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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조선 5대 궁궐 중 임금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 창덕궁의 겨울이야기

by 휴식같은 친구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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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대 궁궐 중 임금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 창덕궁의 겨울이야기

 

 

차가워진 날씨, 1년에 두 번 모이는 친구들과의 부부모임을 위해 1박 2일 일정을 시작한 가운데 처음 방문한 곳은 조선 5대 궁궐 중 임금이 가장 오래 머물었던 창덕궁을 다녀왔습니다.

 

겨울이라 배경보다는 창덕궁의 전각을 주로 보며, 역사를 이해하는 관람이었던것  같습니다.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로 1405년(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궁궐입니다.

 

처음에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리웠고 경희궁은 '서궐'이라 불리웠습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다시 짓는 과정에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기도 하죠.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죠.

 

동궐도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 그림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과 순조 34년에 중건된 통명전 경복전 건물은 없고, 터만 그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작 연대는 1826년 ~ 1828년 경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열여섯 폭의 비단에 먹과 채색 물감으로 당시 궁 안에 실재했던 누정, 다리, 담장은 물론 연못, 괴석 등의 조경과 궁궐외곽의 경관까지 세밀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화원들의 뛰어난 화공기법과 정밀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에 동궐도는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궁궐 연구와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창덕궁 소개)
창덕궁 관람시간2~5월과 9~10월은 09:00~18:00, 6~8월은 09:00~18:30, 11~1월은 09:00~17:30입니다.
창덕궁 휴궁일(휴관일)매주 월요일입니다.

 

아울러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어로 해설해 주는 시간도 있으니 확인하고 가시면 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생길 겁니다.
창덕궁 관람요금(입장료)성인은 3,000원, 만 24세 이하/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통합관람권은 10,000원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등을 3개월 내 모두 입장할 수 있으니까 참고하세요.


참고로 창덕궁 은 전각과 다르게 별도의 예약과 입장료가 있는데요.입장료 3,000원 외에 5,000원의 요금이 추가됩니다. 소인은 2,500원입니다.주말 예약은 정말 어렵습니다. ㅎㅎ
후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조선 최고의 정원, 창덕궁 후원의 겨울이야기

 

 

그리고 창덕궁 주차장은 현재 공사로 인해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더라구요.인근의 원서공원 공영주차장이나 종묘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해서 불편하니까 대중교통이 최고인듯 싶습니다.담장 밖의 원서공원 주차장은 최초 30분 2,000원, 이후 15분당 1,000원입니다.
창덕궁 주차장이 개방되면 관람권을 제시하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대신 승용차 요일제 시행차량만 주차할 수 있습니다. (창덕궁 정문 나오는 곳에서 주차확인)

창덕궁의 배치도 및 창덕궁 관람코스돈화문 - 궐내각사 - 금천교 - 인정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낙선재 순으로 되어 있는데요.경복궁은 일직선상에 건물배치를 하였지만 창덕궁은 기존의 자연을 그대로 살려 직선이 아닌 점이 차이납니다.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보물 383호) 모습입니다.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있어서 궁의 진입로인 궁궐의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가장 큰 대문이기도 합니다.
엄청 추운 날씨라 관람객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돈화문을 지나면 궐내각사가 나옵니다.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으로 궐 내에 있다고 하여 궐내각사라고 한다는군요. 

 

인정전 서쪽에 자리잡은 궐내각사에는 동편에 약방,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있고, 서편에 대유재, 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근위 관청으로 여러 부서가 밀집되어 있는 곳입니다.

 


금천교(보물 1762호)는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창덕궁 창건 후 6년 뒤에 지어졌는데 그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궁궐 안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인 인정문(보물 813호) 인데요.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왕위에 오른 곳입니다.

 

인정전(국보 225호)창덕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의 접견 등을 치르던 곳이죠.
인정전은 겉보기엔 2층이지만 내부는 통층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이 인상적입니다.

 

마루는 원래 흙바닥에 전돌을 깔았는데 지금은 마루로 되어 있습니다.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은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하네요.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바꾼 것입니다.

 

1405년에 지어졌다가 1418년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에 재건, 1803년에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정전 안에는 임금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곡병과 일월오악도라는 병풍이 있습니다.일월오악도의 해와 달은 임금과 왕비를, 다섯 개의 봉우리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표시해 국토를 의미합니다.

 

성전전으로 통하는 문인 선정문 모습입니다.

 

선정전(보물 814호) 모습입니다. 임금의 집무실로 쓰던 곳이죠.


신하들과 함께 일상업무를 보던 편전으로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리웠다가, 1461년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라는 의미의 선정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정전 또한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으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한 곳입니다.

 

희정당 앞 마당 모습입니다.

 

희정대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공사중인 관계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뒤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하던 희정당(숭문당 : 보물 815호) 입니다.


원래 편전인 성전전이 비좁아 편전의 기능을 대신한 곳입니다.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입니다.
의자와 탁자가 있는 모습이 우리의 궁궐과는 사뭇 달라보이는데요.근대화의 물결이 인정전과 같이 희정당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가 담겨있는 침전인 대조전(보물 816호)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죠.원래 대조전 주변에는 수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적인 현장입니다.
이곳도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입니다.

 

대조전 뒤쪽의 건물 모습입니다.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엽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낙선재(보물 1764호)가 있는데 이곳은 너무 추워 가보지를 못했네요.

이곳은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 였습니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1847년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 등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습니다.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집이었는데, 후궁을 위해 궁궐 내에 건물을 새로 짓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창덕궁을 관람하다가 너무 추워 창덕궁 찻집(카페)동궐마루에 들어가 잠시 추위를 달래 봅니다.

겨울에 유일한게 따뜻한 공간이 이 동궐마루가 아닌가 싶네요.

 

추운 날씨였지만 창덕궁 전각과 후원을 관람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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