은 벼슬을 했다고 합니다.

 

왕궁터를 가로지르면 출발했던 금서루가 나옵니다.

 

공산성은 고려시대 민중봉기였던 망이 망소의 난이 일어났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금은 세공품을 만들거나 도자기, 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소라고 하는데 공주에는 명학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살던 망이, 망소 형제가 1176년(명종 6) 귀족들의 횡포와 차별에 항거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공산성을 점령하고 반란의 본부로 삼았으며 정부에서는 이들을 달래려고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주었지만, 불만에 찬 이들은 충청도 일대를 휩쓸어 나갔지만, 곤군들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화가 나는 이야기는 권선징악과 반대되는 이야기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다시 반대 방향인 진남루로 향했습니다.

 

아울러 공산성은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공주에 웅주도독이란 관리를 두었는데요.

통일신라 후기엔 왕족관의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일어나는데, 이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헌창이 웅주를 거점으로 신라왕실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정안국이라는 나라 이름까지 짓고 백제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처음에는 큰 기세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신라 정예군의 피격을 받아 웅진성에서 패하고 김헌창은 자결했다고 하네요. 

 

공산성은 고려 현종과도 밀접한 역사가 있습니다.

 

고려 8대 임금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거란족의 침입을 받아 1011년(현종 2)에 급히 전라도 나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공주를 거치는데 공주절도사 김은부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임금에게 옷을 바치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그 후 거란족이 물러나자 개경으로 환궁하던 길에 다시 공주에서 6일간 머물렀고, 그런 인연으로 김은부의 세 딸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건 당시에는 인연이었을 줄은 모르겠으나 지금 같으면 악연이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아직 유적을 발굴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산 위에도 백제 건물지가 발견되어 있습니다.

 

공산성 남문인 진남루

 

공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와 공북루는 성문이 남아 있었지만,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습니다.

지금의 진남루는 1971년 전부 해체하여 다시 세운 것입니다.

 

공산성 진남루

 

금서루 쪽으로 성벽 위를 걷습니다.

 

공주 시가지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산성 쌍수정이 있는 백제 건물터

 

공산성 백제 연못

인공연못으로 빗물을 받아 저장하여 연못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소방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연못 깊이와 너비가 상당하네요.

 

쌍수정이 있는 이 터는 백제시대 목곽고가 있던 자리입니다.

목곽고는 식품이나 물품 등을 보관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백제시대 저장시설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도 백제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터가 있습니다.

웅진시기 백제 왕궁의 중요시설이었던 것입니다.

 

공산성 쌍수정 모습

단풍이 곱게 물들어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인절미의 고장 공주

 

인절미는 찹쌀을 시루에 익혀 절구에 찧은 다음 콩고물에 묻혀 먹는 떡인데요.

인절미에 얽힌 이야기를 보니 공주떡이 바로 인절미라고 합니다.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1624년에 잠시 공주에 온 적이 있습니다.

피난 중 우성면에 살던 임씨가 인조에게 콩고물이 묻힌 떡을 바쳤는데, 맛있다며 이 떡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답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임씨 댁에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임씨라....그것 참 맛이 절미로다'라고 하여 임절미로 불렀고, 발음하기 어려워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쌍수정 단풍이 참으로 곱습니다.

 

공산성 쌍수정

쌍수정은 충청도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영조 10)에 인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입니다.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서 인조가 6일간 머물렀는데,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윽고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그루의 나무에게 정 3품 벼슬을 내렸다고 하네요.

나무가 사람보다 백번 천번 낫습니다.ㅎㅎ

 

이후에는 공산성을 쌍수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수항이 부임하여 나무가 있던 자리에 삼가정을 세웠고, 이 건물이 쌍수정입니다.

 

금서루 방향으로 다시 내려갑니다.

 

출발했던 금서루에 도착했습니다.

 

 

공산성은 백제의 두 번째 도읍이었던 웅진성으로 풍경 좋은 성곽을 걷는 재미도 있고, 공산성과 관련된 인물들, 백제역사 등을 조금씩 배워가는 기분으로 걸으면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공주여행의 일번지, 공산성 너무 좋았네요.

 

저녁에 백미마을 음식문화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야경이 멋져 잠시 또 공산설 일부를 걸었습니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웅진성, 공주 공산성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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