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박물관과 용주사 기획전시
지난주에 딸아이의 역사교육을 위해 수원 화성에 다녀왔습니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보기 전에 수원화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 수원 화성박믈관으로 갔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찾는 방문객에게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와 더불어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전문박물관입니다.
동.서양 성곽들의 장점과 조선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건설한 수원화성의 아름다움과 우수성,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정신을 알리기 위한 박물관이죠.
마침 정조대왕 서거 220주년을 맞아 정조의 부모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내외의 무덤이 있는 융건릉의 융릉의 원찰로 만들어진 용주사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더군요.
수원화성박물관과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는 용주사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행궁 앞, 수원 팔달구청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 주차장이 있긴 한데요.
30분에 600원, 추가 10분당 300원으로 1시간에 1,500원, 2시간에 3,300원입니다.
(토요일과 휴일은 무료개방)
수원에 하루 종일 주차를 해야 해서 무료주차장을 찾았습니다.
팔달구청은 주말과 휴일엔 무료개방을 하고 있다기에 갔는데, 만차였습니다.
다행히 팔달구청 뒤편, 삼일중학교와 삼일공고 앞에 공공건축물이 들어서는 공사장이 있는데 이곳은 무료주차로 개방을 하고 있어서 주차를 했습니다.
수원 화성박물관과 팔달구청 입구에 있는 선정비
선정비는 좋은 정치를 베풀었던 지방 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수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수원 화성박물관 야외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사용된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녹로라고 하는데 도르래를 이용하여 커다란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도구입니다.
높이가 11m이며, 오늘날의 크레인 같은 기능을 수행한 높은 성벽을 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도구입니다.
이것은 정약용이 개발했다는 거중기
도르래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인데요.
지금의 기중기와 같은 방식입니다.
위와 아래에 4개씩의 도르래를 연결한 후 그 끈을 물레에 감아 당기면 무거운 물건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어 수원 화성축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팔달구청 앞에 심어져 있는 튤립이 예뻐서 찍어봤네요.
수원화성박물관 모습
팔달구청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 ~ 18:00(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휴관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이 휴관)
관람료(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및 노인 무료
수원화성/화성행궁/수원화성박물관/수원박물관 통합관람권은 각각 3,500원, 2,000원, 800원입니다.
전시실 해설 9:00~16:00까지 매 정시(30~50분 소요)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체험도 진행하고 있답니다.
저번 주 방문할 때에는 코로나로 인해 현재 무료관람으로 진행하고 있더군요.
4천원 세이브했습니다.ㅎㅎ
수원화성박물관은 1층과 2층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층엔 기획전시실이 있고요.
2층에는 화성의 축성과정과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화성축성실과 화성에서 펼쳐진 다양한 행사를 재현해 놓은 화성문화실이 있습니다.
1층 중앙 전시홀에는 수원화성 모형도와 영상으로 제작된 화성연표가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된 수원의 읍성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에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화성행궁과 함께 수원화성을 축성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은 동서양 군사시설 이론이 잘 반영되어 있으면서 방어기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는 2007년에 조선왕조 의궤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총정리(세계유산, 기록유산, 무형문화유산)
먼저, 1층에 있는 기획전시실로 갔습니다.
기획전시 안내
전시내용 융건릉 원찰 수원 화산 용주사
전시기간 2020.12.18 2021.4.25
전시내용 정조대왕 서거 220주기 기념 사진전
용주사 전시 모습
정조대왕은 수원 화산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현륭원)을 조성하고, 그 1주년에 즈음하여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용주사를 창건하였습니다.
국왕의 지휘 아래 창건된 조선후기 왕실 원찰로는 용주사가 유일하며, 이름 또한 친히 지어 내렸다고 합니다.
10년 후 정조대왕이 돌아가시자 융릉 권역 내에 건릉이 조성되었고, 이때부터 용주사는 융건릉의 원찰로 거듭났습니다.
정조대왕이 직접 지휘한 현륭원 조성과 용주사 창건은 신도시 수원 건설과 세계유산 수원화성의 축성으로 연결된 국가적 공역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이 그토록 염원하던 사도세자 추숭 사업의 절정이 바로 수원에서 펼쳐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수원의 역사적 위상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융건릉과 용주사 그리고 수원화성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대왕 건릉
정조는 1752년(영조 28)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영조의 손자)로 태어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영조의 뒤를 이어 1776년 조선의 22대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정조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으며, 사도세자의 추숭사업으로 왕권을 강화시킨 군주였습니다.
정조는 정치적 안정과 문화발전을 통해 조선의 중흥을 이루었으나, 1800년(정조 24)에 49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조의 무덤인 건릉 구릉지에서 출토된 부장품
수원 화산 용주사
정조는 재위 13년 만인 1789년 아버지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이를 보호하고자 신도시 수원을 건설하였습니다.
최고의 길 지선 택부터 식물 하나 나무 하나까지 치밀하게 조성한 현륭원에 이어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사찰로 용주사를 창건한 것입니다.
