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
창덕궁과 창덕궁 후원을 방문하고 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에 이어 존덕정과 펌우사 그리고 옥류천 일대를 스케치했습니다.
창덕궁 나들이 - 돈화문, 인정전, 대조전, 선원전, 희정당
창덕궁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존덕정과 펌우사는 관람지(반도지)와 존덕지에 있는 정자이며, 옥류천은 후원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정자가 있는 골짜기입니다.
창덕궁 연경당 선향제와 능수정에서 오솔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관람지(반도지)에 있는 존덕정과 펌우사가 나옵니다.
존덕정과 펌우사는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늦게 모습을 갖춘 곳이며, 연지는 원래 두 네모골과 둥근 한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곳 연못 주변엔 육각 겹지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길쭉한 맞배지붕을 가진 펌우사 등의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이 있습니다.
관람지에 자리한 창덕궁 관람정
반도지는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며, 지금은 관람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820년 경에 제작된 조선시대 궁궐을 묘사한 동궐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그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자의 모양은 부채꼴 선형 기와지붕을 한 굴도리집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요.
건물의 일부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며 6개의 원주를 세우고 원주마다 주련을 달았으며 난간을 돌려 건축적이기보다는 공예적인 수법을 구사한 정자입니다.
관람정 맞은편에 있는 정자는 승재정이라고 하는 정자인데 사모지붕을 가진 정자가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관람정과 반도지 모습
창덕궁 존덕정 모습
관람지 위에 있는 작은 연못은 존덕지 혹은 반월지라고 부르며, 존덕지의 물은 넘치면 관람지로 흘러 내려가는 구조의 연못입니다.
존덕지에 세워져 있는 정자가 존덕정입니다.
연못가에 인조 22년(1644)에 세운 육각형 정자로 두 개의 주초석이 연못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존덕정은 지붕이 두 겹이고, 천장에 황룡과 청룡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조가 1798년에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데요.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강력한 내용입니다.
평생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함이 오롯이 느껴지는 구절이네요.
존덕정 서쪽 위에 있는 펌우사
‘폄우’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궐도'에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아 적어도 1827년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고, 정조 때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궐도에는 ‘ㄱ’자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一’자 모양으로 변형되었습니다.
폄우사는 효명세자가 독서를 하던 곳으로, 창덕궁 후원에는 연경당 등 효명세자의 흔적이 유독 많은 곳입니다..
관람지 관람정 맞은편에 있는 승재정
정자의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고, 승재정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관람정과 같이 1830년 전후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승재정은 각 칸마다 창호를 달았으며 살창이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펌우사와 존덕정 모습
이제 창덕궁 후원 마지막 관람지는 옥류천 일대만 남았습니다.
존덕정 앞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낮은 등성이를 넘어 내려가야 합니다.
존덕지에서 옥류천 쪽으로 가는 언덕 위에 취규정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학자들이 모인다’라는 뜻의 취규정은 휴식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사방이 트인 초익공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한벌대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사다리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엮었네요.
능선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서울 중심지인 도심에 이런 후원의 숲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여겨지는 모습입니다.
옥류천 입구에 도착하면 취한정이라는 정자가 나옵니다.
임금이 옥류천의 어정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정자입니다.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취한정에 대한 숙종과 정조의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720년 이전에 지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옥류천 일대 모습
옥류천은 후원의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말하며, 1636년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다듬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이 물길을 아래로 내려뜨려 폭포가 되게 하고 이 폭포가 떨어진 곳에서 옥류천이 시작됩니다.
옥류천 유배거라는 바위입니다.
옥류천이라고 새긴(인조의 친필)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 앞에 너럭바위가 있는데, 술잔을 띄워 놀던 유상곡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일부러 반원형으로 둥글게 물길을 파서 위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를 빙 돌아서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고 하네요.
유배거는 술잔을 띄워 흐르게 한 도랑이라는 뜻입니다.
오언절구라는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옥류천의 태극정
인조 14년(1636)에 세웠으며, 원래 운영정이라 불렀다가 태극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으며, 천정은 우물천정이고, 지붕 꼭대기는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였습니다.
정조의 ‘태극정시’, 숙종의 ‘상림삼정기’ 등 태극정을 노래한 어제가 전해지며, 상림삼정이란 옥류천변의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옥류천 주변 가장 안쪽에 있는 정자인 청의정
인조 14년(1636)에 세워졌으며, 논 위에 있는 청의정은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초가지붕의 정자입니다.
임금은 정자 앞쪽에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짚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 하였다고 합니다.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고 하며, 이런 친경례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지금도 매년 옥류천에서는 이렇게 모내기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청의정과 또 다른 옥류천 주변 정자인 소요정 사이에는 어정이 있으며, 어정에서 나오는 샘물은 옥류천으로 흘러듭니다.
청의정 앞에 있는 어정 모습이며, 이 물이 옥류천으로 흘러드는 모습입니다.
어정으로 들어오는 물길인 상류 개울 모습입니다.
옥류천 옆에 있는 농산정이라고 하는 정자
인조 14년(1636)에 지었는데, 임금이 옥류천으로 거동했을 때 다과상을 올렸던 장소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창덕궁 후원의 모든 정자와 연못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만난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된 창덕궁 향나무
왕실의 서고였던 보각과 봉모당과 나란히 서 있는데, 수령이 700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창덕궁의 최고령 나무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 조경문화를 대표하는 정원입니다.
정자들의 목조공예의 정교한 솜씨,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모습은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얼마나 순응하면서 살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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