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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여행] 세계문화유산에 도전, 양주 회암사지 / 회암사지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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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여행] 세계문화유산에 도전, 양주 회암사지 / 회암사지박물관

 

 

경기도 양주시는 사적 128호인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문화재청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아쉽게도 탈락했다는 소식이 들려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다녀왔습니다.

 

전국의 역사유적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들어 봤는데 이번 회암사지는 뉴스를 통해서 처음 들어본 곳이기도 해서 서둘러 다녀온 온 것입니다.

 

회암사는 고려 중기에 창건되었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준 뒤 스승인 무학대사와 함께 머무는 등 조선 최대의 왕실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주 피크닉 장소로도 좋은 양주 회암사지와 회암사지박물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주시립 회암사지와 회암사지박물관은 경기도 양주시 동남쪽에 위치한 회암동에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고려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대의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되어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창건 시기도, 폐사된 시기도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발굴을 통해 조선 중기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회암사지 관람료는 무료이며, 주차장은 회암사지 박물관 앞에 무료로 하면 됩니다.

 

회암사지 앞에는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이 있습니다.

역시 실내 박물관이라 코로나로 인해 오픈은 되어 있지 않아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1~2월 09:00~17:00, 3~10월 09:00~18:00

(입장마감은 마감 1시간 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1, 설날과 추석

 

관람료(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7세 이하, 65세 이상, 양주시민 등은 무료입장)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양주시에서는 회암사지를 경기북부 최고의 관광지와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요.

회암사지 발굴조사, 박물관 건립, 유적 및 단지정비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2012년 박물관을 개관하였네요.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 상설전시장에서는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기록, 모형 및 영상을 통해 회암사의 역사와 앙실과의 관계, 대가람의 위상 등에 대해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회암사지 미로공원

회암사지에서 발견된 많은 기와 조각들을 이용해 미로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2020년 10월 17일에 양주 회암사지에서는 왕실축제를 계획하고 있네요.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회암사지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역사를 공부하고 쉬다가는 축제인 듯합니다.

 

회암사지박물관에서 만드는 왕실일보

 

회암사지는 2019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문화재청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지만, 2018년에 이어 이번에도 문화재청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4세기 동아시아 불교사원의 모습은 고고유산으로 인정받았지만 등록기준 재조정, 비교연구 보완 등의 사유로 부결됐는데요.

양주시는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계속 도전할 모양입니다.

 

회암사지는 1964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후 1997년부터 2016년까지 20여 년에 걸친 발굴조사, 박물관 건립, 유적정비 등 종합정비사업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회암사지 앞에는 너른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피크닉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소 더운 날씨에 그늘 아래, 텐트를 치고 나들이하는 가족들이 제법 많이 있네요.

 

조선 태조의 행렬을 재현해 놓은 조형물

 

천보산 아래 자리 잡은 회암사지 모습

 

천보산 남쪽의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된 평지형 가람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계단형으로 조성하여 전체적으로 8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당대 최고의 사찰인 이곳의 호암사는 왜 북향으로 지어졌는지 그 부분은 조금 아리송합니다.

 

회암사지는 일찍부터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2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건물지는 70개소 이상, 그중 35개소 이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다고.

 

 

각 건물근은 네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요.

종교영역, 생활영역, 정치영역 등 고대 가람배치를 따르면서도 궁궐의 편전과 침전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배치된 점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있을 당시 태조 이성계가 머물면서 지은 사찰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회암사지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발과 같은 형태의 불교 장엄물인 당을 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요.

