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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권 여행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일본제국주의 근대식 감옥, 서대문형무소

by 휴식같은 친구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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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일본제국주의 근대식 감옥, 서대문형무소

 

 

어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입장료 및 주차장 정보 등 관람정보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시관을 둘러 보고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를 풀어 가고자 합니다.

 

서대문형무소 주차장 및 입장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시관

 

서대문형무소 1908년 일본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이며 해방 후에는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1908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성역화 사업을 통해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을 했고, 보안과 청사류 사용했던 실내 전시관에서는 경성감옥으로 개소된 시기부터 1987년 서울구치소로 사용되기까지 일제강점기의 서대문형무소와 항일독립운동에 관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면 야외에는 실제 서대문형무소로 운영했던 옥사와 공작사, 사형장, 한센병원 등을 둘러 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옥외, 야외 전시내용을 담았습니다.

 

보안과 청사 건물 뒷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람순서는 역사관을 둘러보고 중앙사 - 옥사 - 공작사 - 한센병사 - 추모공간 - 사형장 - 시구문 - 격벽장 - 창고 - 여옥사 - 망루 - 담장 - 취사장 - 뮤지엄샵 순으로 관람하면 됩니다.

 

 

움직이는 동선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으니 푯말을 따라 이동하면 됩니다.

 

서대문형무소 당시 옥사 모습

 

간수 사무소

가장 먼저 중앙사로 들어갔습니다.

 

중앙사는 간수들이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근무했던 건물이며, 10, 11, 12 옥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 중반에 2층으로 지어졌고 1층은 간수의 사무공간이 있었고, 옥사와 바로 출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2층은 수감자들을 모아 교육하는 강당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형무소의 의식주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

 

형무소의 식사와 복장

 

수감자들은 콩(대두) 50%, 좁쌀 30%, 현미 20%의 비율로 1일 3회 배급되었고, 독방 및 징벌자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3끼 모두 노역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모두 공장에서 먹었는데요.

 

 

밥의 양은 노역의 강도에 따라 10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배급했고, 이를 위해 등급별 깊이가 다른 원통형의 틀에 밥을 찍어 배급(일본어로 가다 밥이라고 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해진 규정 이하로 배급되어 늘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다고 하는데 노동 강도에 따라 밥 양까지 차별받았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형무소 내 수감자는 미결수와 기결수로 나뉘는데 미결수는 청색, 기결수는 적색, 병자는 흰색 수인복을 입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직물 생산이 이루어져 전국의 형무소에 배급되었습니다.

 

좌에서 우로 차례대로 10, 11, 12옥사이며, 간수들이 관리하기 쉽게 중앙사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곳에 앉으면 옥사를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이런 구조를 파놉티콘 구조(원형감옥 구조, 부채꼴 모양)라고 합니다.

 

1919년 3.1 운동으로 잡혀온 수감자가 갑자기 늘어나 1920년대 초에 새로 지은 2층 옥사입니다.

복도 천장의 채광창은 수감자의 채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움직임을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네요.

 

10옥사

2층 벽돌구조로 72개의 감방이 있는 곳입니다.

 

11옥사

2층 벽돌구조로 56개의 감방이 있는 곳입니다.

 

12옥사

2층 벽돌구조로 46개의 감방이 있는 곳입니다.

 

먼저, 12옥사부터 구경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징벌방 모습입니다.

벌을 주기 위해 사용했던 2.4㎥ 넓이로 12옥사에 3개의 방이 있습니다.

 

 

빛이 차단되어 먹처럼 깜깜하다 하여 먹방이라 불렀으며,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고 합니다.

마룻널 끝에 구멍을 내 용변을 처리할 정도로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으며, 보시는 대로 정말 누우면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입니다.

 

그리고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 수감하여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 고문과 심리적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든 독방이 따로 있습니다.

