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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재개장한 광화문광장 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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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장한 광화문광장 풍경

 

 

광화문광장은 2년 가깝게 재구조화 공사를 마치고 지난 8월 6일에 개장을 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교통섬처럼 있던 광장을 공원답게 변화시킨 것인데요.

광화문광장 양쪽으로 지나던 차량은 미 대사관이 있는 동쪽으로 몰아서 차선을 줄였고,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서쪽으로 광장을 더욱 확대해 기본에 비해 2.1배(폭이 35m에서 60m로 확대) 넓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던 곳이 5,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그늘이 생기는 등 시민들을 위한 휴게공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개장 소식을 듣고 방문하고 싶었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방문을 했습니다.

 

보다 넓어지고, 나무가 들어 선 광화문광장 풍경을 담았습니다.

 

광화문광장은 광화문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연결이 됩니다.

 

광화문광장조선 건국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며, 조선시대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며, 이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광장으로, 2015년 촛불집회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곳이기도 하죠.

 

임금의 큰 덕이 온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은 1395(태조 4) 9월에 경복궁을 건설할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사정문 혹은 오문이라고 했다가 1425(세종 7) 광화문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기존에는 출구로 나와 차도를 건너야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숲이 있는 공원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곳은 광장숲이라고 합니다.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 같은 키가 큰 나무를 비롯하여 산수국, 박태기나무, 병꽃나무 등 키 작은 나무와 초화류가 어우러진 모습의 휴식공간입니다.

 

 

광화문광장은 2009년 당시 오세훈 시장 때 처음으로 조성을 했는데요.

16차선이었던 도로를 10차선으로 줄이고, 양쪽 도로 가운데에 남북으로 긴 가로형 광장(폭 34m, 길이 557m)을 만들었고 그때 세종대왕 동상도 건립됐습니다.

기존에 있던 이순신 장군 앞에는 분수가 설치됐고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2008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물길도 만들었습니다.

 

이후 박원순 시장 시절인 2016년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작업 논의가 시작됐고, 2020년 11월 공사가 시작되어21개월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굉화문광장 안내도

 

세종대로 사거리

세종대로는 서울역에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2.2km의 도로이며, 수도 서울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엔 정부 관서인 6조와 한성부 등의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육조 앞’ 또는 ‘육조거리’라 부르기도 했고, 세종로 사거리의 해태 석상이 있다 하여 ‘해태 앞’이라고도 했으며, 또 1902년(고종 39)에 세운 비전 때문에 흔히 ‘비각앞’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광화문광장의 이색 명소인 이순신 장군 앞 명랑분수

 

이곳의 분수 노즐은 133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당시 일본 수군의 배 133척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초 이곳의 분수를 없애려고 했는데 오세훈 시장이 아이들을 위해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분수 앞 바닥 조명은 이순신장군 탄생년도 1545년을 모티브로 하여 길이를 15.45m로 만든 것입니다.

 

이순신장군 동상

 

1968년 4월 27일, 세종대로 한 복판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의 동상 전체 높이 17m(동상 6.5m, 기단 10.5m)의 청동 입상 형태로, 기단에는 거북선 모형이, 기단 앞에는 북 2개가 놓여있으며, 기단 옆에는 전진하는 군함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주위로 이순신 장군의 어록 등을 기록한 승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명량해전(영화 명랑에서도)에서 지금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며 왜군을 격침하겠다고 임금에게 아뢴 대목의 어록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광화문광장에 이런 숲 공원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네요.ㅎㅎ

 

열린마당

사람들이 만나고 쉴 수 있도록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공간으로 바닥에는 전국에서 생산된 돌들을 조각보 문양으로 설치하였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옆 스타벅스 앞에도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형 수경시설한글분수입니다.

 

그리고 명량분수 뒤에도 분수가 더 있는데요.

터널분수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더운 날씨에 인기가 제일 많은 곳입니다.

