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은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원래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 있던 터였으며, 이곳에 세종은 상왕인 태종을 위한 수강궁을 세운 것이 창경궁의 시작이었는데요.
성종은 3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하면서 창경궁이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창경이란 명칭은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의미로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 동궐이라 했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습니다.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기 위해 왕과 왕비,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복궁은 일정한 원칙에 다라 계획적으로 지은 반면 창경궁은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어져 이용된 궁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5대 궁궐 중 하나로 창건 당시에는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파괴로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으로 활용빈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전쟁과 화재, 일제강점기 등으로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많은 전각들을 복원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궁궐 배치와 춘당지 등 정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왕실의 채취를 느끼는 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현재 창경궁은 홍화문 및 궁장, 명정전 권역, 환경전 권역, 통명전 권역, 수강재 권역, 통화전 권역 그리고 춘당지와 대온실 등이 있는 정원(후원) 권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지난번 문화가 있는 날, 창경궁을 둘러보고 왔는데요.
창경궁 입장료 및 관람정보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궐내각사 터, 관천대와 종묘열결 지점 등에 대한 내용, 명정전과 함인정, 환경전, 집복헌과 영춘헌 등의 창경궁 주요 전각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창경궁의 후원이라 할 수 있는 춘당지와 대온실의 정원 등 세 파트로 나누어 정리해 봤습니다.
여기서는 창경궁 명정전과 함인정, 환경전, 통명전, 집복헌과 영춘헌 등의 주요 전각 등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창경궁 입장료 등 관람정보 - 홍화문, 궐내각사/동궁 터, 관천대, 종묘 연결지점
창경궁 전각 소개 – 명정전, 함인정, 환경전, 통명전, 집복헌, 영춘헌 등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궁궐 속 아름다운 정원(후원) 산책
창덕궁 정문인 홍화문(보물)
홍화문이란 이름은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1420~1488)이 서경의 한 구절에서 따와 지은 것으로 큰 도를 넓혀서 백성들을 공경과 믿음으로 감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는 의미로 동궐이라 불리었고, 창덕궁의 이궁으로 만들어진 궁궐이었습니다.
세종 대의 수상궁이 있었던 자리에 1483년 성종이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16년(광해군 8)에 복원되었고, 이후에도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대화재 등으로 수난을 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엔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면서 창경원이란 치욕적인 역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1616년에 재건된 전각들 중 명정전과 명정문, 홍화문 등은 현재까지 남아 있어 가장 오래된 전각들입니다.
창경궁 옥천교(금천교 - 보물)
창경궁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에 놓인 금천교로 응봉산의 명당수가 창덕궁의 존덕정을 지나 창경궁의 북쪽 춘당지를 거쳐 옥천교를 흘러 남쪽으로 흘러가는 개천입니다.
금천교는 궁궐의 안과 밖을 나누는 금천에 놓인 다리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하며, 서거정이 지은 이름입니다.
창경궁 명정문(보물) 및 행각
창경궁 명정전을 둘러싼 행각과 출입문으로 '정사를 밝힌다'라는 의미로조선전기 문신인 서가장이 지은 이름입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된 이후 큰 피해 없이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창경궁 명정전(국보) 일원 모습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국가의 중요행사를 치르던 곳입니다.
이곳 역시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된 이후 큰 피해없이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명전전에서 바라본 청경궁 정문인 홍화문 모습
현재 조선의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어졌습니다.
또한 궁궐 정전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지어진 점도 차이가 납니다.
창경궁 명정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일정한 길이로 가공한 장대석을 깔아 2단의 월대와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월대 정면에 3개의 계단을 설치하고 좌우측에 각각 1개의 계단을 놓았는데, 임금이 다니는 정면의 계단에는 답도와 소맷돌을 두어 다른 계단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원형의 주춧돌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포식 공포를 올렸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박공마루,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발라 양성바름을 하였으며, 망새와 용두, 잡상 등을 설치하여 지붕 위를 장식하였습니다.
명정전 앞마당에도 품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의 모든 궁궐의 정전 앞마당에 설치된 것들과 동일합니다.
명정전 현판
명정전에 있는 드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을 끄기 위한 방화수를 담는 용기입니다.
화마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화재예방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하죠.
명정전 내부 모습
400년 넘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일월오봉도 아래 어좌
명정전 내부는 통간으로 뚫려있으며, 임금이 앉는 어좌 뒤편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세워져 있고, 천장 가운데에는 봉황 두 마리가 걸려있습니다.
창경궁 문정전
창경궁의 편전으로 왕이 신하를 만나 업무보고를 받고, 중요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입니다.
이와 더불어 편전 외에도 왕실의 장례 때에는 혼전(종묘 모시기 전의 신주모시는 건물)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정전은 1986년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창경궁 숭문당
왕이 신하를 접견하였던 전각으로 숭문당이라는 현판은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 옆에 위치하며 명정전과 복도식 회랑으로 연결되고 후문인 빈양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숭문당은 광해군 때 건립되었고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 홑처마로 지어진 집이며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0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영조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을 숭문당으로 불러 접견하며 학문과 정사에 대한 견해를 질문하고 주연을 베푸는 등 인재를 양성하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명정전 뒤쪽 회랑
화랑 좌측에 숭문당이 있고 정면으로는 빈양문이 있습니다.
