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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경주 분황사와 분황사 모전석탑

by 휴식같은 친구 201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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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분황사와 분황사 모전석탑

 

 

황리단길 황남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동한 곳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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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시대 석탑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국보 제20호에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국보 문화재로 경주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어서 들리게 되었습니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과거 분황사에 세워진 석탑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안삼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인데요.

기단의 규모나 탑의 형태로 보아 7층이나 9층으로 추정됩니다.

 

모전석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을 모방한 석탑"이란 의미로 모전석탑이라 부르고 있다네요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하고 있는 분황사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되었고,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대사와 자장대사가 거쳐간 절입니다.

 

643년에 자장이 당나라에서 대장경의 일부와 불전을 장식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귀국하자 선덕여왕은 그를 분황사에 머무르게 하였고, 원효대사는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또 원효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고 하네요.

 

 

원효대사(617-686)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입니다. 

그는 대승불교의 건설자인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나 중국불교를 새롭게 열어간 천태지자 대사에 비견되기도 하는데요. 

 

한국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불교사에 있어서 원효의 위치는 그만큼 찬연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분황사 관람시간은 08:00 ~ 18:00

분황사 관람료(입장료)는 성인이 1,300원, 청소년/학생/군경이 1,000원, 어린이가 800원 입니다.

분황사 주차장은 무료로 운영됩니다.

 

입구에 범종이 있는데요.

자비함에 1,000원을 시주하면 타종을 해 볼 수 있어서 한번 했습니다.

경주에 와서 벌써 두 번째 타종을 해보네요.

 

석굴암에서의 타종은 세게 쳐 봤는데 분황사에서의 타종은 세게 치지 못하게 하더군요.ㅠㅠ

 

분황사 전경입니다.

예전에는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작은 터에 모전석탑과 보광전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

 

1915년에 일본이 허물어진 것을 해체 수리했는데요.

당시에 사리함과 구슬 등 많은 유물이 나왔습니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는 네 마리의 석사자를 배치했습니다.

원래는 두 마리가 더 있었는데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정원에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탑에서 나온 돌 사리함에는 여러가지 구슬, 가위, 금, 은 바늘과 숭령통보, 상평오수 등이 들어 있어 고려 숙종, 예종 연간에 해체, 수리되었음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1층 몸체들은 사방에는 쌍여닫이 돌문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고, 감실 안쪽으로 불법을 지키는 인왕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습니다.

 

다른 쪽의 돌문

 

벽돌로 탑을 쌓는 방식은 중국에서 유행하였고, 벽돌처럼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탑을 쌓는 것은 인도에서 널리 퍼진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탑의 형태는 중국은 누각식이고 인도는 돔형이므로 분황사모전석탑은 형태면에서는 중국의 전탑을, 재료면에서는 인도의 탑을 본뜬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벽돌을 구울 만한 기술이 없었으므로 결이 일정한 안삼암을 이용하여 벽돌모양으로 다듬고 탑을 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황사 보광전

현재 공사중입니다.

 

보광전 안에는 분황사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영조 50년(1774)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밀한 작업으로 칠을 하고 있는 모습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이 비부는 고려시대 때 세워진 원효대사 비의 받침돌입니다.

미석은 고려 숙종 6년(1101) 8월에 내린 조서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숙종은 원효대사에게 대성화쟁국사란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웠는데, 비는 없어지고 비편만 가끔씩 발견되고 있답니다.

 

분황사 석정

 

분황사 석정은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신라시대 우물입니다.

우물 틀의 외부는 높이 70cm의 8각, 내부는 원형인데 이는 불교의 팔정도와 원융의 진리를, 우물안의 사각형 격자는 불교의 근본 교리인 사성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옜 선인들은 우물 하나까지도 불교의 교리를입혀 만들었다는 지혜에 놀라게 됩니다.

 

한쪽에는 대원심보살 사리함이 있네요.

 

대원심보살은 1860년에 태어나 1935년에 열반했는데 치아에서 백옥사리가 나와 세상이 경탄하여 그 불도정신을 기리고자 사리탑을 분황사에 모셨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가장 오래된 석탑인 분황사 모전석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있지만 그 자체로도 문화재로서의 큰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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