과거의 용주사 모습
정조는 용주사를 창건한 후 직접 행차하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런 용주사엔 동종인 보물 1점, 보물 2점, 경기도 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화산 용주사 상량문
용주사가 창건된 1790년(정조 14)에 정조의 명으로 영의정 채제공이 직접 쓴 상량문입니다.
용주사의 창건과 국왕의 만수무강 등을 기원한 글이라고 합니다.
길이 1,100m, 폭 77cm에 이르는 규모가 엄청나네요.
여민동락 용주사
정조에 의해 왕실 원찰로 창건된 용주사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현재까지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조 사후 왕실 지원감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후퇴했으나, 불자들과 나들이객과 소풍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학생들 소풍과 나들이객으로 붐비던 옛날 사진들, 그리고 부처님오신날 모습의 사진들입니다.
조지훈의 승무
학교 다닐 때 다 한 번씩 외웠던 시입니다.
조지훈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문학자로 용주사에서 승무를 보고 지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ㅎㅎ
용주사 기획전시를 보고 2층으로 오르면서 예단에서 찍은 수원화성 모형입니다.
수원 화성박물관 상설전시장 첫 번째는 화성축성실입니다.
화성의 축성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화성행차 시 정조가 입었던 갑옷을 재현했고,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완질본, 그리고 화성성역의궤 등 화성 축성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황금갑옷을 입은 정조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1776년 3월 10일 정조가 즉위한 날, 신하들에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영조는 세손이 정치적 대립구도 속에서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남아 있을 경우 왕위계승이 어려울 수 있다 판단하여 일찍 죽은 효장세자(훗날 진종)의 아들로 입적시켰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사조세자의 아들이라고 공표한 것이죠.
이는 생부 사도세자의 정통성을 복권시키기 위한 준비이고, 반역죄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처지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왕위의 정통성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였습니다.
따라서 정조는 아버지에게 '장헌'이라는 새로운 존호를 올리고 영우원과 경모궁의 격상, 현륭원 조성 등 사도세자 추숭 사업을 착실히 진행해 나갔습니다.
조선후기 문화의 황금기 영조-장조(사도세자)-정조의 시대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의 조성
수원화성의 축성계획
다산 정약용의 거중기 설계
흙으로 쌓은 풍납토성, 석재로 쌓은 삼년산성, 벽돌로 쌓은 강화외성
이들과 수원화성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성곽의 꽃, 수원화성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화성행궁
1789년(정조 13)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1795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행궁(과천, 안양, 사근참, 시흥, 안산, 화성)을 설치했습니다.
그중에서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유수가 집무하는 관아로 활용하였고, 현륭원 천봉 이후 12년간 13차례에 걸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정조가 승하한 뒤 화성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어진을 봉안하였고, 그 뒤로 순조, 현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이곳에 참배할 때 머물렀던 곳이었습니다.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창덕궁과 같은 정궁 형태로 지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낙남헌을 제외하고 사라졌습니다.
1996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했고,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가 완료되어 2003년에 개방을 했습니다.
행궁은 휴양이나 피난, 능행을 위해 도성을 떠났을 때 임시로 생활하던 곳입니다.
조선시대에는 10여 개가 있었으며, 정조는 아버지를 참배하기 위해 현륭원을 찾을 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습니다.
시전 모습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길이 새롭게 정비되어 성내에 십자형 교차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십자로는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남북도로와 창룡문과 화성 행궁에 이르는 동서로를 의미합니다.
여민동락의 낙성연
1796년 9월에 공사가 마무리되자 화성축성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낙성연에 화성 축성 총리대신인 채제공과 수원 유수인 조심태, 공사 감독관 등이 자리하고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다고 합니다.
화성문화실
1795년 수원 행차와 정조의 군사개혁의 핵심인 장용영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호씨의 회갑잔치를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성에서 거향함으로써 드러내고자 했던 부모에 대한 효, 완조의 권위회복, 애민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33년 만의 재회, 혜경궁 홍씨의 현륭원 참배
사도세자의 죽음을 그냥 숨죽이며 지켜봐야만 했던 영겁의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까 생각해 봅니다.
화성행궁 봉수당 진찬연 모습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풍산홍씨 일가를 초대하였다고 합니다.
수원 백성에게 베푼 혜택
낙남헌에서의 양로연과 낙남헌에서의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
번암 채제공 집안의 기증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채제공은 정조가 '진실로 서심이 없는 나의 신하이고, 세손의 충신이다'라고 영조가 정조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무기들
수원화성을 지키는 조선 최강의 군대 장용영
보물 1710호인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화서문 옆에 있는데 성벽과 벽돌로 쌓은 부분 및 누각 모두 축성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성군이라고 하는 세종대왕 다음으로 높게 추존하는 정조대왕
그의 효성이 얼마나 대단했고, 개혁을 위한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관이 아닌가 싶네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관람하기 전에 이곳 수원 화성박물관 견학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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