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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창덕궁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by 휴식같은 친구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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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오랜만에 창덕궁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해서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등을 관람하고 후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창덕궁 입장료 3,000원 외에 후원 관람료 5,000원이 추가됩니다.

 

창덕궁 나들이 - 돈화문, 인정전, 대조전, 선원전, 희정당

 

 

창덕궁 후원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인솔자의 해설 없이 자유관람을 실기하고 있으며, 한정된 관람을 위해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약이 다 차지 않을 경우에는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었는데, 전 다행히도 바로 현장에서 창덕궁과 후원 관람권을 함께 끊어서 입장했습니다.

 

창덕궁 후원의 절경들은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그리고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 등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성정각 일원에서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따라 올라가면 왕실정원의 초입부인 부용지에
이르게 됩니다.

 사진의 우측은 창경궁(별도 관람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좌측은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창덕궁 후원 관람순서는 특별한 룰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순서로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 연경당 - 존덕정과 펌우사 - 옥류천 일원

 

창덕궁 후원 입구

 

창덕궁은 아름답고 넓은 후원 때문에 다른 궁궐보다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는데,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존덕지같은 연목을 만들고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정의정, 태극정 등 아담한 정자들을 세워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좌측 담은 창덕궁, 우측 담은 창경궁 담입니다.

 

현재는 창덕궁 후원으로 통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창경궁의 후원과 서로 연결되어 구분이 없었으나 일제가 조선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두 궁궐의 후원에 담장을 쌓아 지금처럼 분리되었습니다.

비원이란 말은 창덕궁과 창경궁에 딸린 북쪽의 정원을 가리키는 말(숨겨진 정원)이지만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용어는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포돼 해방 뒤에도 사용되어온 용어일 뿐이므로 후원이 정확한 용어입니다.

 

1405년(태종 5) 창덕궁이 이궁으로 창건되고 이듬해에 후원 동북쪽에 해온정을 짓고 못을 판 것이 후원의 시작입니다.

세조가 1459년(세조 5)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후원에 새로운 못을 팠으며, 이 때 열무정이 건립되었으며, 열무정의 위치는 현재의 부용지 주변입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일찍부터 왕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 때문에 여러 왕에 의해 많은 누정이 지어져서 한때 100여 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들어서기도 했으나 지금은 누각 18채와 정자 22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부용지가 있는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엔 부용정과 영화당, 주합루가 있는 곳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부용지 앞의 나무들이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이곳은 영화당 앞 마당으로 창경궁 담이 있는 곳과 함께 춘당대라는 이름을 가진 곳으로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곳입니다.

 

부용지

 

부용지는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습니다.

약 300평(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어졌습니다.

 

부용지 석축에 있는 잉어 문양의 조각은 물고기 문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관직에의 등용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형이라고 합니다.

부용지 연못 주변은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으로, 이 역시 선비들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상징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용지와 주합루 모습

 

보물 1763호인 부용정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으로 되어있으며, 못에 떠 있는 누간을 지상건물보다 약간 높여 수상건물과 지상건물과의 조화를 추구하였고, 평면의 생긴 모양대로 쪽마루를 꺾어 내부에서 어디든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후원에 있는 영화당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었던 창덕궁의 건물로 광해군 때 처음 지어졌고, 숙종 18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영조가 친필로 기록한 현판이 걸려있으며, 건물 앞쪽에는 '춘당대'라는 마당이 있어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곳이나 창경궁의 담으로 막혀있습니다.

 

영화당은 과거시험 외에도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정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친필입니다.

 

영화당에서 바라본 부용지와 부용정 모습

부용정 옆은 사정기비각이라고 하는데 숙종 16년(1690)에 옛 술성각 자리에 세웠고, 비각으로 보호되어 있는 비에는 부용지를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주합루 앞에는 취병이라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취병은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기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입니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줍니다.

주합루의 취병은 1820년대 그려진 동궐도의 그림을 토대로 대나무 틀을 짜고 신우대를 심어서 조성했습니다.

