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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 안동 임청각

by 휴식같은 친구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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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 안동 임청각

 

 

안동 선비의 도시이자 조선시의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교의 도시입니다.

안동시 곳곳에 조선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고택들을 볼 수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전통의 가치를 유난히 많이 느끼게 되는 곳입니다.

 

안동댐 아래 월영교가 있는 낙동강 바로 앞에 자리한 임청각도 그중의 한 곳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이상룡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1519년에 지어진 임청정의 군자각은 500년 역사의 유구함이 담겨 있어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500년 역사를 이어온 임청각의 군자각 등 고택 모습과 독립운동가 이상룡에 대한 임청각 작은 전시관을 담았습니다.

 

임청각은 안동시 법흥동, 낙동강 변에 있는 500년 된 고택으로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 월영교 방면으로 가다보면 좌측 편에 고택 두 군데가 있고, 오래되어 보이는 7층 석탑이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임청각이 있는 앞 도로 이름이 석주 이상룡선생의 호를 따 석주로라고 명명되어 있습니다.

 

 

좌측편에 있는 한옥이 안동 임청각이고, 우측 편에 있는 것은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과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법흥사지 7층전탑입니다.

 

임청각 우측에 자리한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법흥사지 7층전탑 모습입니다.

 

임청각 행랑채 모습

동서 길이 12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객인들이 묵었던 곳입니다.

 

 

안동 임청각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 ~ 18:00

휴무일(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임청각 어원

연명의 귀거래사 구절 중 登東皐以舒嘯(동고이서),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노라.’라는 시구에서 ‘임청’을 따왔고 계단식 집으로 층이 있기에 당이 아닌 각이라고 한다.

 

임청각 담장 주변으로 걸을 수 있는 소담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과거 임청각 선비들의 산책길이었고, 임청각 우물을 길어 갔던 뒤안길이라고 합니다.

 

임청각 뒷길을 따라 걸으면 정상에서는 안동시내가 모두 보인다고 합니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석주 이상룡 선생과 임청각 독립운동가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며 걸어보면 좋겠습니다.

 

임청각 바로 앞은 낙동강이 흘러가 고 있고, 북쪽으로는 안동 월영교와 안동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는 법흥교가 있고, 바로 안동 원도심으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임청각 입구

현재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며, 군자정, 안방, 사랑방, 행랑채 등에서 여행객들을 위한 한옥 숙박체험도 하고 있더군요.

한옥체험실은 1개이며 60명까지 수용가능합니다.

 

 

임청각은 안채와 중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별당 등으로 이우어졌고, 원래는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합니다.

1942년 일제가 불온한 사람이 많이 나온 집이라 하여 임청각 마당을 가로질러 중아선 철로를 만들면서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이 헐려 나가는 바람에 현재는 50여 칸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수모는 지난 2020년 12월 안동역사가 안동시내에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철로와 구조물들이 모두 철거되면서 일부 복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99칸의 저택이 반 밖에 남아 있지 않아도 이 정도 규모이니 일제강점기 이전엔 정말 얼마만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임청각의 군자정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500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집이며, 고성 이씨의 종택입니다.

조선 중기인 1519년에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건립한 주택이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며, 선생의 아들과 손자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11명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임청각을 지은 이명의 할아버지 이원(1368~1429)은 조선 초 태종이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데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고, 세종 때에는 좌의정이 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명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나갔고, 갑자사화에 유배를 갔다가 중종이 즉위하자 풀려나 지금의 군위의 지방관을 지냈으며, 이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임청가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임청각은 이명의 후손이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이 태어난 집입니다.

이상룡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듬해 임청각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했고,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임청각의 대청인 군자정(보물)

 

군자정은 丁자 모양의 누각으로 된 별당 형식으로 된 건물입니다.

군자정 정자 내부에는 이곳을 찾은 농암 이현보, 제봉 고경명, 백사 윤훤, 송강 조사수가 지은 시들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임청각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고, 군자정 현판은 고동 이익희 선생의 글씨입니다.

