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나들이 - 돈화문, 인정전, 대조전, 선원전, 희정당
지난 주말 오랜만에 창덕궁과 창덕궁 후원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여러 번 가 본 곳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움이 있는 궁궐로 다가오고, 그 전에는 대충 보고 왔던 것들이 이번에는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과 함께 조선시대의 5대 궁궐 중 하나로 조선시대 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정사를 펼치던 궁궐인데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였습니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 궁궐이라 하여 ‘동궐’(경희궁을 서궁이라 함)이라 불렀습니다.
창덕궁의 돈화문, 인정전, 대조전, 선원전, 희정당 등 각 전각들을 둘러보며 풍경을 담았습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보물 383호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는데,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습니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습니다.
창덕궁 돈화문 앞과 주위는 최근 정비공사를 거쳐 깔끔하게 정비되었습니다.
매표소도 돈화문 앞에서 옆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건물에서 매표하게 되었습니다.
창덕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 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
(입장마감은 1시간 전)
휴궁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25~64세 3,000원, 그 외 내국인은 무료
(후원은 별도 예배, 성인 5,000원)
주차장 주차요금은 기본 30분 1,500원, 추가 10분당 500원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창덕궁의 푸릇푸릇한 여름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덕궁의 주요 전각들
창덕궁은 면적이 워낙 넓어서 다 돌아보는데 1~2시간이 필요하며, 후원은 별도로 1시간 30분 정도는 소요됩니다.
창덕궁 관람순서는 돈화문-금천교-궐내각사-선원전-인정전-선정전-희정당-대조전-낙선재 순으로 구경하면 효율적입니다.
계획없이 다니다 보면 전각들을 놓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천연기념물 472호인 창덕궁 회화나무군
모두 8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300~400년 된 나무들이라고 합니다.
1830년 무렵의 창덕궁 그림인 동궐도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을 때 심은 것으로 보입니다.
보물 1759호로 지정된 창덕궁 금천교에서 바라본 금천
궁으로 들어오는 사람 몸에 붙은 모든 잡귀를 떼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금천교는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입구에 있는 궐내각사로 들어갔습니다.
관청은 대부분 궐 바깥에 있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 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라고 불렀습니다.
인정전 서쪽 지역에는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약방,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 대유재, 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서가 밀집되어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규장각
조선시대 정조가 세운 왕실 도서관으로 역대 임금의 글이나 글씨를 보관하고, 많은 책을 편찬·인쇄·반포하는 일을 하며 나랏일을 연구하던 기관입니다.
규장각 현판은 숙종이 쓴 친필이며, 이곳에 보관되던 3만여권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규장각 우측에 나람히 붙어 있는 검서청
봉모당 입구인 운한문
봉모당은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의 주요 시설 중의 하나입니다.
봉모당 뒤쪽으로는 규장각 도서들을 보관하던 책고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궐내각사 규장각과 검서청, 봉모당 모습의 전각들
검서청 옆에 있는 옥당(홍문관)
홍문관의 별칭이기도 한 '옥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옥당 옆에 빨갛게 익은 앵두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이네요.
따 먹고 싶었지만, 참음....
옥당 위에는 내의원 약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약을 조제하던 관서인 내의원은 태종 때 왕실의 내용약을 맡은 기관인 내약방을 1443년(세종 26) 이조에 계청하여, 독립관제로서의 내의원을 설치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인문학 가의도 열리고 각종 체험도 진행 중입니다.
약방 뒤쪽으로 가면 영의사를 지나 선원전이 나옵니다.
신 선원전이 후원 깊숙한 곳에 지어졌으니, 지금은 구선원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태조 이하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들의 어진이 있었는데, 1921년에 새 신원전을 후원 깊숙한 곳에 건립하여 제사기능을 옮기면서 빈 곳이 되었고, 부속건물들은 2005년에 복원했습니다.
선원전에 봉안되었던 어진들은 고종 대에 경복궁 선원전으로 옮겨지고, 이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이전하면서 경운궁 선원전으로 옮겨졌으나 1900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선원전의 좌우에는 진설청, 우측에는 내찰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원전 영역 뒤편에는 의풍각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신축된 것으로 전하며,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신원전 우측에 있는 양지당
양지당은 선원전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러 갈 때 임금이 머물렀던 어재실이며, 어진이나 어서를 담은 궤를 보관하던 장소였습니다.
궐내각사 전각들을 모두 구경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진선문을 지나면 인정전으로 연결됩니다.
진선문으로 가는 우측엔 긴 전각(회랑)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청, 호위청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진선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입니다.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진선문을 들어서면 직사각형의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으며 마당에는 어로가 나 있습니다.
마당 둘레에는 인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과 호위청·상서원 등의 행각이 있습니다.
백성의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 혹은 등문고라 불리는 북을 태종 때 진선문에 설치했고, 중간에 유명무실해졌다가 영조 때 다시 설치했다고 합니다.
보물 제813호인 창덕궁 인정문
인정문은 이궁인 창덕궁의 정전이면서 300년이나 조선의 정사를 다루어 온 인정전의 정문입니다.
1405년 태종이 창덕궁을 지으면서 건립한 문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가 광해군 때 복원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1494년 연산군이 인정문을 지나 왕위에 올랐고, 이후 1649년(인조 27) 효종, 1659년(효종 10) 현종, 1724년(경종 4) 영조, 1800년 순조, 1849년 철종, 1863년 고종이 인정문을 지나 인정전에서 임금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곳입니다.
국보 제225호인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모습
태종 이방원이 거처할 이궁으로 창덕궁을 건립하면서 140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태종 때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으나 1418년에 규모가 큰 건물로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인정전은 인자한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요.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재로 전소되었고 선조 때 복구공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 2)에 다시 건립된 것입니다.
