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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전주한옥마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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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꼭 들리는 코스 중의 하나는 태조 어진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전주 이씨이며,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의 위패도 경기전 조경모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태조 어진은 조선시대 3란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뱡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아산, 묘향산, 적산상 등으로 옮겨졌다가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면서 돌아왔고, 동학혁명 때 위봉산성으로 옮겨져 화를 면했죠.

 

지금 경기전에 모셔져 있던 태조 어진은 원본이 너무 오래되어 1872년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모델로 삼아 새로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태조 이성계 어진입니다.

 

경기전은 전주한옥마을 입구에 있고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을 단풍이 완전히 물든 모습은 아니지만, 풍경도 나름 멋진 경기전 모습을 담았습니다. 

 

경기전1410년(태종 10)에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완산, 계림, 평양 등 세 곳에 창건하여 태조의 어진을 모셨습니다.

1442년(세종 24)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종전이라 불렀는데요

경기전의 뜻은 조선의 국성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이 터 잡은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이 모두 소실되고, 정유재란 때 경기전마저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1614년(광해군 6)에 경기전만 복원했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복원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경기전 경내에는 국보 317호인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본전인 정전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전주의 여러 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그리고 어진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어진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아직 단풍이 덜 든 모습입니다.

재작년에 업무차 방문했다가 단풍으로 물든 경기전 풍경을 감상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전주 경기전, 전주한옥마을 가볼만한곳 세 번째 이야기

 

경기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기전 하마비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표지석입니다.

왕이나 장군 혹은 벼슬이 높은 유명한 성인들의 태생지나 사당 앞에 세워졌는데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곳 경기전 앞에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네요.

 

전주 경기전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9:00

6~8월 하절기 ~20:0, 11~2월 동절기 ~18:00 

휴무일 없음

관람료(입장료) 개인 3,000원, 청소년 및 대학생, 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무료관람일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주차장 없음

남부시장 주차장(10분 200원), 한옥마을 주차장(30분 1,000원) 등 이용

 

경기전 안내도입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태조 어진이 있는 정전이 있고, 좌측으로는 부속채, 우측에는 전주사고와 예종대왕 태실 및 기가 있습니다.

경기전 뒤쪽에는 조경묘와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보통 경기전 관람순서정전 - 우측의 전주사고 - 뒤쪽의 어진박물관 - 좌측의 부속채 순으로 관람하면 됩니다.

 

정전으로 들어가는 홍살문 모습

 

외삼문에서 바라본 정전 모습

경기전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곳으로 보물 1578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정전은 건물 한가운데에 높게 있고, 어진을 모신 침실, 그 앞으로 정자각이 있습니다.

정전 좌우로는 지붕을 낮게한 익랑이, 익랑 아래 동서에는 지붕이 있는 복도식 형태의 월랑이 있습니다.

 

정전의 앞마당에는 익랑과 월랑이 감싸는 구조로, 이곳은 제례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정자각 정면 기와지붕 애래 넓은 널빤지에는 화재를 막아준다는 의미로 거북이 암수 한쌍이 지키고 있고, 정전 뜰 양 옆에는 화재에 대비해 물을 담아두는 그릇인 드므가 있는 모습입니다.

 

정전의 동쪽에 임시로 어진을 모시던 별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자리에 전주사고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태조 어진 모습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어진은 현존하는 유일본입니다.

 

태조 어진(국보 317호)은 정전의 한가운데 감실을 두고 모셔져 있습니다.

청룡포를 입고 있는 전신상 어진으로 조선을 건국한 왕의 위엄이 있습니다.

 

현재 경기전 정전에 있는 어진은 1872년(고종 9)에 새로 모사한 어진이며, 구본은 초상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전 북쪽에 묻었다고 합니다.

 

정전에서 나오면서 좌측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6시가 넘어가면서 거의 마지막 입장객이 되었고, 주위에는 조명도 들어오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

 

전주사고  

 

1439년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의 보관 장소입니다.

한양, 충주, 성주의 사고와 함께 한 권씩 보관하였는데요.

 

임진왜란으로 다른 세 곳의 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지만, 전주사고의 실록은 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옮겨 보관함으로써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일한 실록은 14개월 만에 조정에 전달되어 다시 한양,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되었고, 전주사고의 원본은 마니산에 보관되었습니다.

 

전주사고 연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홍문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하게 하고, 한 임금의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된 사고에 봉안하여 왔습니다.

 

전주사고는 한양과 충주 사고 두 곳에만 보관하는 것을 염려해 성주사고와 함께 1439년(세종 21)에 설치를 하였습니다.

 

임진왜란과 실록의 피난하면서 보존한 모습

 

경기전 조경묘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부인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이한은 신라 때 사공(도성을 쌓고 고치는 일을 맡던 뱌슬)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던 인물인데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대 후손입니다.

 

조경묘는 조선 영조 47년(1771)에 세워졌고, 영조가 세손이었던 정조에게 쓰게 한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1854년(철종 5)에 경기전과 함께 보수해 지금의 모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경묘 옆으로 경기전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태조어진과 어진 봉안 관련 유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어진박물관

 

청룡포와 황룡포를 입은 태조 어진

 

어진박물관을 나와서 이동하면 경기전 부속건물들이 나옵니다.

벌써 어두어졌습니다.

 

수복청, 마청, 용실, 조과청, 제기고, 어정, 수문장청, 전사청, 동재와 서재 등의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떡이나 유밀, 다식 등의 제사음식을 만들고 보관하는 조과청

나라제사에 제수준비와 제상 차리는 일을 담당하는 전사관이 집무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모습입니다.

 

경기전 일원을 지키던 수문장청과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숙직하는 수복청 모습

 

수목청 모습입니다.

 

조명이 들어온 경기전 정원 모습이 운치가 있네요.

 

경기전 남쪽 담장 모습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서 지금의 경기전 모습은 형형색색으로 갈아입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태조 어진이 봉안되어 있는 경기전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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