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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정읍 무성서원(세계문화유산), 정읍 가볼만한 곳

by 휴식같은 친구 2019.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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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가볼만한 곳, 정읍 무성서원(세계문화유산)

 

 

정읍여행 이틀 차에 들린 곳은 정읍 무성서원.

 

지난 7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인데요.

한국에서 14번째로 지정된 1,100년의 역사를 품은 곳입니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전국의 9곳의 서원 중 하나로 무성서원이 포함되었는데 전북 유일의 서원이라고 하네요.

 

다른 지역의 서원들은 풍경 좋은 곳에 자리하여 나름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만, 무성서원은 풍경은 별로이고 지역주민들과 밀착형 서원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다른 서원과 다르게 천민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사원이라고 합니다.

 

정읍 가볼만한 곳, 무성서원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무성서원은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사원인데요.

 

 

신라말(886년) 태산 태수로 부임하여 8년간 선정을 베푼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생사당(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당시에는 태산사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사당이 후에 서원을 바뀐 것을 고려한다면 무성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1483년(성종 14)에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고, 1549년(명종 4) 신잠의 생사당을 짓고 태산사에 배향했습니다.

서원은 1615년에 건립하여 태산사원이라 했는데 , 1630년(인조 8) 정극인(상춘곡 지은이), 안세림, 정언충, 김약묵, 1675년(숙종 1)에 김관을 추가로 배향한 곳이랍니다.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의 사원 중 하나(조선시대 사원은 1,000개가 넘었다고 함)입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현가루, 강당, 동서재, 사우, 비각 등이 있습니다.

 

무성서원은 주차장과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고,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어 원하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일행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무성서원이 나오는데 가운데 광장이 제법 넓습니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에서 모든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리학 교육기관입니다.

한국의 서원들은 16세기 중반~17세기 중반 즈음에 세워졌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크게 향교와 서원이 있습니다.

향교는 국가에서 운영했고, 서원은 지방 학자들이 후학 양성을 위해 만들 사설 교육기관입니다.

 

무성서원 정문 역할을 하는 현가루 모습

 

이번에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총 9개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편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입니다.

이 중에서 전라북도 지역에 있는 서원은 정읍 무성서원이 유일한데요.

 

 

무성서원에 당시 영의정을 지냈던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최응 불망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최응의 도움으로 서원철폐령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성서원 앞에 세워져 있는 비각들

우측에서 두 번째로 세워져 있는 비석이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최응 불망비'입니다.

 

현가루 모습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모습입니다.

 

현가루는 외삼문 대신 1891년에 건립한 전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인데요.

명칭은 논어의 현가불철에서 따왔는데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도 학문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원으로 운영할 당시에는 학생들이 2층에서 놀이를 하는 등 휴식장소로 활용했다고 하네요.

 

서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입좌출, 

즉, 우측으로 공손히 들어가고, 나올 때에는 좌측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학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고,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국난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킴)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서원은 크게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으로 나뉘는데 앞 건물이 강학영역, 그 뒤에 내삼문과 사당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비각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고, 오른쪽에는 강수재로 갈 수 있는 협문이 있습니다.

 

무성서원 강당 모습

강당은 무성서원의 강학공간으로 1475년 불우헌 정극인이 향약을 창설하면서 세워진 향학당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15년에 태산서원이 창건되면서 현재의 규모나 형태는 다르지만 강당역할을 하는 상사가 있었고, 1825년에 강당이 큰 불로 소실된 후, 1828년에 현감 서호순의 도움으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696년(숙종 22)에 사액(임금이 서원에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림)되었음을 현판에 적혀있고, 

당시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좌우에 있는 방에는 스승과 무성서원 교장이 숙식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무성서원 강당 앞에 있는 향나무와 은행나무

조선시대 제향공간에는 보통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무성서원도 마찬가지네요.

그리고 은행나무는 해충을 물리치고, 가을에 은행을 수확해 서원 재정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강당 뒤에서 바라본 모습

실제 제향영역의 최치원 영정에서 보면 현가루까지 일직선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제향영역

서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향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이 문이 내삼문이고 안쪽으로 최치원의 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태산사입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하고 1844년(헌종 10)에 중수하였는데, 최치원, 정극인(상춘곡 지은이), 안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7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무성서원 향사는 매년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 지냈으나, 현재는 2월 중정일에 한 번 지낸다고 하네요.

 

태산사 모습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 불렀습니다.

고려 말 훼철되었다가 1483년(성종 14)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현재 건물은 1844년(헌종 10)에 세운 것입니다.

 

강수재로 나가는 쪽문에 있는 고목에는 딱따구리가 살고 있어서 구멍이 몇 개 파여 있습니다.

 

강수재

유생들의 기숙공간으로 동재인 강수재와 서재인 흥학재가 있었으나 현재 강수재만 남아 있습니다.

1696년 사액 후에 고사를 강수재로 변경하고, 강수재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현재 건물은 1887년(고종 24)에 세워진 것입니다.

 

태산사 옆과 위쪽으로는 400~5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각종 비각이 있는 모습

 

이 비각은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입니다.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부정부패와 구국항일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한 인물입니다.

23세에 급제하고 74세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에 부당함을 상소하기도 했습니다.

 

 

800명으로 늘어난 의병으로 남원으로 진군하다 진압군이 왜군이 아닌 동족이라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해산을 하고, 서울로 압송된 후 일제에 의한 재판으로 대마도 3년 감금형을 받았습니다.

이때 최익현은 일제의 땅을 밟을 수 없다며 신발에 조선의 흙을 깔고 갔고, 단식 끝에 1906년 10월 17일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됐습니다.

 

무성서원의 모든 것은 문화재청 소속이지만 이 비각만 국방부 소관이라고 하네요.

 

금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고 그 이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았던 곳이라 근처에는 편의시설이 거의 전무합니다.

 

태인 방각본 전시관이라는 곳에 책향기 찻집이라는 곳이 한 군데 있어 친구들과 들어가서 쌍화차를 마시고 왔는데 아래 링크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읍 무성서원 카페, 태인방각본전시관 책향기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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