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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종묘 설경(눈내린 종묘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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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설경(눈 내린 종묘풍경)

 

 

'눈이 내려 정전의 지붕이 하얗게 덮일 때 종묘는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와 같은 명장면을 연출했다'

 

그제 내린 눈을 보면서 눈이 쌓인 종묘가 문득 보고 싶었습니다.

전에 읽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종묘 설경을 표현한 글귀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눈 내린 다음날 오전에 방문했는데 포근해진 날씨에 정전 지붕의 눈은 모두 녹아 진경산수화 같은 풍경은 보지 못했지만, 주위에 쌓인 종묘 설경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합니다.

 

눈이 내린 종묘의 설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적에 싸인 종묘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묘는 아시다시피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봉행하던 곳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종묘라 부르고 있습니다.

 

유홍준이 책에 적은 것처럼 종묘를 바라보면 존엄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져 나도 모르게 정숙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곳입니다,

 

 

태조가 한양천도를 결정하고 바로 짓기 시작해 1395년에 경복궁과 함께 완공되었는데, 궁궐의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성계획 원칙에 따라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3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에 모셨습니다.

 

정전에는 태조의 신주를 비롯하여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를 비롯하여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 34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없답니다.

 

입구엔 그대로 쌓인 눈이 남아 있습니다.

종묘의 자세한 이야기는 전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 종묘와 종묘제례

 

 

종묘 관람안내

 

입장료 1,000원(25세~64세, 그 외 무료입장)

관람시간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마감 1시간 전 매표마감)

휴관일(휴무일) 매주 화요일

주차장 종묘 공영주차장(5분당 400원, 1시간 4,800원)

 

종묘광장 앞,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종묘전교

처음에 나무다리였던 것을 세종 3년(1421)에 돌다리로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묘 하마비

하마비는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둬 누구나 이곳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명이 적힌 비석입니다.

태종 13년(1413)에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처음엔 나무로 만들었으나 현종 때부터 석비로 바뀌었습니다.

 

종묘광장의 소나무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있어 멋진 설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망부석의 해태는 눈을 잔뜩이고 있네요.

 

종묘광장 중간쯤 가면 우측에 종묘 어정이 있습니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 앞에 보존되어 있는 우물로, 조선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왕래할 때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하여 종묘 어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외삼문) 모습

궁궐 정문과는 다르게 아주 검소하고 단순한 모습입니다.

 

종묘 담장

 

종묘 정문에서 바라본 종묘광장 모습

정면에 세운상가가 보입니다.

 

세운상가 옥상에 만들어진 서울옥상, 종묘 전경이 아름다운 곳

 

안으로 들어서면 정전과 영녕전으로 들어가는 신로가 있습니다.

 

신로는 종묘제례를 위해 만든 길인데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옆이 약간 낮은 세 길 중, 가운데 길은 신주와 향, 축이 들어가는 신로, 동측의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서쪽의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에 작은 연못 있는데, 얼어서 그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여 있습니다.

 

향대청 일원, 망묘루 앞의 작은 연못에도 얼음으로 꽁꽁 얼어 눈이 쌓여 있네요.

 

우측으로 들어서면 제향 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의 망묘루가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제례에 바칠 향, 축문, 폐백을 보관하고, 제례를 주관하는 재관들이 대기하는 향대청이 있고, 제례에 종사하는 집사들의 집사청도 딸려 있습니다.

 

망묘루 뒤쪽엔 공민왕 신당이 있습니다.

 

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데, 정식 이름은 공민왕 영정봉안지당입니다.

공민왕은 밖으로는 원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고, 안으로는 개혁정치를 펼쳤으며, 개인으로서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임금이었다고 합니다.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전하는 말 그림이 사당 안에 있고, 조선왕조 최고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이 모셔진 것은 특이하면서, 그 이유는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집사청과 향대청

 

지붕에 눈이 쌓인 향대청 모습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 등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재궁으로 가는 길

 

종묘 숲에는 아직 쌓인 눈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종묘제례는 국가의 가장 큰제사로서 왕이 친히 주관하며 정전에서 1년에 5회, 영녕전에서 2회 열렸다고 합니다.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하였고, 음악과 노래와 춤이 일체화한 종묘제레악에 맞추어 진행했습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봉행되고 있습니다.