 

다인실 감옥

 

다인실 감옥에는 2022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1월의 독립운동가는 제주해녀 항일운동

2월의 독립운동가는 신간회 창립

3월의 독립운동가는 군산 3.5만세운동

4월의 독립운동가는 신민회 창립

5월의 독립운동가는 근우회

6월의 독립운동가는 한인애국단

 

7월의 독립운동가는 동제사

8월의 독립운동가는 대한통의부

9월의 독립운동가는 한인합성협회 결성

10월의 독립운동가는 동경유학생단체 학우회 결성

11월의 독립운동가는 한국독립당 관내 촉성회연합회

12월의 독립운동가는 정미의병

 

감방에는 사진에서 보듯 굳게 닫힌 출입문인 철문과 물건을 넣고 받는 작은 사각 구멍 그리고 패통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패통은 감방 문 옆에 있어 위급한 상황을 간수에게 알리기 위한 도구인데요.

버튼을 누르면 나무가 나래로 내려가 표시를 해주는 장치인가 봅니다.

 

12옥사에서 나와 11옥사로 이동하는 중에 보이는 12옥사 외부 모습

 

좌측은 감방 환기구로 수감자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방 바닥 마룻널이 습기 때문에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뚫어 놓은 것입니다.

 

 

우측은 징벌방 용변 배출구로 위에서 보았듯 격리된 수감자가 용변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막으려고 마룻널 끝부분에 구멍을 내 용변을 밖으로 배출되게 만든 것입니다.

용변 배출구에 사각의 용변통을 두었습니다.

 

11옥사는 과거 수감자, 순찰하는 간수, 식구통, 태형 체험 등을 할 수 있게 꾸며졌습니다.

 

이곳에 문익환 목사님도 갇혀 있었네요.

 

1970년대 전태일과 장준하의 죽음을 계기로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을 작성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평생 통일운동에 헌신한 분이셨습니다.

생의 마지막 18년 중 1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으며 이곳에서는 1976, 1878, 1985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습니다.

 

옥사 내벽마감 흔적

내벽은 붉은 벽돌을 쌓아 구조체를 형성하고 마감 표면은 벽돌면에 석회 모르타르와 섬유질, 해초풀을 섞어 발라 접착력을 높인 후 물에 이긴 석회반죽을 발라 흰 벽으로 마감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감방에는 독립운동가의 생을 정리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방은 김근태 전 국회의원 및 장관이 수감되었던 방입니다.

 

문익환 목사가 적은 글이 걸려 있는데요.

이곳이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김근태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 장관시절에 서울역 식당에서 개인적으로 우연히 만난 김근태는 참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선 10, 11옥사의 바깥쪽 건물 모습입니다.

 

이 터는 서대문형무소가 개소(1908년)되었을 당시에 사형장 터가 있던 자리입니다.

사형은 감옥 안에서 비공개로 집행되었기 때문에 감옥 내에서도 가장 안쪽에 배치되었습니다.

 

1921년 옥사를 확장하면서 현존하는 사형장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공장

 

수감자들이 노역했던 건물로 1923년에 2층 규모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작업공간으로 사용했던 이곳은 원래 큰 하나의 방이었으나 해방 후에 4칸으로 분리되었다고 하네요.

 

 

주로 옷감과 실, 의복 등 의류품을 만들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나 군부대, 관공서에 공급했습니다.

 

2022 기억공간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 모습

 

사각연못

일제강점기에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곳으로 1979년에 빨래터로 사용하려고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곳입니다.

형무소 뒤편에 안산이 있어 물이 연못으로 내려와 1년 내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10옥사와 9옥사

 

한센병사

 

한센병에 걸린 수감자를 따로 수용한 건물로 1923년에 지어졌고, 건물 안의 앞쪽에 복도가 있고, 그 뒤로 작은 감방 2개와 큰 감방 1개가 있는 구조입니다.

 

한센병사에서 바라본 격벽장

수감자들을 격리하여 운동시키는 체육시설입니다.

 

9옥사

 

1920년에 지어진 2층 옥사로 이곳에서 유일하게 중앙 간수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된 옥사이며, 당시 일제의 식민지배를 반대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힌 사상범을 주로 가두어 통제를 했던 곳입니다.

