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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운현궁 가을산책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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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가을산책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가 되었네요.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면서 고종이 어린시절을 보낸 종로구 운현궁에도 가을이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있어서 종종 산책 겸 다녀오는 곳인데, 가을 단풍이 예뻐서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운현궁에 가게 되면 꼭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당시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화합하여 적극적으로 외국문물을 받아들였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당시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조선 침략이 너무나 컸다는 생각에 하게 됩니다.

지금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운현궁, 격동의 조선말, 왕실정치의 중심에 섰던 운현궁 가을풍경을 담았습니다.

운현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전 입장마감)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개관)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

입구에서 발열체크하고, QR코드로 신원확인 작업 후 입장이 가능합니다.

운현궁 입구 인도에 있는 운현궁 양관

운현궁 양관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이 일본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1911년에 준공한 프랑스 풍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원래 접객과 연회를 했던 운현궁 사당이 있던 자리로, 해방 직후 한 때 백범 김구의 집무실로 사용했고, 지금은 덕성여대 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운현궁 담장과 은행나무

운현궁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이 12살까지 살던 집으로,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집이기도 합니다.
운현이란 이름은 기상관측을 맡아보던 서운관 앞에 있는 고개이름을 따온 듯합니다.

고종이 임금이 된 이듬해인 1864년에 흥선대원군이의 생활공간인 사랑채 노안당과 안채 노락당을 지었습니다.
1869년 무렵에는 별당인 이로당과 영로당을 지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10여 년간 이곳 운현궁에서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당시의 운현궁은 창덕궁과 이어져  있어 규모가 상당했으나, 점차 규모가 줄어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네요.

운현궁 너른 마당

색색의 단풍이 운현궁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종 즉위 이전의 운현궁과 즉위 후의 운현궁

흥선대원군 가는 고종 즉위 이전부터 이미 운현에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경운동 보통학교 인근에 위치해 있다가, 고종이 즉위한 후 본궁에 건물들을 지으면서 규모가 확장되고, 운형궁이라 불리었다고 전해지네요.

후사없이 사망한 철종의 뒤를 이어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으로 등극하면서 국왕의 잠저가 된 한국근대사의 역사적 위상을 지닌 공간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진 별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각 궁방의 조세가 모이는 종친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정치의 공간이었던 운현궁은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실각하고, 석파란에 매진하였던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수직사

정문 오른쪽에 있는 이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공간입니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고,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인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수직사 내부 모습

운현궁에는 앞의 수직사를 비롯하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노안당 입구에 있는 이 나무는 조선을 호령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행적을 모두 지켜봤겠지만,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ㅎㅎ

운현궁 노안당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는데요.
노안은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논어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노안당은 노락당과 함께 1864년(고종 1) 3월에 상량하고 완공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고관대작들을 만나며 정치를 했던 장소였고, 실각하고 나서는 석파란을 그리며 예술활동에 집념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노안당의 편액(현판)

원래의 편액은 보존처리 후 서울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고, 현재의 것은 모각본을 만들어 달아 둔 것이라고 합니다.

담장 너머가 덕성여대 사회교육원으로 사용되는 공간인데요.
예전에는 경운궁 양관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노안당 뒤쪽 모습

운현궁 노락당

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채로 노안당과 같은 해인 1864년(고종 1)에 완공되었습니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을, 앞뒤로는 툇간을 둔 궁궐 내전 평면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모양)을 장식하여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내고 있다 합니다.
1866년(고종 3)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곳이랍니다.

노락당 뒤편 모습

운현궁 이로당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안채로 사용하던 곳인데요.
이로는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부대부인 여흥 민씨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노안당보다 늦은 1869년(고종 6)에 지어진 곳으로, 실내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로당 뒤편은 운니동 김승현 가옥이 있는데 원래 운현궁에 속한 건물로 영로당이라고 불렸었다고 합니다.

운현궁 이로당 옆에 있는 은행나무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네요.

이로당에서 나오면 운현궁 상설전시관이 있는데 코로나19로 개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운현궁은 건물이 몇 채 남아있지 않아 천천히 산보하 듯 구경해도 10~20분이면 관람이 가능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운현궁이 다소 쓸쓸해 보이지만, 낭만과 예스러움이 함께 묻어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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