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용문면 용문산에 있는 용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지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인 870년에 두운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데요.
오래된 사찰이다 보니 윤장대와 팔상탱 등 보물이 가득하고, 조선시대 태자와 왕비의 태실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지난 연휴 때 부처님 오신 날 다음날에 찾았는데, 전날의 북적거림은 온데간데없이 고즈넉한 사찰 본연의 모습이었고, 용문산의 수려한 산속에 파묻혀 있는 푸르른 신록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사찰이 시간이었습니다.
보물이 가득한 천년고찰, 용문사는 거의 7년 만에 찾았는데요.
이번엔 용문사 보물들은 물론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 태실까지 있어 왕의 기운이 서려있는 천년고찰로 통하는 곳입니다.
부처님 오신날 다음날 정오 무렵에 찾은 용문사 주차장
전날의 혼잡스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용문사는 신라시대 870년(경문왕 10)에 두운이 절을 창건했는데,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용이 영접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용문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정벌 중에 용문사에 머물며 천하를 평정한 후 이곳에 큰 절을 일으키겠다고 맹세했다고 하며, 실제 통일 후 926년(태조 19)에 칙명으로 용문사를 중건하고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1165년(의종 19)에 중수, 1171년(명종 1)에 태자의 태를 보관한 후 창기사로 바꾸었습니다.
1478년(성종 9)에 소현왕비의 태실을 봉안하고, 조선 9대왕 성종의 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제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습니다.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1835년(헌종 1) 불이 나서 폐허화된 것을 열파, 상민, 부열 등의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1840년대에 다시 지었습니다.
소백산 용문사 안내도
용문사 입구에는 영남제일화엄도량 소백산문이라 걸린 커다란 출입문이 있고, 조금 더 올라오면 작은 일주문(소백산 용문사 편액)이 있습니다.
절 입구까지 차량으로 들어올 수 있어서 좋더군요.
용문사는 천년고찰답게 절의 규모도 상당한 편입니다.
대웅전 격인 보광명전과 대장전(윤장대), 천불전, 관음전, 명부전, 응진전, 만월당, 진영당, 동향각, 응향각, 감로당, 해운루, 보경당, 성보박물관, 극락암, 적묵당, 서향각 등 많은 전각들이 있습니다.
용문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국보 제328호)를 비롯 성보문화재 19여점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천 용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윤장대일 것입니다.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989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사찰입니다.
5월의 용문사는 초록으로 가득합니다.
연둣빛 풍경은 용문사 어디에서 봐도 나무나 예쁘더라고요.
용문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돌담길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네요.
용문사 아래에 자리한 용문사 부도군
어디를 봐도 온통 초록초록한 모습,
연둣빛 숲은 이때가 가장 예쁜 모습인 듯합니다.
사찰 조명등 너머 소백산 자락의 신록신록이 무성한 풍경
용문사 경내 모습
가장 안쪽 전각은 영남제일강원입니다.
용문사 성보박물관
관람시간은 09:30~17:00,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설과 추석연휴
입장료(관람료)는 일반 1,000원, 어린이 500원입니다.
용문사 성보박물관은 소중한 불교문화유산을 보존,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예천 용문사 천불도(1709년 제작, 1008개의 불상이 그려진 그림), 예천 용문사 감염교지(용문사 잡역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긴 교지), 예천 용문사 팔상탱(석가모니의 행적을 그린 8장면의 그림),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야외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대형 불화, 1705년 제작) 등이 전시되어 있다네요.
용문사 보광명전 앞 2개의 석탑
하나는 오층석탑, 다른 하나는 삼층석탑입니다.
보광면전 앞에 있는 해운루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984년 용문사 화재 때 소실된 후 보광명전 등과 함께 1990년에 복원한 전각입니다.
통상 사찰의 주 법당 맞은편에 법회나 강당의 역할을 하기 위해 2층 누각의 건물을 짓고, '만세루', '보제루', '안양루' 등으로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해운루'라고 하고 있으며, 사찰의 문루 역할을 하며 사찰의 조망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해운루에 있는 법고
바깥쪽에는 방문객들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해운루에서 바라본 용문사 회전문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4명의 천왕상이 있는 전각입니다.
해운루 옆에 범종각이 있고, 그 옆에 자운루가 있는데 사진에 담지 못했네요.
용문사 자운루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했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운루에서 바라본 보광명전
지금의 용문사 대웅전 역할을 하는 보광면전
1984년 5월 9일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0년에 다시 복원한 건물인데요.
