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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 사직단 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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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 사직단 풍경

 

 

사직단 앞에 지나가다가 잠시 들렀습니다.

날씨도 포근하고 걷고 싶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는데 이날이 그런 날인 듯합니다.

 

사극을 보다보면 왕의 행동에 문제가 있어 보일 때 신하들이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라는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을 겁니다.

사직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을 말하며, 종묘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는 사당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실체가 있는 왕과 왕비 그리고 실체가 없는 토지와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의 신에게 지내는 천단, 땅의 신에게 지내는 지단이 아닌 사단과 직단을 지내는 이유는 토지와 곡식이 국가 자체를 의미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종묘사직의 뜻과 사직공원의 사직단의 봄 풍경을 담았습니다.

 

보물 177호로 지정된 사직단 대문입니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 쪽인 공포는 17세기 익공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목조건축 양식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가치가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는 제사시설인 단과 제사준비를 위한 부속건물들 사직단 관리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사직단 대문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직단종로구 사직공원에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공원이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개방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직단 내는 항상 들어갈 수 없게 담장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4개의 문을 통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주차장은 별도로 없으나, 사직공원 사직단 위에 종로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에 잠시 주차하고 구경하면 된답니다.

 

사진단에는 사직단 담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의 문(동신문, 서신문, 남신문, 북신문)이 있고, 그 내부에 제사를 지내는 사단과 직단이 있습니다.

 

남신문 쪽에 신실이 있고, 신위행로, 향축로, 어로 등이 있습니다.

아마도 토지와 곡식의 신이 지나가는 길, 향을 들고 가는 길, 왕이 걷는 길로 나누어진 듯합니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 동쪽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를, 서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설치한 것입니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사당을 말합니다.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 종묘와 종묘제례

 

종묘 설경(눈내린 종묘풍경)

 

 

본래 중국에서 사와 직은 구분되어 있었으나, 전국시대 이후에 사와 직은 하나로 합하여 국가적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사직을 받드는 제사는 고구려 고국양왕 때 처음으로 들어와 391년에 국사를 지었고, 신라에서는 783년 선덕왕 4년에 사직단을 지었습니다.

고려는 991년(성종 10)에 사직단을 세워 사직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엔 경복궁과 종묘, 사직단을 가장 먼저 세웠습니다.

 

따라서 종묘사직이란 의미는 조선의 정신적 지주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나라가 망하면 종묘사직이 없어지는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종묘사직의 뜻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가 된 것이네요.

 

영산홍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사직단 담장 모습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중문과 월랑, 차장고, 악기고, 외감, 어막대 그리고 안향청 등의 건물터가 있는데, 현재 복원 중에 있다고 합니다.

 안향청은 제사에 쓰는 향을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국토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고, 곡식없는 경제는 파탄합니다.

또한 백성은 땅 없이 하루도 살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굶어 죽게 마련이죠.

 

이와 같이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며, 사직 또한 영토유지와 백성의 윤택한 삶을 기원하며 국민적 단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므로 임금과 같은 존귀한 지위에 있어서도 백성과 사직의 존망지추에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고 합니다.

 

사직단 동쪽에 있는 동신문에서 바라본 사직단 모습

 

사직단 남쪽 남신문에서 바라본 모습

 

사직단 전사청 일대는 현재 복원 공사를 진행 중에 있는데요.

저구가, 제기고, 재생정, 전사청, 제정, 잡물고, 수복방 등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수복방은 조선시대에 종묘, 왕릉 등을 관리하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내던 곳이며, 전사청은 나라의 제사를 관할해 보던 관아, 제기고는 제사 때 쓰는 그릇을 보관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사직단 위에 있는 종로도서관에서 전사청 복원공사 중인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전사청 일원 복원공사 중인 모습

 

전사청 공사장 위쪽, 인왕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단군성전은 우리나라 시조라고 하는 단군왕검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서울 단군성전

 

사직단 서쪽문인 서신문에서 바라본 모습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 서쪽에 직단 등 2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두 단의 모양과 크기는 한 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약 1m라고 합니다.

 

단 주위에는 유라는 낮은 담을 두르고, 다시 사방에 4개의 신문을 설치한 담을 들러 이중으로 담을 설치했습니다.

그 외부에 자세 준비를 위한 부속시설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 부속시설은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모두 철거되어 없는 상태입니다.

두 단만 남은 채 공원으로 조성된 것이죠.

 

사직단에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와 선농, 선잠, 우단을 제사 지내는 중사, 그 밖에 기곡제와 게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는데요.

1988년부터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에서 사직대제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신문 앞에는 영산홍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사직단 북쪽문인 북신문에서 바라본 모습

 

조선시대에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실체가 있는 백성들만 바라보며 정사를 펼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홍콩 등 동남아에 가면 도교사원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나 중국도 예전엔 이런 도교사상과 비슷한 관념을 숭상하곤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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