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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권 여행

아펜젤러 이야기, 배재학당 역사박물관(배재학당 동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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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이야기, 배재학당 역사박물관(배재학당 동관)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으로 현재의 재배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의 전신입니다.

W.B. 스크랜턴의 집을 구입, 방 두 칸의 벽을 헐어 만든 교실에서 2명의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며, 고종은 1886년 6월 ‘배재학당’이라 이름지어 간판을 써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배재학당의 설립목적은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교인과 국가 인재양성을 위하여 일반 학과를 가르치는 외에 연설회와 토론회 등을 열고 사상과 체육 훈련에 힘을 쏟았습니다.

당시 배재학당에 설치되었던 인쇄부는 한국의 현대식 인쇄 시설의 효시이기도 합니다.

 

덕수궁 옆 정동에 일이 있어 갔다가 배재학당 동관 건물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있어서 잠깐 구경했는데요.

아펜젤러와 배재학당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가 1885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고등교육기관이었던 배재학당에서 이루어진 교육과정과 아펜젤러의 교육이념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기에 이루어진 교육, 종교, 문화, 정치, 외교 등의 역동적인 모습 등을 전시하기 위해 배재학당 동관에 2008년 개관한 사립박물관입니다.

 

 

 

배재학당 동관(서울시 기념물 16호)은 1916년에 완공되어 원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붉은색 벽돌의 3층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아펜젤러 홀이라고 불리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 교사였던 배재학당 당사(1887년 준공)가 소실된 이후 배재학당을 상징하는 실체이기도 합니다.

 

1984년 배재중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교사로 사용한 곳입니다.

당시 교정에는 동관을 비롯하여 1887년에 지어져 1932년에 철거된 본관, 1923년에 준공해 고덕동으로 이전 복원한 서관, 1933년의 대강당, 광복 후 현대식 교사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대부분 철거된 상태입니다.

 

신교육의 발상지 배재학당 표지석

 

배재학당 터의 배재보통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1920년 11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전국체육대회의 시초였던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린 곳입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배재정동빌딩

 

배재중고등학교 학교재단 사무소 건물로 업무시설과 교사로 이용되고 있는데요.

2~12층으로 이루어진 3개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는 근대 교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소장품들과 함께, 상설 전시실, 기획 전시실, 체험 교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1916년에 배재학당 동관이 준공되었고, 2001년에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2008년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17:00(16:00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매주 일~월요일, 1월 1일, 6월 8일 개교기념일, 설과 추석연휴, 근로자의 날, 법정공휴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배재정동빌딩 주차장 유료 이용(10분에 1,000원)

 

입구에는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지하 1층~3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하 1층은 학예연구실이, 1~2층에는 교실체험과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이, 3층에는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배재학당 교실체험

 

1930년대 당시 배재학당의 교실을 재현한 공간으로 당시 사용되었던 석칠판과 책걸상 등을 통해 근대 교실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 모습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 기관인 배재학당의 시작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인재를 길러낸 배재의 교육 이념을 만나는 공간인데요.

 

 

 

고종에게 하사받은 배재학당 현판과 유길준(1856~1914년)의 친필 서명이 담긴 서유견문, 120여년 전 학생들이 직접 인쇄하고 사용했던 교과서 등을 전시하며, 최초의 근대 학생회였던 배재학당의 협성회와 이를 토대로 한 독립협회의 탄생,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과정 등을 통해 민족 계몽 운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배재학당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배재학당 역사연표

 

배재학당 동관과 아펜젤러가 작사와 작곡을 한 배재학당가

 

19세기말 조선의 선교사들 그리고 최초의 근대교육기관 배재학당

 

19세기 후반에는 조선사회에 종교와 의료, 교육 등에 걸쳐 새로운 서방문화를 소개해준 이는 미국 선교사들이었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이국 선교사들의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1884년 뉴턴 알렌(1858~1932) 부부가 의사 자격으로 입국해 제중원과 광혜원,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했고, 1885년 미국 북감리교의 아펜젤러(1858~1902)가 입국해 최초의 근대사학인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북장로교의 언더우드(1859~1916)가 입국해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들 미국의 의사와 선교사들은 대부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고, 아펜젤러 역시 1902년 44세가 되던 해에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가던 배가 일본배와 충돌하면서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 익사, 시신은 찾지 못하고 가묘로 양화진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양화진 역사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고종에게 하사받은 배재학당 현판