 

주합루 옆에 있는 건물은 서향각으로 정조 즉위년(1776)에 세운 것이며, 규장각의 부속건물이었습니다

 

주합루 정문인 어수문

어수문은 6단 계단 위에 세워져 있고, 연못을 사이에 두고 부용정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왕과 신하가 만나는 상징적인 문으로, 부용지의 물고기가 현명한 물을 만나 어룡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인재 등용의 등용문이기도 합니다.

어수문 양옆에는 문 위를 무지개 꼴로 만들고 특이한 형태의 곡선형 지붕을 얹은 작은 문이 하나씩 세워져 있어서, 어수문과 함께 3문 형식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운데 문은 왕이 출입하고 양쪽 쪽문으로 신하들이 출입했다고 합니다.

 

보물 제1769호인 주합루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이고 2층은 열람실이었는데, 이 열람실을 주합루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이 건물 전체를 주합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합루는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완성한 건물로, 다산 정약용을 비롯하여 박제가, 유득공 등의 문신들의 발자취가 서린 곳입니다. 

 

주합루 앞 우측에 있는 작은 우물

 

우물에서 바라본 부용지, 영화당과 부용정 모습

 

창덕궁 후원은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각종 야외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당 앞 춘당대는 조선 초기에는 왕이 참석하는 군사훈련을 자주 실시했고, 활쏘기 행사, 대비를 모시는 잔치나 종친 또는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 과거시험도 이루어졌던 곳입니다.

 

부용지에서 나와 조금 이동하면 창경궁 출입문인 영춘문이 있습니다.

 

창경궁 나들이(조선궁궐)

 

그리고 그 맞은편은 애련지와 의두합이 있는 불이문이 있습니다.

 

애련지와 애련정 모습

 

조선시대 숙종 18년에 세워진 창덕궁 후원의 연못과 정자각으로, '애련'이란 명칭은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의 시 '애련설'에서 유래하였는데, 연꽃이 피는 연못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창덕궁 의두합은 무너진 담장으로 수리 중이라 들어가 볼 수 없는 상태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애련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창덕궁 연경당이 나옵니다.

 

연경당의 대문인 장락문은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는 곳에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문이 있는 공간으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고, 이 둘은 사잇담을 설치하여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담으로 막혀 있지만, 사진에서 보듯 안쪽 건물을 통해 안채로 들어갈 수 있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물 1770호인 연경당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 사랑채, 안채, 안행랑채, 바깥행랑채, 반빗간, 서재, 후원, 정자 및 연못 등을 갖춘 독립된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연경당 좌측에 있는 건물입니다.

 

연경당의 반빗간이라는 건물로 독립된 부엌 전용건물입니다.

 

위 사진은 연경당 우측에 있는 건물입니다.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에게 진작례를 올리기 위해 1828년에 연경당을 건립했는데, 원래 모습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고 합니다.

 

진작례란 신하들이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행사로 효명세자는 이를 왕권 강화책으로 이용했습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한 것이랍니다.

 

선향재는 서재 겸 응접실 역할을 한 건물로 벽돌로 쌓은 것이 특징이며, 한 가운데에 넓은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앉혔으며, 지붕 위로 햇볕을 막는 차양을 설치하였습니다.

 

연경당 동쪽에는  누마루를 두었고, 그 동쪽 마당에 선향재라는 서실을 배치하였습니다.

책을 보관하고 독서하는 서재로 이용했던 공간입니다.

 

선향제 건물 모습

 

선향제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선향제는 서향이어서 오후에 햇볕이 내부로 깊숙이 들어와 책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지혜가있다고 합니다.

 

선향제 현판과 방 내부 모습

 

연경당 건물 뒷모습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으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선향재 후원에 높다란 화계를 쌓아 정원을 만들고 그 위쪽 언덕에 정자를 지은 능수정이 있습니다.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입니다.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 일대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창덕궁 후원 -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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