 

터널분수는 광복 77주년을 의미하는 77개 노즐이 물을 뿌려 아치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광화문광장 동쪽으로는 차량이 통행하고 있고, 서쪽에는 광장과 나무가 있는 쉼터로 구성된 모습입니다.

 

세종문화회관 앞 문화쉼터

세종문화회관 앞, 공원의 일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참나무 숲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세종임금이 발명한 해시계와 측우기, 혼천의 등이 함께 만들어져 놓여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2009년 광화문광장이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높이 6.2m, 폭 4.3m 규모로 4.2m 기단 위에 좌상 형태로 남쪽을 향해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왼손에는 ‘훈민정음 해례본’(페이지는 용자례 - 훈민정음 글자의 사용 예를 정리한 것)을 ,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신하들에게 온 백성이 훈민정음을 널리 쓰도록 하라는 대왕의 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기단 바로 앞에는 훈민정음 원문과 해석문이, 동상 전면부에는 세종대왕의 주요 과학 발명품인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모형을, 후면부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상징하는 기둥형태의 6개의 열주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이룬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떡 하고 버티고 있으니, 위풍당당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로가 있었는데 이렇게 공원으로 연결되니 한결 넉넉해지는 기분입니다.

 

또 다른 수경분수

오세훈 시장이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을 위해서 이런 수경시설을 많이 넣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계정원

한국의 자생수종을 중심으로 한국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기존의 역사물길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기존에는 조선 건국부터 2008년까지의 기록이 있던 반면, 지금은 광장을 재조성 하면서 2022년 기록까지 확대했습니다.

 

시간의 정원

문화재 발굴조사 중에 드러난 지층과 사헌부 터, 배수로, 우물 등은 서울의 오랜 역사를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조선시대 관리 감찰기구인 사헌부의 옛 터

사헌부 문 터

 

발굴에서 나온 매장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조성하였는데요.

전시장이 조성된 장소는 사헌부가 있던 곳으로, 발굴조사에서 배수로와 우물, 사헌부 청사의 담장과 출입문 터, 행랑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나무가 없는 너른 광장엔 콘크리트로 만든 화분을 갖다 놓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북악산 아래 경복궁이 있고 그 정문인 광화문이 보입니다.

 

세종대로에 있는 정부청사 앞에 심어진 소나무정원

키 큰 소나무 장송 군락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산의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앞에는 잔디마당도 펼쳐져 있는데, 이곳은 육조마당입니다.

 

광화문, 월대와 이어지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던 육조거리를 상징하며, 광화문의 아름다운 경관을 살리기 위해 넓은 잔디마당을 만들었습니다.

 

1392년 조선 건국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돌판에 기록한 역사물길이 이곳 육조마당에서 시작하며, 역사물길 옆에 설치된 ‘앉음 벽’에 앉아 역사의 흐름을 느끼며 바로 옆에 심은 소나무 숲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광화문 앞은 현재 광화문 월대 복원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에 의해 훼손됐는데, 그 규모와 구조를 파악하여 복원 근거자료를 확보하고 복원공사를 완료하여 내년 중에 개방할 계획입니다.

월대는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종묘 정전, 조선왕릉 정자각에서 볼 수 있는 넓은 대를 말하며, 광화문 월대는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였습니다.

 

광화문 앞에서 바라본 세종대로

 

광화문

 

1395년(태조 4)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으로 명명되었고 오문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광화문은 석축기단에 3개의 홍예문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우진각 지붕으로 된 목조문루를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으로 옛 모습을 다시 찾았습니다.

한일병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여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에 이전시켰고, 6.25 때 폭격으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1968년에 전통적인  모습을 상실한 채 철근 콘크리트로 원래 위치보다 뒤로 밀려나게  복원시켰습니다.

 

2006년에야 본래의 모습을 갖춘 광화문을 중건하기 시작해 2010년 8월에 완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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