 

배재의 교육정신

 

'통역관을 양성하거나 우리학교의 일군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

-1892년 아펜젤러

 

이런 아펜젤러의 주체적인 교육정신으로 이곳 출신들의 학생들은 독립운동의 핵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주시경 선생이 배재학당 출신이며, 이승만은 초기 아펜젤러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 명예의 전당

우리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배재학당 출신들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서재필, 윤치호, 김진호, 이승만, 주시경, 오궁선, 이중화

신흥우, 지청천, 신봉조, 김소월, 나도향, 김기진, 박팔양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우리나라 근대사의 핵심적인 위인들이 배재학당 출신이네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등록문화재)도 전시되어 있고, 주시경의 친필이력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배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우리나라 최초의 학칙, 교지 '배재'와 학보, 배재학당의 우수한 교사진과 세부 교육 과정 등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입니다.

1918년 졸업 앨범과 졸업장 및 학생 수첩 등을 통해 당시 학교 풍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배재 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20여년 전에 시작된 배재의 글로벌 교육

 

배재학당의 교육목적

 

2층 상설전시장아펜젤러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블 선교사와 초기 선교사들

근대화의 중심이었던 20세기 초 정동의 풍경과 교육과 기독교 전파에 노력한 당시 선교사들의 다양한 활동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윌리엄 아서 노블 선교사 가족

윌리엄 아서 노블(Willam Arther Noble, 1866~1945년)은 배재학당 교사로 활동하다 1896년 평양으로 건너가 기독교 정착에 크게 공헌한 인물인데요.

그의 부인인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 1872~1956년) 또한 배재학당 최초의 여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평양에서 여성 교육과 주일 학교에 헌신했습니다.

 

 

 

루스 노블 아펜젤러는 이들 부부의 맏딸로 1894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블 가족의 한국 생활을 담긴 일기, 윌리엄 아서 노블이 쓴 영문 소설 이화, 순이 등과 함께 노블 선교사 가족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배재학당의 설립자,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년)의 선교여행,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한 배재학당,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 기독교와 교육에 헌신한 그 자녀들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펜젤러의 친필 일기와 그가 남긴 1900년대 초 한국 사진들은 외국 선교사의 눈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들입니다.

 

헨리 게어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미국 감리교(북감리회) 선교사로 한국어로는 아편설라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설립한 최초의 근대사학인 배재학당(현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을 세운 설립자이며, 구한말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자녀들인 아들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미국에서 공부한 뒤 아버지를 이어 배재학당에 교장으로 취임해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했고,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역시 이화학당(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헨리 다지 아펜젤러와 루스 노블 아펜젤러의 일생

아버지인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의 뒤를 이어 배재학당의 교장이 된 헨리 다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년)와 그 아내 루스 노블 아펜젤러(Ruth Noble Appenzeller, 1894~1986년)의 일대기를 통해 그들의 한국 사랑과 교육, 선교에 대한 헌신적인 면모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헨리 다지 아펜젤러가 쓰던 책상, 타자기, 피아노 및 거주허가증, 자동차 면허증 등 당시 선교사들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유품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배재학당의 이펜젤러 피아노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블뤼트니에서 제작한 피아노로 헨리 다지 아펜젤러가 직접 가져왔다고 전하는데요.

배재학당 강당에서도 연주되었으며 제조 번호로 보아 1911년의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제작 연도와 국내에 들어온 시기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연주회용 피아노로서 가치가 있어 2011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초기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가 학생들과 수업하는 장면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나오면 헨리 게어하드 아펜젤러 동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재정동빌딩 뒤로 가면 아펜젤러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아펜젤러 기념공원

 

아펜젤러 기념공원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숭고한 정신과 삶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아펜젤러 션교사 탄생 16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공원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아펜젤러 기념공원은 독립신문사터로 고종 33년(1896)에 우리나라 첫 민간신문사가 있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정동길에 있는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의 가을풍경이 무척 아름다운 시기입니다.

함께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상상의 정원전이 열리는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가을풍경

덕수궁 돌담길 가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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