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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김포 가볼만한 곳, 덕포진

by 휴식같은 친구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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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가볼만한 곳, 덕포진

 

 

저번 주에 포근한 봄날, 오랜만에 김포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에 가면 병자호란 이후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방어시설을 구축하면서 5개의 진과 7개의 보 그리고 52개의 돈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강화도 동편인 김포에도 동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덕포진과 덕포진 돈대가 있습니다.

덕포진 또한 강화해협을 통해 서울에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양쪽에서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입니다.

 

강화도의 진, 보, 돈대를 관람하면서 맞은편에 있는 덕포진에 언제 한 번 다녀오려고 마음먹다가 이번에야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덕포진 이야기 시작합니다.

 

덕포진은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대명항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덕포진 관람안내

 

관람시간 제한없음

관람료(입장료) 무료

휴무일 없음

주차장 무료

소요시간 60여분

 

덕포진에는 돈대와 포대 밒 파수청이 있었으며,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조선 선조 대로 추정), 1679년(숙종 5)에 강화도 광성보와 덕진진, 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되었습니다.

강화에 소속되었다가 1666년(헌종 7)에 통진으로 옮겨 소속되었다고 합니다.

 

 

병인양요(1866) 때에는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1871) 때에는 미국과 싸웠던 격전지로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 하고, 1981년 발굴과 복원사업을 하였습니다.

 

덕포진에는 입구에 덕포진 전시관이 있고, 야외학습장, 3개의 포대, 파수청터, 손돌묘, 덕포진 돈대터 등이 있으며, 덕포진 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진 곳입니다.

 

덕포진 주차장 앞에 있는 덕포진 전시관

현재 코로나 거리두기로 실내 관람은 불가능해서 다소 아쉬웠네요.

 

덕포진전시관 관람시간이 09:00~18:00이며, 휴무일은 설과 추석 당일에 휴관하고,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덕포진전시관에는 중포와 소포의 실물을 볼 수 있고, 덕포진 포대 전시상황 및 포대모형도 재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밖에 조선전서나 손돌의 전설 전자북, 우저서원, 홀기 등의 유물과 통일신라시대(단경호, 양이부소호), 조선시대(백자동자상, 백자표형병, 백자대접, 백자장군)의 유물들과 수안산성, 동성산에서 출토된 기와, 청동제말, 석기, 석총, 니탄층 등이 전시되어 있고, 덕포진 포대 발굴현황에 대한 영상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덕포진 야외학습장이 있습니다.

쉼터로 많이들 이용하고 있네요.

 

덕포진 야외학습장 앞에서 바라본 강화해협과 강화도 모습인데, 전방 바로 맞은편이 덕진돈대와 남장포대가 있는 덕진진입니다.

 

[강화도 여행] 덕진진 (덕진돈대, 남장포대)

 

덕포진 돈대터로 가는 길

철쭉으로 보이는 식물이 있는데, 봄에 꽃이피면 무척 예쁠 것 같습니다.

 

덕포진의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꽃 등이 무척 예쁜 모습이라고 하니, 4월에 방문하면 덕포진의 꽃잔치가 열리겠네요.

 

덕포진 포대로 내려가는 길

 

첫 번째 포대는 덕포진 '가'포대로 총 7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화도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여행] 초지진 / 초지돈대

[강화도 여행] 덕진진 (덕진돈대, 남장포대)

 

발견된 포에서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포의 무게, 화약의 용량과 함께 고종 11년(1874) 운현궁에서 제작되었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강화도의 덕진진 등에는 실제 포 모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은 빈 포대만 덩그러니 있어서 다소 아쉽습니다.

 

덕포진 '가' 포대 모습

발굴조사 당시 중포 2문이 발견되었는데, 1문은 고정식 포가에 걸려 있는 채로 발굴되었습니다.

 

덕포진 '가'포대 앞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곳은 김포함상공원과 대명항 대명포구입니다.

철책을 따라가는 길은 김포 평화누리길이랍니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덕포진 '가'포대

 

2~3분 더 걸어가면 덕포진 '나' 포대가 나옵니다.

