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러시아 공사관(정동공원)으로 가는 길, 고종의 길
가을 단풍이 예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사계절 언제 걸어도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운치있고 아름다운 길이 아닐 수 없는 곳이네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미국대사관저 방향으로 가니 고종의 길이 나오더군요.
고종의 길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을 갔던 120m의 길을 말합니다.
정동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며, 덕수궁 선원전에 있는 출입문을 따라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미국의 토지였다가 2011년 윌 소유가 되면서 그 경계에 석축과 담장을 쌓아 복원한 길입니다.
아관파천 당시의 아픈 역사 속에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고종의 길로 떠나 봅니다.
고종의 길 출입구
미국 대사관저 옆, 작은 쪽문이 있습니다.
고종의 길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 전 입장마감), 동절기(11~1월)엔 09:00~17:30
휴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없음
고종의 길 우측은 담벼락으로 가려져 있는데요.
이곳은 과거 덕수궁 선원전 터라고 합니다.
덕수궁 선원전은 덕수궁의 주요 영역 중 한 곳이자 역대 왕들의 초상화와 어진을 모시고 제례의식을 열던 대한제국 황실 의례공간이었던 곳입니다.
1919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건물이 들어섰다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흔적과 부속시설이 발견됐고 복원에 대한 근거자료 역시 상당수 확보해 오는 2039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선원전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길 복원된 모습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을 말합니다.
을미사변 후 김홍집 내각과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고, 고종 역시 경복궁에 사실상 감금된 상태에서 러시아 공관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러시아는 고종의 뜻을 받아들였고, 러시아군은 러시아 공사관의 방위를 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서울로 이동시켰고, 친위대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하여, 2월 11일 새벽 국왕과 왕세자를 극비리에 정동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것입니다.
아관파천의 뜻은 당시 러시아를 아라사로 표기되어 이를 아관파천이라 불린 것입니다.
아관파천 후 고종은 친일 내각에 참여한 김홍집, 정병하, 조희연, 장박 등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체포하여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박정양, 이완용, 조병직, 이윤용 등 친러, 친미파 인사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아울러 1896년 5월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민영환을 특사로 파견해 러시아 군대와 군사 교관의 추가 파병, 3백만 엔의 차관, 전신선 설치 등을 요청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은 서울의정서와 모스크바의정서를 체결하며 한반도에서의 균형을 합의하였고, 고종은 러시아의 군사고문단 중 800여 명을 선발해 호위병으로 훈련시켜 환궁에 대비했습니다.
러시아는 아관파천을 계기로 조선에 압력을 가하여 압록강 연안과 울릉도의 삼림채벌권을 비롯하여 경원, 종성의 광산채굴권, 경원전신선을 시베리아 전선에 연결하는 권리,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등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최혜국대우를 통상 조약에 포함시켰던 구미열강도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여 경인 및 경의선 철도부설권 등 중요 이권이 값싼 조건으로 외국에 넘어갔습니다.
아울러 정부 각부에 러시아인 고문이 초빙되었고, 중앙 군제와 무기가 러시아식으로 개편되어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러시아 등 외국의 이권 취득은 러시아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고, 독립협회 등은 고종의 환궁을 호소하였습니다.
1897년 2월 25일, 고종은 호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판단하여 러시아 공관을 떠나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면서 약 1년간의 아관파천이 막을 내렸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정원 풍경(1938년) - 좌
1900년경 덕수궁 전경 - 우
영국 공사관에서 바라본 흥덕전(1903년) - 좌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1938년) - 우
덕수궁 신원전터와 그 앞에 있는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구세군 역사박물관
고종의 길
담장 사잇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담장사이를 지나 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동공원이 있고, 그곳에 옛날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자리입니다.
정동공원
정동공원은 조선시대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 주변에 조성한 공원입니다.
원래 이곳은 영국 대사관의 소유지였으나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되면서 훼손되었습니다.
2009년 시민 공모전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공원이 되었습니다.
정동공원 북쪽이 과거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곳입니다.
러시아 공사관은 1884년 조선과 러시아의 통상조약이 체결한 후 1890년 이곳에 들어섰습니다.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1년 여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한국전쟁으로 러시아공사관 건물은 파괴되었고 현재는 탑 등 일부 시설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 가톨릭 수도원 첫자리
1887년 7월 26일 조선교구장 블랑주교는 버림받은 고아들과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프랑스의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에 수녀파견을 요청했고, 1888년 7월 22일 조선교회의 부르심에 응답한 4명의 수녀들이 제물포에 도착했습니다.
7월 23일 서울에 온 수녀들이 러시아 공사관과 담을 맞대고 있던 정동 한옥에 머물면서 순교의 땅 조선에 가톨릭 수도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7월 29일에는 순교자의 딸들인 5명의 지원자들이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같은 해 9월 7일 종현(명동)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 탐방로
중구 정동과 서울시청 일대는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중심지이자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고 신문화와 계몽이 시작된 지역입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쌓인 곳이죠.
역사보행탐방로는 총 5가지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걸어보고 싶네요.
오얏꽃(대한제국의 황실문장) 핀 날들을 아시나요?
하나. 아관을 떠나는 임금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와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234일 뒤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둘. 고종, 황제의 나라 황제의 시간을 선포하다
고종은 환구단을 짓고 1987년 10월 12일에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황제의 시간인 연호는 광무였습니다.
셋. 근대, 이 길에서 시작되자
덕수궁 대한문에서 경향신문 앞까지 정동길 전체는 811m, 이 길은 외교와 문화, 선교와 교육의 길이었습니다.
넷. 근대를 향한 고종의 열정
고종은 구본신참(서울을 전통에 뿌리를 두되 근대가 살아있는 활력있는 공간)을 위해 ㄷ로는 사통발달로 뻗어나가는 방사형으로 다듬었고, 1899년에는 서대문에서 홍릉까지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본보다 3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합니다.
다섯. 을씨년스럽다를 아시나요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은 1905년의 을사년스럽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해 11월 17일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섯. 우리가 나라를 구하겠다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봉기 이래 대한제국인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만민공동회와 의회 설립운동, 전국 5000여개에 이르는 학교설립, 국채보상운동 등입니다.
일곱. 돌아오지 못한 세 사람
헤이그 특사로 떠났던 이상설, 이준, 이위종은 서울-일본-블라디보스톡-페테르부르크-베를린-덴 하그(헤이그)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대한제국이 독립국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던 고종의 비밀특명을 갔고 갔던 그들이지만, 세 명은 아무도 고종 황제 앞에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여덟. 폐하, 어디로 가시나이까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은 양위하고 맙니다.
강제퇴위 11일 뒤에는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비참함을 당하고 맙니다.
아홉. 262336을 아시나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때 사용한 권총은 벨기에 퍼브릭 내셔날에서 만든 브라우닝입니다.
그 권총 오른쪽 몸통에 새겨있는 총기번호입니다.
열. 오얏꽃 여기서 지다
13년 동안 피어 있던 황금 오얏꽃은 서울시 중구 예장동 2-1, 남산 북쪽 기슭에서 1910년 8월 22일, 이완용이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이었습니다.
열 하나. 대한제국, 200만명의 만세소리로 대한국민이 되다
1919년 3.1 운동은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은 4월 13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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