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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탑골공원과 원각사지십층석탑,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by 휴식같은 친구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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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과 원각사지십층석탑,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종로 2가 사거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이고, 1919년에 역사적인 3.1 운동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탑골공원(파고다공원)이 있습니다.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 대원각사비(보물 3호),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탑골공원 팔각정손병희 선생의 동상 등이 있는 매우 소중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접근성이 좋은 종로 도심 속에 있어도 많은 시민들이 찾지 않는 왠지 고립무원, 비밀공간, 혐오스러운 공간 같은 존재이기도 한 탑골공원!

 

왜 그렇까?

언제부터 인가 탑골공원은 어르신들만의 쉼터(?)로 자리잡고 있고, 박카스 할머니가 있으며, 칙칙한 느낌의 공간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제라도 편안하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되어 시민들의 공간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탑골공원

11월의 어느 날 오후, 

탑골공원의 출입문 삼일문 모습입니다.

 

3.1운동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특별한 장소이기에 삼일문이란 현판을 걸은 것 같습니다.

 

탑골공원종로 2가 사거리,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인사동 나들이할 때 같이 둘러보면 되는 곳입니다.

 

탑골공원 개방시간 09:00 ~22:00까지이며,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입장료 없이 개방되어 있죠.

그리고 주차장은 별도로 없으므로 근처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사적 354호인 탑골공원은 과거 원각사가 있던 곳이고 서울에 만들어진 최초의 근대 공원이며, 3.1 독립정신이 깃든 곳입니다.

만들어진 시기를 두고 이견이 있으나 1890년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탑골공원은 고종 연간 총세무사로 활약한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탑골공원_8

탑골공원 입구에는 종로구청장 명의로 이런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예전부터 탑골공원 앞에서 봉사활동이나 종교활동, 우익단체 집회 등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다 보니 이런 집회들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해 눈살을 찌푸리는 집회나 홍보활동 등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좋은 현상~~~

하지만 아직도 탑골공원의 모습은 곳곳에 노인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어서  칙칙하고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 공원인 듯합니다.

 

탑골공원_2

탑골공원 모습입니다.

 

일반 관람객들은 전무하고, 대부분 어르신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가끔씩 지나가는 시민 극소수와 외국인 관광객 몇 명만이 보이는 정도?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갈 데 없어서 종로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를 뭐라 한다면 노인들을 폄하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노인들이 공공장소에서 관람이 아니라 죽치고 앉아 있어 일반 시민들의 관람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고민을 해 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탑골공원_3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3.1운동 기념탑입니다.

 

탑골공원은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이곳의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죠.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탑골공원_4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손병희 선생은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로 제3대 교주를 지내기도 했고, 독립운동가로서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3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듬해 병보석으로 출감 치료 중 별장 상춘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김없이 동상 아래에도 할아버지들이 점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이 날은 날씨가 쌀쌀해서 적은 편입니다.

 

 

탑골공원 대원각사비

보물 3호인 대원각사비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년)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입니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짓고, 1467년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이 바로 대원각사비입니다.

 

탑골공원 대원각사비_2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 성임이, 뒷면은 서거정, 정난종이 각각 짓고 썼습니다.

이수 아래쪽에는 대원각사지비라는 전액을 강희맹의 글씨로 새겼습니다.

전체 높이 4.7m, 너비 13m이며, 비문은  현재 마멸이 심해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탑골공원 팔각정

독립선언문이 낭독됐던 탑골공원 팔각정 모습

 

팔각정은 1902년에 팔각형으로 지은 정자로 영국인 브라운이 현대식 공원으로  파고다공원을 만들면서 동시에 신축한 곳입니다.
원각사십층석탑으로 인해 파고다공원으로 불렸고, 애초에 황실공원(궁실공원)이었고, 제실, 음악연주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탑골공원_5

탑골공원의 단풍도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공원 곳곳에 앉을 수 있는 곳 어디에는 항상 할아버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전에 종묘 앞이 할아버지들의 놀이터였는데 쉼터와 의자들을 치우는 리모델링 후에 탑골공원으로 대거 이동한 모습입니다.

 

탑골공원_6

원각사지십층석탑 옆에 있는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탑골공원 원각사지십층석탑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입니다.

 

지금은 석질이 대리석인 관계로 탑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보호각으로 감싸 놓은 상태입니다. 

탑을 세부적으로 감상할 수 없는 부분이 아쉽네요.

 

원각사지십층석탑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하며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높이는 12m입니다.

3층의 기단은 평면이 아(亞)자 형을 이루고 있고 탑신부는 3층까지는 기당과 같은 평면이고 4층부터는 방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은 1467년에 만들어졌고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10층으로 보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모셔두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히고,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제86호)과 여러 모로 매우 비슷한 모양입니다.

   

원각사지십층석탑
(사진은 Naver 지식백과에서 가져옴, 유리 보호각이 설치되기 전 모습)

이 일대는 조선 세조 11년(1465년)에 세운 원각사의 터이며, 원각사는 연산군 때 폐사되어 현재 이 원각사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 있습니다.

 

원각사지십층석탑

유리문 안이라 내부가 잘 찍히지 않은데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원각사지십층석탑_2
(사진은 Naver 지식백과에서 가져옴, 각 면에 새겨진 문양 모습 )

각 면석은 용, 사자, 모란, 연꽃, 불상, 보살상, 나한상, 천왕상 등으로 빈틈없이 새겨져 있고, 탑신부에는 각 층마다 난간, 둥근기둥, 다포계의 공포, 기와지붕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골공원_7

이렇게 우리 민족사의 국보와 보물이 있는 탑골공원이 왠지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제라도 그동안의 탑골공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민 누구나가 스스럼없이 들어가서 관람하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공원을 좀 더 밝게 조성하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공연 등으로 자연스럽게 노인들의 쉼터가 아닌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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