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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권 여행

대한제국 선포 장소이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환구단(원구단)

by 휴식같은 친구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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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장소이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환구단(원구단)

 

 

오랜만에 서울시청 시민청과 서울광장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시청] 시민청 이용정보 및 군기시유적전시관

서울시청 앞 광장, 서울광장 풍경

 

 

아울러 서울광장 동쪽에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고종황제가 즉위환구단(원구단)에 잠시 들렀습니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황단 또는 원구단이라고도 부릅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원구단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황제국인 대한제국이 되었으므로 독자적인 제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과 연명상소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원구단이라는 이름은 단이 둥글게 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신에 제사드리는 사직단이 음양론에 따라 방형으로 쌓는 것과는 달리 환구단(원구단)은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의례와 원이상천이란 관념에 따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울시청 광장인 서울광장 동쪽의 환구단 정문 모습

 

원구단 정문

 

대한제국 초기 원구단 시설을 지으면서 그 정문으로 지은 것입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당시 황궁인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맞은편 남궁별터(조선 후기 중국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세웠습니다.

 

기둥 위에는 출목을 갖춘 이익공식 공포를 사용하고, 대한제국 황실 문장인 오얏꽃 문양과 봉황문 등을 장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원구단의 전체 시설은 제를 올리는 원구단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췄으나 현재는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만 남아 있습니다.

 

 

환구단 정문은 원래 황궁우 남쪽인 지금의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변에 있었는데, 1960년대 말 철거된 뒤 오랫동안 소재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2007년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문이 원래 원구단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덕수궁과 서울광장이 마주 보이는 이곳에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환구단 정문 뒤쪽 모습

 

 

환구단 관람안내

 

관람시간 제한없음, 황궁우는 07:00~21:00까지만 진입 가능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

 

대한제국 제천단으로 황제 즉위장소 재현을 매주 토요일 10:30, 14:30에 소요시간 30분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환구단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는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습니다.

 

환구단은 조선철도호텔이 건립되기 전 1913년 헐렸는데 지금은 조선호텔 부지 내 위치하고 있습니다. 

 

 

환구단은 1897년 10월에 완공했고, 당시 왕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1854~1924)이 설계했습니다.

규모와 체제는 역대의 예전을 기초로 하여 영선사 이근명 등을 시켜 길지인 남교 회현방 바로 지금의 소공동으로 건립지를 선정한 후 단을 건립하였습니다.

 

석고

광무 6년(1902년)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입니다.

 

3개의 돌북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요.

이곳 외에도 조선 고종황제가 즉위한 지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가 세종대로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울 고종 어극 40년 기념비, 칭경기념비

 

조선호텔 쪽 원래 정문이 있던 삼문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입니다.

 

환구단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다른 지대보다 높아 황궁우의 기능인 신위의 보관보다는 제천의 장소를 밝히고 황제의 권위를 표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정의 환구단 황궁우

 

이 건물은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하면서 세운 원구단의 부속건물로 황천상제, 황지기, 태조의 신위를 보관하던 황궁우의 팔각당입니다.

기단 위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1층과 2층은 통층인데, 중앙에 태조의 신위가 있으며, 3층은 각 면에 3개의 창을 낸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천의례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기우제를 국가적으로 거행하는 데서 시작되었는데요.

환구제가 제도화된 건 고려 성종(재위 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집니다.

 

제천의식의 예로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이 있는데, 이는 단군이 제천을 위하여 쌓았다고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제천의례는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다가, 세조(재위 1455∼1468) 때 왕권강화를 위해 환구제를 다시 부활시켰으나, 세조 10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천자가 제천의식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다시 설치되었던 것이죠.

 

환궁우에는 정문과 양 옆에 돌계단이 있는 출입구가 3개 있습니다.

가운데 사진은 정면 계단의 뒤쪽 모습입니다.

 

환구단 난간석 석물유적

 

고종이천지에 고유제를 지낸 후 1897년 10월 12일에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을 구성했던 3개 층의 원형 난간석 중 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이 석재는 1913~1914년 조선 경성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을 헐어서 남게 된 석물입니다.

 

 

그동안 황궁우의 정문이자 환구단과 황궁우를 잇는 문에 해당하는 전벽돌로 지은 삼문(전축삼문)의 양쪽 난간석재로 사용한 것입니다.

2019년 천축삼문 주변의 지선 담장을 복원하면서 다시 헐어서 현 위치에 보관하고 있네요.

 

환구단의 은행나무

 

환구단 앞에 있는 조선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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