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주차장 및 입장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회사 창립기념일을 맞아 평일 하루 쉬는 날, 3월에 오픈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다녀오기 위해 나섰습니다.
겸사겸사 서대문 형무소와 안산자락길과 안산 정상에 오르고 싶었거든요.
서울 안산자락길 및 안산 등산코스, 안산정상 봉수대 풍경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본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입니다.
두어 번 방문한 곳이지만, 방문할 때마다 일제강점기의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곳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두 차례에 걸쳐 적을 건데요.
첫 번째 글은 서대문 형무소의 입장료와 주차장 등 관람정보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시내용을 스케치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옥상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 일대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한 감옥이었다가 해방 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바뀌어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80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곳입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성역화 사업을 거쳤고,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했습니다.
당시의 보안과 청사, 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국가사적 324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산 역사의 교육장이 되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주차장
주차면수가 많지는 않기 때문에 주말엔 주차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주차요금은 소형차 기준으로 5분에 150원, 10분에 300원, 1시간에 1,800원입니다.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 모습
옥사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고 수감자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 형태의 감옥 형태인 파놉티콘 구조라고 합니다.
서대문형무소 입구
높고 붉은 형무소 담벼락이 이곳이 교도소(구치소) 였음을 알려주고 잇네요.
서대문형무소 연혁
1908. 10. 21 경성감옥 설치
1912. 09. 03 서대문 감옥으로 명칭변경
1923. 05. 05 서대문형무소로 명칭변경
1945. 11. 21 서울형무소로 명칭변경
1961. 11. 23 서울교도소로 명칭변경
1967. 07. 07 서울구치소로 명칭 변경
1987. 11. 15 서울구치소 의왕실 이전
1998. 11. 05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입장권 무인 자동 발권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30~18:00, 11~2월 09:30~17:00(입장은 30분 전 마감)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날), 1월 1일, 설과 추석명절 연휴
입장료(관람료)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무료관람 경로, 장애인, 유아, 보훈대상자 등
주차장 주차요금 10분 300원(1시간 1,800원)
관람 소요시간 약 1시간
몇 년 전에 3.1절에 방문했었는데요.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으나, 평일인 이날엔 여유롭게 자세히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람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관 전시관 1층 - 2층 -지하 - 중앙사 - 옥사 - 공작사 - 한센병사 - 추모공간 - 사형장 - 시구문 - 격벽장 - 창고 - 여옥사 - 망루 - 담장 - 취사장 - 뮤지엄샵
좌측의 구치감은 일제가 사상범 분리수감을 위해 1935년 5월에 준공한 미결수 수용 옥사라고 합니다.
840여 평 10개동의 옥사와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283개 감방 중 242개가 독방으로 조성되어 있고, 총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안창호, 여운형, 김정련 등의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고 지금은 철거되어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옥사 모습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안과 청사
서대문 형무소 업무를 총괄한 건물로 1923년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회의실과 소장실, 지하는 조사실로 사용하였는데요.
정면의 지붕을 높고 웅장하게 만들어 일제 식민 권력의 위압감을 느끼게 한 모습입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1908~1987)
서대문형무소 1층 전시관은 서대문형무소의 건축과 확장, 연혁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1912년에 마포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이 신축되자 경성감옥은 서대문 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덕동은 경성감옥으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1908년 당시에는 1,600㎥이던 규모가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여 1930년대에는 51,200㎥로 30여배 이상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가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의 침략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강제병합
형무소 역사실
사법제도의 도입과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전국 감옥의 설치와 확장, 1987년 서울구치소로 이전 후 복원과정 및 기록영상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조선 후기 의주로 가는 큰 길인 의주로가 위치한 곳입니다.
주변에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영은문과 모화관(현. 독립관)이 있었고, 1897년에 영은문이 없어진 자리에 독립문이 세워졌습니다.
과거 서대문형무소 배치도 모형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4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1936년 일제강점기의 전국 형무소
일제는 한국의 식민지배를 위해 한국인을 감금하고 탄압할 시설이 필요했는데요.
1908년에 8개 주요도시 본감옥과 산하 8개 도시 분감옥을 설치해 16개가 있었으며, 이후 30여개 넘는 감옥이 설치된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 문화재 원형 복원과 보존 그리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서대문형무소 개소 당시에는 수감인원이 500여명이었으며 주로 일제의 침략에 맞섰던 의병들이 주로 수감되었습니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의병투쟁과 비밀결사 요인들이 주로 수감되었고, 1919년에는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대폭 늘어나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하여 3000여 명에 육박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습니다.
1945년 광복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외 비밀결사, 각종 의열투쟁, 해외 무장투쟁, 사회/문화/노동/농민/학생운동 등의 활동을 펼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고 그 상당수가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좌우익의 이념문제와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독재정권에 의해 조작된 진보당 사건(1958), 민족일보 사건(1961), 동베를린간첩단(동백림) 사건(1967), 인혁당재건위 사건(1975) 등의 피해자 등이 수감되거나 사형당했습니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까지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었으며, 그 가운데 일부가 희생당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민족저항실 I
전시관 2층은 서대문형무소 소장실로 쓰였던 공간으로 1923년 건축 당시 중앙부분만 2층이었으나 1959년에 좌우 공간을 2층으로 증축했다고 합니다.
민족저항실 1은 대한제국 말기 의병부터 1919년 3.1 운동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항일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의병장
이강년, 허위, 이인영, 이은찬 등
1910~1945년 독립운동
1940년대 용수
수감자 이송 시 일반인에게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얼굴에 씌웠던 도구입니다.
광복회, 의열단, 27결사대, 조선민족 대동단
민족저항실 II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상범의 수형기록카드 등 약 4800야 장을 전시하며 그들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천정은 예전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되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활약하던 임시정부 요인들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중 여러 명은 이곳에서 순국했습니다.
1926년 6.10 만세운동
민족저항실 III은 192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항일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 시신수습실 모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파업 항일투쟁인 원산 총파업
간도지역 항일운동인 간도 공산당
민족유일당 운동, 신간회
6.10 만세운동 영향으로 조직된 신간회는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전국적인 민중운동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12월 민중대회를 준비하다가 44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허헌, 조병옥, 홍명희, 이관용, 이원혁, 김무삼이 실형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지렀고 1931년 5월에 해산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와 수양동우회
단파방송 청취사건
사형장 모형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지하 시신수습실을 그대로 재현한 곳인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네요. ㅜㅜ
지하 1층으로 이동하면 수감자를 조사하고 취조하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물고문하는 장면으로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억눌렸던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조사실
감옥 모습
취조실
손톱찌르기 고문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방법이며 심할 경우엔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고통을 줘 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문의 기록
일제의 고문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잔악한 것들이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 모멸감과 육체적 상처가 독립운동가 몸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자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멋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널어 마구 흔들어 못에 찔리게 하는 고문도구라고 합니다.
정말 잔혹한 도구네요.
지하 독방 모습
지하 독방 모습
변기 하나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전부인 곳이네요.
벽관 고문
옴싹달싹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입니다.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붙여졌고, 직접 들어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옥외, 야외 전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일본제국주의 근대식 감옥,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면 보면 볼수록 화가 나는 기분입니다.ㅎㅎ
그래도 우리가 이런 공간을 봐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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