종묘에서는 제사 외에도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으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곳은 재궁 일원입니다.

재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어재실, 아숙실이라고 불립니다.

 

중앙(왼쪽 사진)이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중간)엔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오른쪽)엔 어목욕청입니다.

 

임금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문으로 나와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어재실에 전시되어 있는 십이장복

 

면복은 면류관과 곤복을 통칭하는 왕이나 황제의 예복으로 구장복과 십이장복이 있는데, 십이장복은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태황제와 순종효황제가 국가의식에 착용한 의복입니다.

 

그리고 벽면에 세워져 있는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종묘대제의 의례와 제도를 글과 그림으로 알기 쉽게 표현한 8폭 병풍으로 재궁에 비치되어 있던 것입니다.

 

재궁의 담벼락엔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습니다.

 

재궁 앞에 까치가 눈을 먹고 있네요.ㅎㅎ

 

종묘 정전으로 가는 길

 

담장 너머에 있는 건물은 배향공신당인데요.

공신당은 역대 임금들을 보좌한 공신들의 사당으로 총 16칸, 83위의 공신 위패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종묘 정전 입구

정전은 종묘의 중심으로 긴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쪽으로는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을 했습니다.

 

현재 종묘 정전은 2022년 12월까지 보수정비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노후된 정전의 지붕을 해체하고 보수하는 공사라고 하네요.

 

종묘 정전 신위봉안도

정전에는 태조의 신주를 비롯하여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정전(국보 제227호)은 1395년에 신실 7칸의 규모로 만들어졌고, 여러 차례 늘려지어 현재는 19칸에 이르는 매우 긴 목조건물이 되었습니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중한 지붕이 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남쪽 담장 안에는 공신당과 칠사당을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세웠고, 서문 밖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을 두고 있습니다.

 

정전 지붕에 하얗게 쌓인 눈을 보려고 왔는데, 아쉽게 남향이라 눈 내린 다음날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녹아 사라졌네요.

그만큼 남향으로 배치를 잘해 둔 것이라 생각됩니다.

양쪽 지붕을 해체 보수 중에 있는 상태입니다.

 

정전 담장 위의 눈

 

정전 밖 서쪽에 있는 악공청

종묘제례에서 악공과 무원들이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서쪽으로 돌아가면 종묘 영녕전이 있습니다.

 

종묘 영녕전 정문

 

종묘 영녕전 신위봉안도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를 비롯하여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 34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영녕전(보물 제821호)은 정전에 있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11421년에 지은 건물로. 영녕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전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친밀하게 지어진 특색이 있습니다.

2층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 남, 서쪽에 문을 두었습니다.

원래 6칸이었으나 여러 차례 좌우에 칸을 만들어 현재는 모두 16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쪽에는 제사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이 별도로 있습니다.

 

종묘 영녕전 위쪽으로 올라가면 원래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이 하나의 숲으로 이어져 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에 민족말살정책으로 1931년에 종묘와 창덕궁을 가로질러 율곡로를 만들어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서울시는 2007년 서울 조심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2011년에 창경궁-종묘 연결 복원사업 기공식이 열렸고, 2021년 6월에 복원사업을 완료할 계획에 있습니다.

그동안 율곡로 300미터 구간을 지하화하여 그 위로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연결해 조선시대 원형에 가깝게 만들고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눈 내린 다음날 오전에 종묘 정전의 운치있는 설경을 보러 다녀왔는데, 정전 지붕의 눈은 다 녹아 보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멋진 설경을 본 것 같습니다.

다음엔 정말 눈 오는 날 기회가 되면 다시 다녀오고 싶은 곳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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