화재 당시 좌협시로 모셔져 있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37호)만이 화마를 피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관불을 행하던 부처님
보광명전에서 바라본 해운루와 용문사 마당
보광명전 내부 중앙에는 높은 수미단 위에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존불은 지권인을 결한 본존인 진리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존불인 아미타불과 동방유리광세계의 주존불인 약사불을 함께 모신 것입니다.
보광명전에 봉안된 세 부처님 중 아미타불상에서는 1515년에 중수한 발원문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포대화상으로 만들어진 모금함
지역사회 복지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설치한 연등
보광명전과 나란히 서 있는 용문사 대장전(국보)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경전을 봉인하는 전각으로 알려져 있고, 안에 안치된 2좌의 윤장대(보물)로 더욱 유명한 곳입니다.
초창기 용문사 건물은 아니고 중수(1467년, 1534년, 1597년, 1665년)를 거듭한 끝에 1173년에 지어진 것(다른 기록으로는 1670년 건축으로 기록되어 있음)입니다.
본 아미타삼존불과 목각탱이 1683년에 세워진 금당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져, 불상과 연계한 조성시기 추정은 재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물의 현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형적인 다포계 맛배집으로 처마는 겹처마입니다.
용문사 대장전 내부에 봉안된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예천 용문사 목조 아미타삼존불(보물)과 2개의 윤장대(국보)
중앙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좌협시)에 관세음보살과 왼쪽(우협시)에 대세지보살이 화염무늬의 보관을 쓰고, 양손에 연화가지를 든 채, 협시하고 있습니다.
대장전은 윤장대와 건축적 수법 외에도 건물 내외부의 용과 물고기 장식이 눈길을 끄는데요.
용과 물고기는 물과 관련된 상징물로, 이는 "일찍이 서역의 구담씨가 팔만대장경 전장을 용궁에 안치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장전이 세워졌다."는 중수상량문 내용과 상통한다고 합니다.
대장전의 우물천장
용문사 대장전에 있는 2개의 윤장대(국보)
높이 4.2m, 둘레 3.5m 규모의 화려하고 팔각 정자 모양의 불교 공예품입니다.
왼쪽의 윤장대의 8면은 서로 다른 꽃살문으로 꾸몄고, 오른쪽의 윤장대는 8면을 같은 빗살문으로 정교하게 꾸몄습니다.
고려 명종 3년(1173)에 조응대선사가 무신의 난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며, 고대 건축물로는 드물게 건립자, 건립시기,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윤장대란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팽이처럼 돌릴 수 있도록 팔각형으로 만든 것으로, 이것을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번다고 여겼습니다.
불경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며, 시간이 없어 못 읽는 사람들이 많아 설치한 편의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윤장대는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룰 치를 때 쓰였는데요,
대장전 마루 밑에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렸고, 지붕 끝은 대장전 천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옛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용문사 대장전 옆엔 진영당이 있습니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건물로 툇마루가 있으며, 홑처마 민도리(납도리) 형태의 건물인데요.
1681년에 지어져 현재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네요.
용문사 명부전
대장전 동쪽에 남서향을 하고 있는데요.
1984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복원된 건물입니다.
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들을 모신 전각입니다.
중앙에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과 무독귀왕이 시립으로 협시하고 있습니다.
그 양쪽 벽에는 17세기 말에 조성된 명부의 시왕상과 인왕, 녹사, 판관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종무소와 공양간이 있는 감로당
천불전과 산신각, 관음전으로 가는 길
대장전과 보광명전 뒷모습
용문사 모습
좌측이 대장전, 우측이 보광명전입니다.
용문사 만월당
용문사 관음전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전각입니다.
용문사 산신각
용문사 천불전
용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각으로 1000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입니다.
천불전에서 바라본 용문사 전경
예천 문효세자 태실로 이동했습니다.
천불전 앞에서 200여 미터만 가면 됩니다.
갈림길에서 우측 길로~
용문사에는 예천 문효세자 태실이 있고,
이곳에서 7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폐비윤씨 태실이 있습니다.
문효세자 태실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그 태반과 탯줄을 묻은 석실을 말합니다.
예전부터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소중하게 여겼고, 왕실에서는 특히 전국의 명당을 골라 태실을 만들고 태를 묻었습니다.
문효세자(1782~1788)는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장남입니다.
1784년 세 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5세가 된 해에 홍역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기의 태항아리를 묻고 봉분을 만든 후 세운 아기태실비
문효세자 태실은 정조 7년(1783)에 만들어졌는데요.
1930년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태항아리는 고양 서삼릉으로 이장되었으나 현재는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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