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
경상도 여행

경주향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

by 휴식같은 친구 2019. 6. 18.
반응형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경주향교

 

 

경주 교촌마을에 와서 교리김밥을 먹고, 최부자댁, 경주 교동법주 제조장을 구경한 후 바로 옆에 있는 경주향교로 향했습니다.

 

경주맛집, 경주교동 교리김밥과 잔치국수 드디어 먹어보다

[경주여행]경주 교촌 마을 풍경과 경부 최부자댁(경주 교동최씨) 고택구경

국가무형문화재의 경주 교동법주 시연회 스케치

 

경주 교촌은 신라 신문왕 2년(682)에 한국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요.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향교신라시대에는 국학이,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져온 유서깊은 곳입니다.

 

마을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유가 모두 이곳에 경주향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주 교촌마을의 중심에 있는 주향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국학의 시원, 경주향교

 

현재의 대학격인 신라시대의 국학은 고려시대의 국자감, 성균관, 국학 등으로 불리웠고,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으로 통일되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교육기관으로 유교문화에서 생긴 교육기관이죠.

국가에서 유교문화를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것입니다.

 

 

 

경주향교는 조선시대 성종 23년(1492년)에 문묘와 성균관의 배치형식에 따라 다시 지어 현재의 배치와 같아졌다고 하고 나주향교와 함께 향교 건물 배치의 표본이 된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33년(1600)에 대성전을 비롯해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을 다시 지었고, 광해군 6년(1614)에 명륜당 같은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을 고쳐지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학교의 임시 교사로 활용되었고, 1999년에는 사회교육원이 생겨 강학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 입구인 상용문

 

옛날에 우물이 있던 자리로 보입니다.

우측 건물은 존경각 건물이네요.

 

명륜당 동재의 옆 모습

 

이곳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모습입니다.

더운 날씨라 관람객들은 명륜당 대청마루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네요.

 

 

명륜당과 좌우로 학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서재와 명륜당 모습

 

서재 뒷편에는 양궁장이 있습니다.

 

명륜당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당과 동무, 서무 건물이 있습니다.

 

대성당은 개방하지 않고 있어 담 너머로 사진을 찍어 봤네요.

 

명륜당과 동재 건물모습

 

명륜당은 강당인 명륜당 모습입니다.

 

명륜당 건물의 앞쪽에 있는 대성당 입구로 이동했습니다.

신삼문 모습입니다.

 

신삼문은 굳게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어서 조금은 아쉽네요.

 

대성당(보물 1727호) 모습입니다.

 

동무와 서무로 이루어진 대성당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인데요.

처음에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에 143현의 위패를 모시다가 이후 몇 차례의 정리령을 거처 현재는 25현의 위패가 대성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대성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3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5년에 완공했다고 1998년 보수공사르 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나타나 있었다고 합니다.

 

대성당은 간결하고 위엄이 있는 목조건물로 옛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경주향교는 영남에서 규묘가 가장 큰 향교이고, 서울 문묘와 같이 다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국학이 있던 자리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자세히 둘러보게 되네요.

 

경주 교촌마을에 가게 되면 그 옛날 대학생들이 공부 했을 모습을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