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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종각(종루) / 보신각(터) 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0.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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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종루) / 보신각 풍경

 

 

매년 마지막 날 밤이면 새해를 맞이하는 타종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바로 보신각인데요.
보신각은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한옥으로 흔히 종각(종루)이라고도 불리는데, 매년 12월 31일 밤에 열리는 제야의 종소리의 서울지역 타종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조선시대에 문을 연 종각은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에 종을 치거나, 화재와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종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종각에 갔다가 보신각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보신각(종각) 관람안내

관람시간은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며, 오픈된 공간으로 있습니다.
다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보신각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주차장은 보신각 뒤편에 공영주차장이 있으니 잠시 주차하고 관람하면 됩니다.

 

 


주차요금이 1급지라 5분당 500원, 10분에 1,000원입니다.
(징수시간 평일 10:00~22:00, 토(1:00~18:00, 일. 공휴일 무료)

 

보신각(종각)이 있는 종로1가 사거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모습입니다.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네요.

종각이라는 지명 역시 이곳에 보신각(종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1396년(태조 5)에 처음 설치된 종루는 옛 서울의 중심부인 지금의 인사동에 있었으나 태종 때 현 위치로 옮겨진 곳입니다.
도성 문을 열 때 치는 종을 파루(바라), 문을 닫을 때 치는 종을 인정(인경)이라 햇는데, 파루는 불교의 33천에 따라 33번, 인정은 별자리의 28수(숙)에 따라 28번을 쳤다고 합니다.

 

 


제야의 밤 타종 행사에 수많은 시민인 운집하는 가운데  33번의 타종행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가 되었습니다.
세종 때에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초대형 누각으로 지었으나 전란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면서 규모가 작아지다 조선 후기에는 단층 누각이 되었습니다.

위 건물은 종고루, 종각, 인경전 등으로 불렸는데, 1895년 고종이 보신각이라 명명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79년 세종 때의 규모에 맞춰 새 건물을 지었으며, 현재 걸려 있는 종은 1985년에 제작한 보신각 새 종이고, 옛 보신각 동종( 보물 제2호)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원래 있던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처음엔 사찰의 불사로 쓰이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광해군 11년(1619)부터 이곳에 자리하며 새벽과 밤을 알려오게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수난의 상징처럼 벙어리가 되었고, 해방 후에 다시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야에는 새해 새아침을 알리는 축복의 종으로, 3.1절과 8.15에는 민족의 독립을 일깨우는 광복의 종이 되며 5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옛 종의 수명이 다하면서 1985년, 온 국민의 성금으로 광복 40돌을 맞아 새 종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기념터이기도 한 보신각.
1919년 3.1 독립만세시위의 중심지로 4.23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언한 곳입니다.
한성정부는 일제시대 하의 임시정부를 의미합니다.

보신각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보신각이 있는 곳은 종로구, 종로구의 로고도 보신각 종 모양을 담을 만큼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곳이네요.

제야의 밤 타종행사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각계 시민 대표가 참여하여 타종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타종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된 듯합니다.

2층 누각에 있는 보신각 모습

보신각의 편액은 원래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전소했습니다.

현재의 편액은 1953년 중건 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썼고, 197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보신각은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 목조건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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