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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운현궁,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가에 산책 다녀왔어요

by 휴식같은 친구 2018.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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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조선후기에 아들의 조선 왕 등극으로 막강한 세도정치 권력을 휘두른 흥선대원군의 사가입니다.


회사 근처에 있고 무료입장인 곳이라 가끔 산책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운현궁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로서, 생부 흥선대원군 이항응의 집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여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정치를 했죠.


서운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불리웠다고 합니다.



운현궁은 크게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으로 나누어 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진을 보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864년(고종 1년)에 노안당과 노락당을 짓고, 1869년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습니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네요.



노안당흥선대원군의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며, 노락당안채, 이로당별당으로 쓰였습니다.

그 규모나 격식, 평면 모양은 사대부 집이라기 보다는 궁궐 내전에 가깝다고 합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부분 팔리면서 규모가 크게 줄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규모가 큰데 그 때는 얼마나 컸단 말인지....




안국역 4번 출구에서 운현궁 쪽으로 내려오면서 찍은 운현궁 담벼락 모습입니다.

정확히는 수직사 뒷모습이죠.


수직사는 운현궁 정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에 자리한 건물인데, 운현궁을 지키는 수하들이 사용한 곳이라고 합니다. 1908년 복원할 때 다시 지어졌습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 진 것 같습니다.



운현궁 관람요금은 모두 무료입니다.

아마도 2년 전으로 알고 있는데 덕분에 점심시간에 산책을 자주하곤 하죠...ㅎㅎ





운현궁 관람시간 4월 ~10월은 09:00 ~ 19:00, 동절기에는 09:00 ~ 18:00입니다.


정기휴일매주 월요일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개장합니다.




운현궁 대문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나무 뒤로 한옥 건물들이 보입니다.



노안당 입구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앉아 있네요.

한복은 누가 입어도 예쁜 것 같습니다.


사무실 근처가 고궁과 가까워 한복 입은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볼 때 마다 참 예쁜 옷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장 먼저 노안당 모습입니다.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입니다.


논어에 '노인을 공경하며 평안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노안당 안에는 흥선대원군 모습을 마네킹으로 전시해 두고 있고요.



고종의 봉사식 장면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들을 왕으로 정하는 교서를 받는 의식을 재현해 놓은 곳이죠.



고종(1852년~1919년)조선 제26대 국왕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입니다.

후사없이 승하한 철종의 쥐를 이어 12세 였던 1863년에 즉위하였습니다.


1866년에 명성황후와 결혼하였고, 1897년 10월에 국호를 대한으로,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경운궁 즉조당에서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즉위 하였습니다.



노안당 건물의 옆모습입니다.


운현궁 내에는 정원수로 소나무가 특히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노안당 후면 모습입니다.



노안당 뒤쪽을 지나오면서 보이는 노락당 뒷 모습입니다.



제일 안쪽에 있는 건물인 이로당입니다.


이로당은 별당(안채)으로 쓰였던 곳이죠.

이로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 민씨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노락당 모습입니다.


노락당은 이로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노락당의 규모도 상당히 커보입니다.



노락당 부엌에는 시녀들의 밥상차리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고요.



이 모습은 명성황후의 부대부인 생신축하 방문을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명성황후(1851년~1895년)조선 고종의 황후로 민치록의 딸이죠.


1866년 외척 세도정치의 세력기반을 없애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을 받아 16살에 왕비로 책봉 되었습니다.

1895년 일본의 만행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되었고, 대한제국이 성립된 1897년 황후로 추종되었습니다.


일본의 만행을 생각하면 언제나 분개가 되네요.




노락당 건물의 뒤쪽의 굴뚝도 고급스러워 보이네요.ㅎㅎ



세 개의 건물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면 운현궁 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전시를 통해 운현궁의 가치와 조선 말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운현궁 모형,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착용한 예복, 운현궁의 각종 생활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운현궁 유물전시관 내부 모습입니다.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은 복제품이고, 실제 유물은 서울 역사박물관에 보관 또는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입던 예복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 당시 강력한 쇄국정치로 인해 외국의 침입이 많았던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이죠.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대표적인 쇄국정책의 산물인 척화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1820년~1898년)은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관계가 악화되고, 외래문명의 흡수가 늦어지게 된 원인을 만들기도 했죠.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업적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파를 초월한 인재등용, 사원철폐, 법률제도 확립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임오군란, 갑오개혁 등으로 하야와 재집권을 반복하였고, 복잡한 국제관계 때문에 청나라로 납치되기도 했습니다.



겨울이라 운현궁을 찾는 사람이 드문두문 보입니다.



노락당과 이로당 쪽에도 정원수로 소나무가 많이 들어 서 있습니다.



왕실문화의 전당, 운현궁


사가이기 보다는 궁궐의 내전과 비슷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흥선대원군의 채취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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