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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보은 정이품송] 여전히 고고한 자태의 정이품송

by 휴식같은 친구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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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정이품송] 여전히 고고한 자태의 정이품송

 

 

보은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 수령이 600년 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103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어가행렬할 때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연)가 소나무 가지에 걸리자, 소나무 스스로 가지를 위로 올려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세조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 2품 벼슬을 내렸으며 이때부터 이 소나무는 '연 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친구들 모임은 보은군,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정이품송과 정이품송공원입니다.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자연재해에 한쪽 가지가 거의 잘려나간 상태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정이품송을 감상해 보세요.

 

지난밤에 눈이 조금 내려 설경을 이루고 있는 정이품송

 

세조는 재위 10년(1464)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과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꿈에 단종의 어머니이자 세조의 형수인 현덕왕후(문종의 비)가 나타나 세조에게 침을 뱉은 이후 피부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요.

아마도 그때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요양을 한 때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속리산 밥주사로 향하던 도중에 입구에 있는 아름답고 커다란 소나무인 정이품송의 가지에 가마(연)가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갑자기 비가 내려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조는 길을 열어주고 비까지 피할 수 있게 해 준 소나무에게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이품을 하사하게 된 나무입니다.

연거랑이 소나무, 연송, 정이품송이라고도 불렸고, 인근 마을은 군사들이 머물렀다고 하여 진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속리산 문장대 방향의 봉우리들 모습

속리산 법주사를 관람하고 속리산 세조길을 조금걸었습니다.

 

보은 가볼만한 곳, 속리산 법주사 (입장료 및 주차장)

속리산 등산코스 및 속리산 세조길 산책

 

 

정이품송 관람안내

 

관람시간 제한없음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

 

정이품송의 정식 명칭은 보은 속리 정이품송, 1962년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령은 600~800년으로 예상됩니다.

 

정이품송은 높이 16.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5.3m로 양팔을 벌려도 한참 모자라는 둘레가 정말 두터운 소나무입니다.

 

정이품송 부인 정부인 소나무라고 하는 서원리 소나무

600년 이상된 소나무로 이곳에서 7km 떨어진 서원리에 있는 소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3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이품송과 부부사이라 하여 정부인 소나무라고 불립니다.

 

 

 

정이품송은 외줄기로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인데 비해 서원리 소나무는 우산모양으로 퍼진 아름다운 모습이 여성적으로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서원 계곡 인근 마을 사람들은 매년 서원리 소나무에게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2002년에는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가루받이를 하는 혼례식을 치러 후계목을 길러내는 사업을 시도했다네요.

서원리 소나무는 이튿날 방문해서 감상했습니다.

 

보은 정이품송의 정부인 소나무, 서원리 소나무

 

한쪽 가지는 거의 잘려나간 모습의 정이품송

 

정이품송은 개인적으로 방문한 지 30년은 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좌우가 균형이 맞는 모습을 하고 있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태였었죠.

 

 

 

하지만, 1993년에는 강풍으로 동북쪽 큰 가지를 잃었고, 5년 뒤 1998년에는 바로 옆의 또 다른 가지를 잃었으며 2004년 폭설로 크고 작은 가지 5개가 잘려 나가면서 특유의 고고하던 원추형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도 태풍이나 돌풍 등으로 피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솔잎혹파리 방제를 위해 소나무 전체를 방충망을 설치한 적도 있었습니다.

 

정이품송의 변천사

1980년대 만해도 원추형의 곧은 멋진 소나무 형상이었습니다.

 

이동하면서 바라본 정이품송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 모습으로 이 장면은 온전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청남대 등에서 정이품속 후계목을 본 적이 있는데요.

보은군에서는 후계목 양성에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2008년에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정이품송 솔방울에서 씨앗을 채취해 묘목 생산에 성공한 후 장안면 오창리와 개안리 2곳의 군유림 2.4ha에서 정이품송 후계목 육묘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쪽 가지들이 잘려 나가도 위풍당당 멋진 모습이네요.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태풍과 눈에 의해 언제 고난이 닥칠지 모르나, 오랜 시간 동안 이대로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이품송을 구경하고 하천 너머에 있는 정이품송공원이 있는데요.

 

원래는 2019년 훈민정음마당으로 개방했다가 조선 초기 승려이자 지역 인물인 신미대사를 한글 창제 주역으로 묘사해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이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친 후 정이품송공원 이름으로 2020년 재개장한 곳입니다.

 

공원에는 신미대사가 '월인천강지곡'의 저자이며, '석보상절' 간행에 기여함은 물론 훈민정음 창제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한글 단체 등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논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이후 보은군은 신미대사를 소개한 문구 중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훈민정음 보급에 많은 공로를 남겼다'라고 수정한 상태입니다.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역사 왜곡논란을 벌인 보은 정이품송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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