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조선왕릉, 정릉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입니다.
삼성동 선정릉에도 정릉이 있는데, 이곳은 11대 왕인 중종(1488~1544)의 왕릉이니 혼동할 수도 있겠습니다.
태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신덕왕후는 죽어서도 태조가 가까이 두고 싶어서인지 정동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주 찾았고, 정릉의 원찰인 흥천사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태조가 첫째 부인인 신의왕후의 여섯 아들을 제껴두고 둘째 부인의 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키자 왕자의 난의 씨앗이 되었고, 태종은 왕위에 오르자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고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기면서 일반인의 묘나 다름없게 만들었던 수난의 왕릉이 되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날, 성북동 나들이 갔다가 정릉에 들러 산책하고 왔습니다.
정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매표 및 입장가능 시간은 1시간 전까지)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만 25~64세 1,0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무료(7~8대 공간 있음)
관람소요시간 정릉은 15분, 둘레길까지는 총 3.8km로 1시간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권문세가였고, 태조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 영역을 넓히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왕비인 신의왕후는 조선 건국 이전에 세상을 떠나 조선 건국 후 조선 최초의 왕비에 책봉된 인물입니다.
슬하에 방번과 방석이 있었고, 방석인 의안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정치적 지지기반을 닦었으나, 사후에 왕자의 난으로 두 아들을 모두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죠.
태종이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후 왕위에 오르자 정릉은 정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고, 1669년(현종 10)에 송시열 등이 건의하여 신덕왕후의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앙비로 인정받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왕릉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태종은 정릉의 철거지에 있던 정자각을 옮겨 태평각 누각을 짓고 봉분의 흔적을 없앴고, 왕비의 제례를 폐하고, 봄, 가을 중월제로 격하시켰습니다.
묘에 신위를 모실 때 태조와 자신의 친어머니 신의왕후를 함께 모시고,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해 신위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1410년 홍수로 광통교가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로 돌다리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정릉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들어가면 정릉 재실이 있습니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해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준비를 하던 곳입니다.
능참봉의 재실과 제기고, 그외 부속강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실되었다가 2012년에 발굴조사하여 2014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정릉 입구의 금천교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합니다.
5월의 정릉은 푸르름이 가득합니다.
정릉은 일대가 공사 중에 있습니다.
정릉은 다른 왕릉과 입구부터 다소 다릅니다.
입구의 금천교는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대표적 조형물로, 주변에 다양한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정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가 직선이 아니라 'ㄱ'자로 꺾여 있습니다.
정릉 정자각과 봉분 모습
신덕왕후의 정릉이 260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신덕왕후를 종묘에 부묘하자는 송시열 등의 상소로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는데요.
왕비로 인정받으며 정릉이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 정릉 일대에 많은 비가 쏟아져 사람들은 이 비를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자각
매년 9월 23일에 이곳에서 제향을 지낸다고 합니다.
진설도
정릉 봉분에는 난간석과 병풍석이 없으며, 혼유석, 문인석, 석마, 각각 1쌍의 석양과 석호가 있습니다.
조선 초대 국모의 능이라 할 수 있는 정릉은 다른 왕비의 능에 비해 상설의 규모가 작고 초라하며 석물도 원형이 아니라고 하네요.
당초 능을 조성했을 때는 고려 공민왕처럼 화려한 병풍석과 난간석은 물론 무인석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사각장명등은 고려양식이라고 합니다.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고려시대의 왕릉에 있던 양식이라고 합니다.
봉분 좌측에서 찍은 모습
사진 우측 아래에 보이는 것은 소전대라고 하는데요.
소전대는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건원릉, 헌릉, 정릉에만 있는 조선시대 초기 왕릉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수라간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쓸 제사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를 위한 공간입니다.
우측에는 정릉비각(좌)과 수복방이 있습니다.
정릉 비각
비각은 후세에 사적을 전하기 위하여 돌이나 철, 나무 등에 글을 적어 세워둔 비를 보관한 건물입니다.
수복방
수복방은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곳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첫 번째 왕비이면서 세자책봉을 자기 아들로 했다는 이유로 종묘에 신주마저 들어가지 못한 신덕왕후.
안타까운 일이지만, 태종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릉 앞마당에는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록이 무성한 정릉 산책로 모습
정릉 산책로는 짧은 코스는 360여 m, 긴 코스는 2.5km 정도 됩니다.
정릉에서 북악터널 쪽으로 가는 도로 좌측에서 350미터 정도 가면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원찰 흥천사가 있습니다.
원찰이란 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사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우는 사찰을 말하는데요.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씨가 사망한 이후 직접 정릉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행차를 조석으로 바쳤으며, 정릉의 아침 재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라를 들었을 정도로 매우 사랑했다고 합니다.
흥천사는 정동에 있다가 불타서 방치되다가 정조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시간관계상 흥천사는 방문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다시 들러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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