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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여행

제천 가볼만한 곳, 배론성지 - 배론성당, 황사영백서, 성요셉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

by 휴식같은 친구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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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가볼만한 곳, 배론성지 - 배론성당, 황사영백서, 성요셉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

 

 

제천 탁사정에서 1km 정도 내려와 우측으로 돌아서 3km 정도 들어가면 배론성당이 자리한 배론성지가 있습니다.

 

배론성당은 세 가지로 유명한 곳인데요.

첫 번째는 황사영의 백서가 쓰인 토굴이 있는 곳이며, 두 번째는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있던 곳이며, 세 번째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천주교 성지순례장소이기도 한 배론성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더라고 조선후기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곳이라 한 번 가볼만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론성지에는 배론성당을 비롯해 황사영 백서가 쓰인 토굴, 성요셉 신학교와 성요셉 성당, 최양업 신부의 묘 등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천주교 성지이기 때문에 관람할 적엔 조용히 다니는 에티켓이 필요한 곳입니다)

 

배론성지 모습

 

배론성지의 배론이란 말은 이곳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인 1800년대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았던 교우촌입니다.

 

 

이곳에서 화전과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았던 초기 한국 천주교회 교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탁사정에서 5번 국도(제원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오른쪽에 십자가 조형물이 보입니다.

 

제천 10경 중 9경, 탁사정 풍경

 

배론성지 입구

주차장은 좌측으로 200여 미터 이동하면 됩니다.

 

 

배론성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성지 경내 출입시간)

휴무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애완동물 동반불가)

 

배론성당 교육관

 

배론성지 입구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배론성지 표지석

 

배론성지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의 행정지명으로 제천현 근우면 팔송정리 도점촌으로 옹기를 굽던 곳입니다.

배론에 천주교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1791년에(정조 15)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로 추정되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숨어든 교우들의 은신처가 되었던 곳이죠.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 상황과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재건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며, 1855년(철종 6년)에서 1866년(고종 3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입니다.

또한 1861년 별세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인 동시에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인 남종삼의 생가가 있는 지역(산넘어 묘재)입니다.

 

배론성지는 1911년 경성교구에 속해 있다가 1968년 원주교구에 속하였으며 1970년대 들어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카페 허브사랑

 

배론성지 잔디공원

 

계란꽃이라 불리는 개망초와 비슷하게 생긴 데이지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연못인 배론성지 연못과 성요셉 성당이 보입니다. 

 

배론성지 안내도

배론성지에서 꼭 봐야 할 곳은 최양업 신부 묘, 성요셉신학당, 황사영 백서 토굴, 순교자 황사영 현양탑,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등입니다.

 

순례코스는 1번부터 순서대로 돌면 되는데, 저는 반대로 우측으로 들어가서 최양업 신부 묘부터 돌았습니다.

 

성모동굴

 

여름인데도 가을느낌 나는 단풍나무들이네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나옵니다.

 

최양업 신부상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십자가의 길에는 천주교 관련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최양업 신부의 묘

 

최양업(세례명 토마스)은 우리나라에서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 번째 사제로 알려진 분인데요.

1821년 충남 청양 화성면 농암리에서 태어나 1936년 12월 중국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1946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김대건 신부(1936년 세례)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한국 천주교순교자박물관(김대건 신부 전시)

 

그는 12년 동안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 살고 있는 127개 교우촌의 신자들을 사목 하였으며, 굳건한 신심과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 분별력을 가지고 사목활동을 해 왔습니다.

 

1861년 6월, 교우촌 순방을 마치고 교구장에게 사목활동 결과를 보고하려고 올라오던 중 문경에서 과로로 숨을 거두었고, 그해 11월 성요셉 신학교 뒷산 언덕에 묻려 사제의 길을 걸으려는 후학들의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반대방향으로 내려오면 순직자 묘지가 있습니다.

 

성직자 묘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인 지학순 다니엘 주교와 교구 사제들이 잠들어 계신 곳입니다.

 

내려와서 성요셉 신학당과 황사영 백서 토굴로 들어갑니다.

 

성요셉 신학당 모습

 

신학당터 표지석

 

성요셉 신학교(배론신학교)

성요셉 신학교는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였던 곳입니다.

 

1855년 조선교구의 장상이던 메스트르 신부는 박해 아래서 장주기(요셉)의 집에 우리나라 첫 교구 성요셉 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1856년 척 교장이었던 프랑스인 푸르티에 신부, 1861년 부임한 프티니콜라 신부의 지도 아래 김 사도요한, 권 요한, 유 안드레아, 임 빈젠시오, 박 필립보, 이만 돌(바울리노), 이 토마스 등 10여명의 신학생들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라틴어, 철학, 신학 등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양학문을 배운 신학생들이 사제양성의 열매를 맺을 무렵인 1866년 초에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두 신부와 장주기가 각각 서울 새남처 성지와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였고, 성요셉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옛 신학교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2003년 충북의 지원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경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현양탑과 옹기가마 굴이 보입니다.

 

배론성지가 생기기 전부터 옹기 가마터가 있던 곳이며, 이곳에 숨어들어왔던 천주교도들 역시 옹기를 구우면서 생업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황사영 백서가 쓰여진 토굴

 

1801년 황사영(알렉시오)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토굴에 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토굴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을 세계에 전하고, 박해로 무너진 천주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간곡한 서신을 비단에 써서 북경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죠.

그러니 중국에 보내지기 전에 압수되고 그는 체포되어 그해 11월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황사영의 백서는 총 13,384자로 기록되어 있고, 현재 교황청 선교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현양탑

 

진복문에서 바라본 배론성지 입구 모습

진복문은 220여년 전 신앙 선조들이 사셨던 곳의 입구입니다.

 

순교자의 집

 

개울 건너편의 정자

 

성요셉 성당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조각공원 모습

 

최양업 신부상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

 

잔디광장

 

성모자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인생미로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런 천주교 역사의 현장인 성지를 보다 보면 신앙의 힘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배론성지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요셉신학당, 최양업 신부 묘 등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볼거리가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배론성지는 유원지가 아닌 성지이기 때문에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정숙하게 다니면서 구경하는 배려가 필요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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