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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대구시 여행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절, 군위 인각사

by 휴식같은 친구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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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절, 군위 인각사

 

 

삼국유사의 고장, 대구광역시 군위군.

 

그 삼국유사를 편찬한 이가 고려시대 일연스님이고, 바로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위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지는 단연 인각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군위 인각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1)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307년(고려 충렬왕 33)에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입적했으니, 그 세월만 1,500여년이 다 돼가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다만, 임진왜란 등으로 원래의 사찰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다시 지은 곳이라 인각사지가 올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삼국유사면 이름의 주인공인 인각사 풍경을 담았습니다.

 

인각사지는 화산의 북쪽 맨 끝 기슭 위천 강가 퇴적지에 있던 절터입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번성하여 고려시대에는 보각국사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 동안 이 절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쓴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인각사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창건연대는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발굴조사 때 대웅전 터로 생각되는 건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해 신라 후기의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럼 면 이름을 삼국유사면으로 바꿀 만큼 삼국유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의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이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입니다.

 

곽영대 소장이 삼국유사 3권 1책(국보)은 간행시기가 가장 이른 현존본 중의 하나로 1394년경 경주에서 간행된 것이라고 합니다.

규장각 소장의 삼국유사 5권 2책(국보)은 조선 초기에 간행한 책으로 1512년(중종 7)에 경주에서 발행되었습니다.

 

고려 중기에 유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김부식(1075~1151)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사적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역사서입니다.

 

다만,  삼국사기는 여러 사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써진 이른바 야사이므로 체재나 문사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고대 사회의 역사,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의 기본서로서 삼국사기에 없는 많은 사료를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고조선에 대한 서술은 대한민국의 반만 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했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해 준 책입니다.

 

인각사지는 부지는 무척 넓어 보이지만 건물은 띄엄띄엄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2동의 요사채뿐으로, 극락전과 요사, 국사전, 박물관 등이 전부입니다.

 

인각사 내에는 보물인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를 비롯해 인각사 석불좌상,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 군위 인각사 삼층석탑 등의 유형문화재가 있습니다.

 

인각사 극락전과 그 앞에 있는 인각사 삼층석탑

 

극락전 내부

 

군위 인각사 삼층석탑(경북 문화재 자료 427호)

 

2층 기단과 머리 장식부 일부가 남아 있으며, 1층 기단부는 땅속에 있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고쳐 세운 것입니다.

석탑의 규모와 층수, 지붕돌 밑면에 4단으로 만든 계단식 받침, 꼭대기 장식물 등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각사 미륵당

 

미륵당에 모셔져 있는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경북 문화재 자료 426호)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석불 좌상은 양팔, 허리 앞부분이 없어졌고, 머리는 깨져 있습니다.

목 부분도 깨져서 시멘트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불상의 얼굴과 옷 주름을 표현한 조각 솜씨나 신체 비례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아울로 석불좌상은 인각사의 창건 연대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인각사지 풍경

 

인각사 산신각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보물 428호)

 

 보각국사 탑과 비는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보각국사 일연이 열반한 후 세운 사리탑과 그의 평생 발자취를 상세하기 기록해 둔 비입니다.

탑의 건립연도는 일연 스님이 열반한 1289년에서 1295년 아이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마을 뒷산 부도골 주변에 있던 것을 1962년 인각사 마당으로 옮긴 것입니다.

 

 

 

보각국사비 앞면과 뒷면

 

보각국사비의 글씨는 임진왜란의 병화로 글자의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박영돈 선생이 주도하에 그간 발견된 탁본들을 바탕으로 2006년 복원했다고 합니다.

 

 

 

보각국사비는 충렬왕 21년(1295)에 세웠는데요.

문인인 청분이 지어 올린 행장을 바탕으로 문장가 민지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문인인 죽허에게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도록 했습니다.

 

비문의 앞면은 일연의 발자취와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은 비를 세우게 된 과정과 제자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비문의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문헌에서 찾아 모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다소 황량하게 보이는 인각사지 모습

 

인각사 보각국사탑(좌)인각사 석불좌상(우,경북 유형문화재 339호)  

 

보각국사 탑 역시 보각국사비와 함께  충렬왕 21년(1295)에 세운 부도탑입니다.

노년에 인각사로 내려와 늙은 어머니를 지극히 받들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인근의 일연 어머니 묘소를 비추었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각사 석불좌상은 고로면 괴산리의 절터에서 이곳으로 옮겨놓은 불상입니다.

 

전체 높이 약 153㎝, 불두 높이 약 53.5㎝, 어깨 폭 약 64㎝, 무릎 폭 약 97.5㎝이며, 불신과 배처럼 생긴 광배를 하나의 돌에 양각하였습니다.

석불좌상은 조각수법으로 볼 때 10세기~11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명부전

 

국사전, 박물관 요새채가 있는 건물들

 

인각사 뒤에 있는 산은 절뒷산(369.8m)입니다.

 

인각사 국사전

일연선사의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전각입니다.

 

일연스님의 영정이 걸려 있습니다.

 

 

일연 스님은 고려시대의 승려로 경북 경산시 압량군 태생으로 원효대사와 동향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유사를 편찬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방점을 찍은 승려죠.

 

1214년(9세)에 전라도 해양(광주광역시 인근) 무량사에서 대웅 밑에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14세)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습니다.

1227년(22세) 승과 시험에 급제해서 22년 동안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비슬산 대견사에서 초임 주지를 지냈고, 1237년(32세) 삼중대사, 1246년(41세) 선사가 되었는데 이 시기는 몽골 제국이 본격적으로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259년(54세)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56세)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군 선원사의 주지가 되어 보조국사 지눌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며, 1264년(59세)에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오어사로 옮겨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268년(63세) 운해사에서 대덕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해 맹주가 되었고, 1277년(72세) 운문사 주지가 되었으며 당시 경주에 와 있던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충렬왕을 1년 가까이 모시면서 충렬왕에게 법을 강론했습니다.

1283년(78세) 충렬왕을 따라 개성으로 돌아가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으나, 노모를 모신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기를 청해 반년 동안 살았지만 그해에 어머니는 아흔여섯 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1284년(79세)에 경상도 군위군의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열었으며, 1289년 군위군 인각사에서 세수 84세로 사망했고 이후 나라에서 보각국존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나무위키 인용)

 

군위 인각사 연표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외에도 불교서적 100여권을 저술했고,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열었다고 합니다.

 

일연스님 이야기

 

보각국사비첩

 

일연스님 연혁

 

인각사 발굴조사 출토 부재

 

인각사 옆 공터(국사전 뒤)에는 2006년 일연스님 탄생 800주년을 맞아 보각국사비를 재현하여 조성한 조성한 비가 있는데요.

비각 속에 보가국사비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인각상 앞에는 위천에 병풍처럼 만들어진 바위가 있는데, 군위 학소대라고 합니다.

 

군위 명소, 인각사 앞 군위 학소대 풍경(일연테마로드)

 

 

인각사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일연스님을 기리기 위한 일연공원이 있고, 군위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진 군위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군위댐 하류에 있는 군위 일연공원

삼국유사면 군위다목적댐 전망대의 군위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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