이후 인정전은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행하였고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지만, 창덕궁은 여러차례 화재로 시달렸는데 1803년 선정전에서 불이나 인정전까지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1804년(순조 4) 다시 건립하였고, 인정전의 앞마당에는 박석을 깔았고 품계석을 설치하여 조선왕조의 법전으로 역할했습니다.
좌측과 우측에서 바라본 위풍당당 인정전 모습
겉으로 보기엔 2층 전각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습니다.
인정전 앞마당은 박석을 깔고 품계석을 세워놓은 모습
인정전의 일월오악도 아래에 있는 임금의 용상 모습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합니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 온 것이며,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인정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참고로 5대궁 중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은 1887년 경복궁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전등이 걸리고 서양식 커튼과 유리창이 생겼으며, 일제에 의해 용마루에 이화문(오얏꽃 무늬)이 붙여지고 박석이 걷어지고 잔디가 깔리는 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창덕궁 향실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 서쪽 행랑에 있는 향실은 궁의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관리한 관청입니다.
왕실의 제사가 있을 때 임금이 이곳에 나와 직접 축문을 검토하였다고 하네요.
향실을 지나치면 구선원전과 연결됩니다.(지금은 막혀있음)
인정전을 나와 다시 동쪽으로 향하면 숙장문이 나옵니다.
숙장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하여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입니다.
숙장문을 통과하면 내전으로 갈 수 있는데요.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그때부터 사용된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습니다.
숙장문을 지나면 전면에 창덕궁 경내에 있는 한옥카페가 있으니 더우면 시원한 차 한잔하고 구경하면 됩니다.
숙장문과 창덕궁 카페가 있는 풍경
창덕궁 선정전과 희정당, 대조전이 있는 곳입니다.
보물 제814호인 선정전으로 들어가는 선정문
성정전은 임금의 집무실로 쓰이던 곳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고,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습니다.
희정당으로 쳔전기능이 옮겨지면서 순조 이후에는 혼전(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던 곳)으로 쓰였는데, 이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선정전은 오랫동안 궁궐의 편전(사무공간)으로 이용되다가 조선후기에는 내전의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기도 합니다.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습니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습니다.
창덕궁 대조전 옆 공터
이 공터는 태화당, 재덕당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1908년 이후에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태화당, 재덕당의 기록은 많지 않으나 아래 보경당처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답니다.
공터 위에는 보경당 터 일원이라고 합니다.
이 일대에 보경당과 태화당, 재덕당이 연이어 있던 곳으로 보경당은 선정전과 함께 임금이 평상시에 머물던 편전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때론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17세기 이후에는 후궁들이 머물기도 했습니다.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가 보경당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대조전(좌)과 희정당(우)이 마주보는 모습
보물 제815호인 희정당은 조선후기 임금이 정사를 보던 전각으로, 창덕궁의 편전은 본래 선정전이었는데, 이 건물은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 건물을 편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침전으로 사용되다가 편전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희정당은 1496년(연산군 2)에 궁내의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면서 당호를 희정당이라고 바꾸면서 창덕궁의 한 건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창덕궁이 재건될 때 다시 지어졌으며, 다시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재건되었습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입니다.
선평문이 창덕궁 대조전의 정문으로 높은 계단 위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을 함부로 볼 수 없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보물 816호인 대조전 모습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입니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는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했으며,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 주는 거의 유일한 부분입니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왕실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조전 옆에 있는 흥복헌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했던 비운의 장소입니다.
흥복헌은 창덕궁 중궁전 즉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 동쪽에 딸려 있는 전각으로 1926년 순종이 운명한 장소입니다.
대조전 흥복헌 옆으로 난 여춘문
대조전 뒤쪽으로는 곳곳에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당시 왕족들이 장원으로 많이 활용했다는 반증으로 보입니다.
대조전 뒷모습과 경훈각
경훈각은 창덕궁 대조전 뒤쪽에 있는 건물로, 대조전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917년 화재 이후 재건하면서 정면 9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 되었고, 선조가 명나라 신종에게 받은 망의를 보관하던 경훈각의 대청 벽에는 1920년에 제작한 '조일선관도'와 '삼선관파도'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경훈각 정면 모습
대조전과 희정당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는 개선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희정당 옆에 있는 보춘정
희정당 아래쪽, 창경궁과 인접한 곳에 보물 1764호인 낙선재가 있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낙선재는 창덕궁 인정전의 동남쪽,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 잡은 건물로, 1847년(헌종 13) 건립되었습니다.
‘낙선(樂善; 선을 즐김)’이라는 명칭은 ‘인의충신으로 선을 즐기고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천작(하늘이 내린 벼슬)이다’라는 '맹자'의 구절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낙선재 우측에는 1848년 현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처소인 석복헌과 수강재가 있는데 이 일대를 통틀어 낙선재라고 부릅니다.
낙선재는 왕이 책을 읽고 쉬는 공간, 즉 서재 겸 사랑채로 조성되었습니다.
창덕궁을 관람하고 바로 옆에 있는 창덕궁 후원으로 가서 후원까지 관람했습니다.
창덕궁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창덕궁 곳곳을 볼거라 생각하고 빠지지 않고 구경했는데, 마지막으로 낙선재를 깜빡하고 후원으로 들어가 버려 구경하지 못했습니다.ㅎㅎ
여러 번 방문한 곳인데 이렇게 전각들이 많은 줄을 몰랐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조선시대 궁궐 중에서 가장 많은 임금이 이곳에서 정사를 봤다고 하니 아직 복원하지 못한 건물들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라는 걸 알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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