 

추모비, '민족혼 그릇'(임승오 작)

 

자유와 평화, 정의를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그릇 안에 순국선열 165분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 그들의 민족정신과 신념이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사형장 옆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리는데, 1921년 전후 사형장을 이전할 당시 심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형장으로 들어가기 전 사형수들이 원통한 마음에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2020년 8월 100여년 수령으로 쓰러졌고, 사형장의 역사와 함께한 미루나무를 기억하기 위해 그대로 노출,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사형이 집행됐던 곳으로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이며 1916년 즈음에 지어진 건물이며, 사형장을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층 안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여닫히는 마루판과 교수형에 쓰이는 줄, 가림막 뒤쪽에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장치가 있습니다.

마루판 아래의 지하실은 시신을 수습했던 공간입니다.

 

사형장 모습

왠지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쫘악 느껴집니다.

 

사형장 옆 시구문

 

사형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입니다.

붕괴되었던 것을 독립공원을 만들 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당시에는 200m라고 전해집니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우려가 되는 경우,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에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사형장에서 바라본 서대문 형무소

 

우측은 구치감이 있던 장소로 1935년 5월에 준공한 미결수 수용 옥사라고 합니다.

1987년 의왕시로 서울구치소가 이전하면서 철거된 옥사터인 것입니다.

 

840여 평 10개동의 옥사와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283개 감방 중 242개가 독방으로 조성되어 있고 총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안창호, 여운형, 김정련 등의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고 지금은 철거되어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2010년에 옥사 자리를 확인하여 붉은 벽돌로 표시했고, 이 붉은 벽돌은 옥사를 지을 때 사용된 것으로 벽돌 중앙에는 서울 마포 공덕동의 경성형무소에서 만들었다는 표시로 京(경) 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격벽장 원형터

 

일제강점기에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 만들어졌습니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습니다.

 

사형장 방향으로 부채꼴 모양이었고, 가운데 사각형 모양은 간수 감시대가 있던 자리이고 원형 감옥처럼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2011년 지금의 위치에서 뒤편으로 2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위치에 복원한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창고

 

운영에 필요한 집기, 물품을 보관하던 건물로 1910년대 후반에 지어졌고 처음엔 23m였던 것이 확장하면서 53m로 늘어났습니다.

해방 후에는 창고 외에도 강당, 작업장, 의무실, 욕실 등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1987년 철거되었다가 2019년에 복원, 당시 발견한 배수관로와 물을 모으는 시설인 집수정의 유구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독립운동가들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옥사

 

여성 미결수를 가뒀던 구치감으로 1916년에 지어졌다가 1979년에 철거, 2011년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여성 항일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고난을 겪었습니다.

 

여옥사 8호 감방은 1920년 3월 1일에 3.1 운동 1주년 옥중 만세투쟁이 펼쳐졌던 현장인데요.

이곳은 특이하게 지하공간이 있었는데 유관순이 지하에 갇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효정과 박진홍
동덕여고 동기생으로 노동운동을 주도하다 일본인에 잡혀 우연히 옥사에서 수감되어 만났다고 합니다.

 

망루

 

담장에 접한 10m 높이의 망루는 서대문형무소를 감시하기 위한 감시탑입니다.

총 6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2개만 남아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담장은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4m 높이로 전체를 둘러쳐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앞쪽 161m, 뒤쪽 214m만 남아 있습니다.

 

 

담장 아래 있는 것은 건축부재로 서대문형무소가 운영되던 기간에 사용했던 것들입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이전한 뒤 철거되었던 각종 시설의 잔해에서 모은 것이라고 하네요.

 

취사장

 

수감자들의 밥을 짓던 공장으로 내부는 취사시설, 기관실, 욕실 3개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0년에 복원된 건물인데, 지금은 뮤지엄샵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사실 입구에는 당시 취사시설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취사장의 거대한 밥솥

 

 

서대문형무소 뮤지엄샵

 

 

지금까지 둘러보았듯이 거의 대부분의 전시물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3년 전, 3.1절에 와서 인파에 밀려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평일에 방문해서 자세히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아픔의 역사를 보게 만들어 둔 것은 다시는 이런 아픔의 역사를 당하지 않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과거는 아프지만, 미래는 활짝 웃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어서 최근에 개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시작,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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