현 위치의 좌측으로부터 15m 거리에 있는 담장 지대석 밑에 쓰러져 매몰되어 있는 것을 1981년에 발굴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회암사지 모습

 

회암사는 인도출신의 원나라 승려 지공선사가 1326년경 전국 사찰들을 순례하다가 회암사 지형이 인도의 아란타사와 같아 가람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흥할 것이라 하여 1328년에 창건했고, 고려 공민왕의 왕사를 지낸 지공선사의 제자이기도 한 나옹이 크게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말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원증국사 보우(1301~1382)도 제자인 무학대사 자초(1327~1405)와 함께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회암사가 더더욱 부각되었고,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물려주고 스승이자 친구였던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머물 때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불심이 깊었던 효령대군은 회암사 중창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고, 1472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기도 했고, 문정왕후도 크게 중창하여 전국 제일의 사찰로 중흥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회암사에는 승려만 3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집니다.

 

회암사에서는 왕실관련 의식이나 행사 등이 전개되기도 하였고, 왕실 후원으로 중창과 중수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문정왕후 이후 불교계의 쇠퇴 분위기에서 회암사도 서서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중후반에 역사의 무대에서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렇게 큰 절이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는지는 역사 기록이 없어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인 듯합니다.

 

조선 중기까지 불교계의 중심적인 축으로 있다가 폐사되면서 그 이후 중창되지 못했다고 하니 아쉽게만 여겨지네요.

당시 회암사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공사를 했고, 기와와 자기 등의 품질도 최고급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 유물에서 명문이 새겨져 있어 후원자와 제작시기를 알 수 있고, 궁궐에서 사용하는 청기와, 궁궐 건축물의 지붕 추녀마루에 올리는 용두와 잡상들도 출토되었습니다.

 

최고급 도자기와 금속공예품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당시 회암사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네요.

 

회암사지의 생활권역 모습

제1권역의 동쪽으로 맷돌 서쪽에는 우물지가 있고, 공방지 등으로 볼 때 생활하던 장소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2권역의 모습

정문지, 9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계단과 배수시설, 내부 담장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부뚜막이 사용한 흔적이 있어 생활이 가능했던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제3권역보광전지를 포함하여 7개소의 건물지와 동서 석축단,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동쪽에는 일자 건물지, 서쪽에는 서승당지가 있습니다.

 

보광전은 광명으로 불법을 시방세계에 두루 널리 비추는 의미로 대부분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추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광전은 정면 5칸으로 천보산 회암사수조기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제4권역은 설법전지를 포함하여 9개소의 건물지와 배수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동쪽에는 영당지, 서기료지가 있고, 서쪽으로는 조사전지, 수좌료지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계단을 통해 사리전지와 연결됩니다.

 

사리전지 동쪽으로는 입실료지, 서쪽으로는 시자료지가 엄격한 대칭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5권역은 가장 북단에 위치하며 정청지를 포함하여 5개소의 건물지와 회암사지부도탑, 배수시설과 동서북측의 석축이 확인되었습니다.

 

정청지를 중심으로 동쪽엔 동방장지, 나한전지, 서쪽에는 서방전지, 대장전지가 있습니다.

 

정청지는 공공건물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중심 역할을 하는 건물로 사찰에서는 잘 없는 것으로 보아 왕의 거처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장전지 앞에는 윤장대를 놓았던 흔적이 있으며, 중앙의 남북측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방장지

 

서쪽 축대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회암사지 모습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회암사지부도탑은 회암사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승려의 부도탑인지, 불탑인지 정확한 용도는 모르는 상태라고 하네요.

 

높이가 3.36m로 우리나라 전통 부도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높은 2층이며, 탑신부도 매우 높고 기형을 이루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회암사지 전체에 전체 건물인 70개소가 다 들어찼다면 그 규모가 정말 대단했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드네요.

 

북서쪽 위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모습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더운 날씨였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내내 절의 규모에 놀라곤 했습니다.

 

회암사지에서는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무학대사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부도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발견되어 화암사지 위에 있는 회암사에 옮겨져 있습니다.

 

2020/06/16 - [투어] - 양주 가볼만한 곳, 천보산 회암사

 

500여년의 기나긴 침묵 끝에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회암사지.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회암사는 대가람이었음에 분명해 보이며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찰입니다.

양주여행, 양주 가볼만한 곳으로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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