 

군자정에서 바라본 낙동강

 

군자정 옆에는 연지를 조성하여 군자를 표상하는 연꽃을 심은 곳입니다.

 

군자정 옆에 있는 건물은 임청각 사당으로 원래 불천위와 더불어 4대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석주 이상룡 선생은 한일합방이 되자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만주로 떠날 때 위패를 모두 없애 현재는 봉안된 위패가 없다고 합니다.

 

임청각 사랑채

석주 이상룡 선생이 출생한 방으로 한옥체험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우물과 마당, 마루와 뜰로 이루어진 사랑채 모습

이 우물방은 임청각 문중에서 대대로 3명의 정승이 태어날 방이라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채 옆 담장이 정겹고 이쁘네요.

 

사랑채에서 내려오면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임청각 안채는 두 채가 열결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임청각 작은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500년 역사의 안동 임청각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영남산 아래 지은 집입니다.

조선시대 민가가옥 중 가장 큰 규모의 반가주택으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입니다.

 

 

앞으로 2025년까지 280억원을 들여 임청각 복원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해집니다. 

 

임청각 가문의 구국운동

 

1895년 을미의병 군자금 지원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 전개

1909년 대한협회 안동지회 조직

1911년 일제가 침탈하자 가족과 친척 50여명이 만주로 망명

독립전쟁을 위한 자치단체인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신흥무관학교 등을 세워 광복군을 길러 백서농장, 길남장, 서로군정서를 이끌었습니다.

 

 

1920년대 청산리대첩과 봉오동전투 등 많은 항일전쟁 지원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부인 김우락, 아들 이준형, 손자 이병화, 손부 허은, 동생 이상동, 이봉희, 조카 이형국, 이운형, 이광민, 종숙 이승화 등 11명이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만주 독립군 기지건설과 임청각 가문

그리고 임청각 가계도

 

서간도 독립전쟁 지도자 석주 이상룡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1858~1932)은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난 정통 유학자로 학문적 수업을 닦고, 유인식, 김동삼 등 혁신적 유림 인사들과 함께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계몽활동에 뛰어들었으나 이것으로는 독립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50이 넘은 나이에 망명하여 이회영, 이시영과 함께 간도에서 독립군 기지 개척에 힘썼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기여한 선생은 이후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맡으며 여러 분파로 갈린 독립운동계의 통합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였습니다.

1932년 5월 병으로 길림성 서란 소성자에서 돌아가셨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임청각 수난과 회복

 

1931년 광복을 달성하기 전에는 유골을 조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거하셨습니다.

1938년 조카 이광민이 이상룡의 유해를 취원창으로 이장하고, 이승화, 이상동 묘역과 함께 조성했습니다.

 

1990년 9월 13일, 이상룡 유해가 이승화(당숙), 이봉희(동생), 이광민(조카)과 함께 국내로 이송되어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1996년에 다시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안치되었고, 2019년에 청남대에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동상이 건립되었습니다.

 

중앙선 철도부설과 1942년 종손 이준형 자결

 

일제가 임청각 앞마당으로 중앙선을 놓자 석주 이상룡의 아들 이준형은 석주유고를 정리하고 생일날 일제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치욕을 더할 뿐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방 안에는 태극기와 이상룡 선생의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임청각은 그동안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르고 귀로 듣고만 있었던 곳으로 이번에 방문해보니 정말 대단한 가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집까지 팔아 안중근 의사 집안처럼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매진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용기인 것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과 500년된 고택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안동여행 중 꼭 가봐야 할 곳입니다.

일제에 의해 철길이 놓여 있었던 아픔을 극복하고 이제 철길이 철거되고 일대가 복원된다고 하니 이런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울러 독립운동의 산실이면서 보물로 지정된 이곳에서의 특별한 한옥체험도 해볼만 하겠습니다.

 

임청각에서 나와 안동댐 방향으로 바라보면 법흥사지7층전탑이 있고, 그 앞에 아름다운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택 안에는 탑동103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멋진 고택과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잔 즐기는 여유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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