빈양문은 솟을지붕으로 만든 삼문으로 정전인 명정전에서 숭문당으로도 연결되며 명정전 후문으로 부르던 곳입니다.
명정전에서 회랑식 복도로 연결되어 임금이 행차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외전과 내전의 경계를 이루는 문입니다.
현재의 빈양문은 1834년에 복구한 것이며, 밝음을 공경하며 맞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정전 뒤쪽 공간
담장 너머는 창덕궁 공간으로 담장 쪽에 낙선재가 있습니다.
창경궁 함인정
함인정은 앞마당이 넓게 트여 있어 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3면이 막혀 있었다고 합니다.
함인정 앞의 넓은 마당은 동궐도에도 그대로 나와 있어, 이곳에서 공연 등이 열렸음을 짐작할 수 있답니다.
성종 대에는 인양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소실되었고, 인조가 함인정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임금이 제례를 위해 머물거나 문무에 급제한 인재들을 접견한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담장과 솟을대문이 있었으나 1830년 창경궁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창경궁 경춘전과 환경전 마당
창경궁 경춘전
경춘전은 1483년(성종 15) 성종이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를 위해 지은 대비의 침전으로 26칸이나 되는 비교적 큰 전각입니다.
그러나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인현왕후 민씨(숙종 두 번째 왕비), 헌경황후 홍씨(혜경궁, 정조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 대비뿐 아니라 왕비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으로도 많이 사용한 곳입니다.
경춘전은 여러 번 화재로 불타서 사라져 재건되었으며, 현재의 전각은 1834년에 지은 전각입니다.
창경궁 환경전
환경전은 왕이나 왕세자가 생활하던 내전 건물로 창경궁이 창건될 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이괄의 난, 순조 연간 대화재 등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며, 이곳에서 중종과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왕실 가족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후기에는 장례공간으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창경궁 통명전(보물)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이며 내전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로 통달하여 밝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현판은 순조가 적은 것입니다.
통명전은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을 깔았습니다.
통명전 서쪽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에 정교하게 돌난간을 두르고 작은 돌다리를 놓았습니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 용마루가 없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현재의 통명전은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창경궁 양화당(보물)
양화당은 통명전과 함께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전각입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머물기도 했고,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황후 김씨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입니다.
양화당 뒤쪽 공간 모습
뒤쪽 공간도 계단식 후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통명정과 양화당 아래쪽, 집복헌과 영춘헌이 있는 곳입니다.
창경궁 양화당 옆에 있는 거대한 암반
너무 큰 암반이라 창경궁 전각들을 지을 때 이 공간을 피해 지은 것 같습니다.
창경궁 집복헌과 영춘헌
영춘헌과 집복헌은 창경궁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한 건물인데요.
주로 후궁들의 처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고,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입니다.
청경궁 집복헌
집복헌은 복이 모인다는 의미의 건물로 추존 장조(사도세자)와 순조가 태어난 곳입니다.
1834년(순종 3)에 재건된 것입니다.
일제가 창경원으로 운영할 때에 철거되지 않고 집복헌은 철거되지 않고, 개조되어 창경원의 동물원 관리소로 이용되던 곳입니다.
청경궁 집복헌은 ㅁ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경궁 영춘헌
왕의 침전 혹은 서재 등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봄을 맞이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영춘헌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독서실 겸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1800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었다. 재건된 이후에도 헌종과 고종이 이곳을 서재로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집복헌과 함께 창경원이 되었을 때 철거되지 않고 창경원의 동물원 관리소로 이용되었습니다.
통명전 위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함양문이 있습니다.
계단에 오르면 함양문이 있고, 창덕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 출입구도 인접해 있습니다.
평상시엔 이곳에서 창덕궁 입장료를 내고 입장해야 하죠.
문화가 있는 날엔 무료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창덕궁으로 가지 않고 윗길 산책로를 따라 창경궁 후원(정원)에 있는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산책로에서 통명전과 황화당 뒤쪽 모습이 보입니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무료로 개방되고 있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많이들 산책하고 있습니다.
창경궁 자경전 터
창경궁의 대비전으로 왕의 어머니가 복을 누린다는 의미이며, 경복궁 자경전도 여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창경궁 대비전인 자경전은 1777년(정조 1)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제일 높은 곳에 지었는데요
창덕궁과 가까우면서도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 지은 것입니다.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 때 자경전을 헐어서 자미당을 지은 후 더 이상 건물을 짓지 않았는데, 1909년에 자경전 터 옆에 제실박물관을 지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이왕가 박물관으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덕수궁으로 옮긴 1937년부터 장서각으로 활용하다가 1992년에 철거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경전 터 언덕 위에서 바라본 창경궁 모습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있고 좌측엔 집복헌과 영춘헌이, 우측엔 양화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방으로는 환경전과 명정전까지 보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창경궁 풍기대(보물)와 앙부일구가 있습니다.
풍향을 관측하기 위해 창경궁에 설치된 관측시설입니다.
앙부일구
이건 실제가 아닌 모사품입니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입니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7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시각선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치면서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닥에는 시각선 외에도 13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나는데, 제일 바깥 줄은 동지의 해 그림자가 따라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입니다.
창경궁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습니다.
18세기 것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습니다.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을 관람하고 나오니 명정전 회랑이 길게 보입니다.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궁궐 속 아름다운 정원(후원) 산책
아래는 창경궁을 관람하면서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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