'나' 포대는 총 5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고, '가'포대와 마찬가지로 강화도 초지진과 덕진진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1980년 발굴 당시 5번째 포대에서 고종 11년에 만들어진 소포 2문과 중포 1문이 출토되었습니다.

 

덕포진 '나'포대 앞 논에는 수많은 청둥오리 떼(정확하지 않음)가 있어서 나들이객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2~300여 마리가 함께 있는데, 장관이더군요.

 

덕포진 '나' 포대 모습

 

해안선으로는 북한과 인접해 있는 곳이라 군사용 철책선이 쳐져 있습니다.

 

이곳은 마지막 포대인 덕포진 '다' 포대입니다.

총 3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고,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 포대는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는데, 당시 발견된 기와에 근거해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1980년 발굴할 때 고종 11년에 만들어진 중포 1문이 고정식 포가에 걸려있는 채로 발굴되었습니다.

 

'다' 포대를 지나면 파수청과 손돌묘, 덕포진 돈대터가 나옵니다.

 

이곳이 덕포진 파수청입니다.

파수청은 지휘소이자 포를 쏘기 위한 불씨를 관리하는 장소인데요

 

이 유적지는 1980년 덕포진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건물터로,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추정되며,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성벽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7개의 포탄과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 2개가 출토되었고, 건물터 안에서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되었습니다.

 

파수청의 명칭은 1871년 통진부 읍지에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덕포진 내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명칭이라고 합니다.

고지도에는 포청, 포사청, 덕포진으로 표기되어 있다네요.

 

파수청 위 전망좋은 곳엔 손돌묘가 있습니다.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에 위치한 고려시대 뱃사공 손돌의 무덤입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 갈 때 이 지역의 물길을 잘 알던 손돌의 안내로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손돌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을 내립니다.

 

손돌은 죽음을 직면하면서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한 고려 고종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 부르고 있답니다.

 

 

손돌의 기일은 음력 10월 20일, 추운 바람을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한이 서린 바람이라 하여 손돌이 바람이라 하고, 이때의 추위를 손돌이추위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원래 이곳에 손돌을 모시던 사당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제사도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1970년도에 주민들이 손돌 묘를 다시 세우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손돌묘에서 바라보이는 광성보의 용두돈대 모습

그 앞 물길이 세차게 흐르는 곳이 바로 손돌목입니다.

 

손돌목은 안면도, 염창동과 함께 난파 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빠른 곳입니다.

1395년에는 조운선 16척이, 1403년에 30척, 1414년에 60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고 합니다. 

 

잔잔해 보이는 강화해협에 유독 물살이 빨라 보이는 곳이 바로 손돌목입니다.

 

뱃사공인 손돌은 위험한 물길을 알고 있었으나, 고려 왕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오해를 하여 결국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손돌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파오네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강화도로 피난가는 주제에 자기를 살리기 위해 배를 운전하는 백성을 죽인다는 사실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해협으로 튀어나온 곳이 용두돈대이고 좌측에 손돌목돈대가, 앞으로 광성보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두돈대 위쪽에 보이는 산은 김포 문수산입니다.

 

[강화도 여행] 광성보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철책초소가 있는 이곳은 덕포진에 속한 돈대터입니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경계하고 방어하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곳에 보루를 만들고 화포를 비치한 소규모 방어시설을 말합니다.

 

 

1980년 발굴 당시 이곳에서 돈대를 위한 시설의 하부구조가 확인되었으나, 돈대의 설치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곳은 해안 쪽으로 돌출된 지형이라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강화의 덕진진 남장포대, 광성보 용두돈대와 삼각 대형을 이루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강화도 덕진진 모습

 

초지대교와 초지진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덕포진 돈대터에서 바라본 해안 철책로 모습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이곳 덕포진.

당시에는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조선의 생사가 달린 엄청난 전쟁의 시기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평화롭기만 한 풍경좋은 관광지가 되어 있네요,

 

능력없는 고려시대의 왕을 인도한 손돌의 억울함이 왠지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1.5km에 이르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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