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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단종 복위운동의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

by 휴식같은 친구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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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복위운동의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

 

 

노량진에 가면 단종 복위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충신들의 묘가 있는 공원이 있습니다.

바로 사육신공원/사육신묘인데요.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의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과 병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때 성삼문, 정인지, 박팽년 등 43명의 정난공신 칭호를 받고 수양대군은 왕위에 올랐으나 세조가 왕의 전제권을 확립하려 하자 집현전 출신의 유신들은 즉각 발발하게 됩니다.

 

이때 일부 유신들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도모하였고, 이 계획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들은 1456년 명의 사신을 맞이하는 창덕궁에서 세조를 살해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변경되자 거사가 미루어졌습니다.

이때 불안을 느낀 김질이 밀고해 6명이 모두 처형을 당했는데 이들을 두고 사육신이라고 합니다.

 

단종 복위운동으로 목숨을 바친 여섯 분들이 모셔져 있는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는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역과 노들역(한강대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육신묘 일대를 성역으로 가꾸어 문을 연 공원이 사육신역사공원입니다.

 

사육신은 정확히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등 일곱 충신을 가리킵니다.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참수당한 사람들인데요.

 

 

이들에 비해 단종복위운동을 하였으나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육신이라고 합니다.

죽지는 않았지만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산 선비들입니다.

생육신은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김시습은 사육신들이 처형 당하자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기도 했습니다.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에는 주차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강대교 남단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요.

걸어서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위치입니다.

 

 

이곳도 주차면수가 적어서 주차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대안으로 노들나루공원 앞에 6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무료주차장이 있지만, 역시 미리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차지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두 곳 주차하기가 힘들면 민간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합니다.

사육신공원 길 건너에 프렌디빌딩 주차장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네요.

 

한강대교 남측 노상공영주차장은 평일엔 09:00~19:00, 토요일엔 09:00~15:00까지만 유료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주차요금은 5분당 250원, 1시간에 3,000원입니다.

 

토요일 늦게 방문했는데 무료로 한 자리 남은 주차공간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사육신공원 입구 모습

 

사육신공원에는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죽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등 일곱 충신이 모셔진 사육신묘가 있고, 조망명소와 야생화정원,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사육신묘 홍살문

 

단종(1441~1457)은 문종의 외아들로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는 단종을 낳은 후 사흘 만에 죽고, 문종이 승하하자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비운의 왕이죠.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1년 만인 1453년에 유명무실한 왕이 되고, 왕위를 물려받은 지 3년 만인 1455년에 강압에 의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은 연금상태로 있다가 1457년(단종 17세)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운동을 펼친 것을 기회로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때 다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비운의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영주여행] 단종복위운동으로 순절한 '금성대군 신단'

 

사육신역사공원 사육신묘 입구인 불이문 모습

 

사육신묘 관람시간(참배시간)하절기 09:00~17:30, 동절기에는 09:00~17:00입니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18:00까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해서 오후 5시 반이 넘어 도착했는데 결국은 내부는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사육신묘는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7년(1681)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를 세워 이들을 기리게 했습니다.

 

1955년에는 사육신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이후 묘역을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여 충효사상을 기리고자 하였답니다.

원래의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후에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묘도 만들어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의절사 모습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담장 너머로 의절사 앞을 찍었습니다.

의절사는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유응부 등 일곱 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신도비인데 의절사 좌측에 있습니다.

신도비는 1782년(정조 6)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비명은 태학사 조관빈이 찬하고, 글씨는 당나라의 안진경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하네요.

 

우측에는 육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참배할 수 없어서 위쪽으로 돌아 올라가니 몇 개의 묘가 보입니다.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는 실제 묘이고,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묘는 가묘라고 합니다.

 

의절사 안의 위패와 마찬가지로 뒤에 있는 묘소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서쪽부터 하위지, 성삼문, 유성원, 이개, 유응부, 박팽년, 김문기 순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사육신공원 모습

사육신역사관인데, 코로나로 인해 내부 관람시설은 폐쇄 중입니다.

사육신 역사관은 사육신에 대한 전시물과 영상물을 만나 볼 수 있고, 노량진 수험생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도 운영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코로나로 인해서 실내 전시관은 모조리 문을 닫고 있어서 아쉽긴 하네요.

 

사육신공원 조망명소

여의도 불꽃축제할 때 명당자리이기도 한 곳입니다.ㅎㅎ

 

한강과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강철교 모습

 

여의도 일대 모습

 

야생화정원에는 아직 장미꽃 일부가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 사육신묘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그나마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서 의인으로 남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죠.

사육신의 충절을 길이길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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