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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보은 가볼만한 곳, 속리산 법주사 (입장료 및 주차장)

by 휴식같은 친구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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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가볼만한 곳, 속리산 법주사

 

 

보은여행 첫날, 정이품송 앞에서 친구들과 만나 정이품송과 정이품송공원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보은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 속리산 법주사로 이동했습니다.

 

[보은 정이품송] 여전히 고고한 자태의 정이품송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역사 왜곡논란을 벌인 보은 정이품송 공원

 

속리산국립공원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와 문경시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으로 백두대간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려오는 소백산맥 줄기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법주사는 속리산에 있는 사찰로 의신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인도)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하여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한 사찰입니다.

법이 안주할 수 없는 탈속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보은여행의 일번지, 보은 가볼만한 곳, 속리산 법주사 풍경을 담았습니다.

 

속리산의 대표 사찰인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일가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553년 의신조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창건한 사찰이며, 776년(혜공왕 12)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습니다.

고려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로 유지되다가 정유재란으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1624년(조선 인조 2)에 사명대사와 벽암대사가 중건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속리산에는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문장대 등 9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크고 작은 10개의 전통사찰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구봉산으로 불리다가 신라시대부터 속리산으로 불리고 있고, 속리산 일원은 한국 8경 중 하나로 2금강,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법주사는 2018년에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 등 7개의 사찰이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총정리(세계유산, 기록유산, 무형문화유산)

 

새벽에 내린 눈이 산에 남아 있는 상태의 법주사 진입로

 

속리산 세조길 표지가 있는데, 법주사에서 시작해 세심정까지의 2.4km 구간을 말합니다.

1450년경 조선의 7대 임금이었던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로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하여 가장 성공적인 명소 사업으로 꼽히고 있는 길입니다.

 

 

세조는 속리산 지역을 자주 행차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복천암에 거주하고 있던 신미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훈민정음 보급에 대하여 논의했고, 과거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읽다 할아버지(작제건)의 유적을 찾기 위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말티재 길을 걸었는데, 훗날 고려 태조를 크게 흠모하던 세조가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놓아 정비한 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걷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관람안내

 

관람시간 06:00~18:30(동절기엔 06:00~17:30)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소형 하루 5,000원

 

속리산 법주사 안내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다른 한국의 산지승원의 다른 사찰에 비해 커 보이지는 않지만, 오래된 사찰이다 보니 국보와 보물급 유물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법주사는 국내 사찰 가운데 불교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국보),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법주사 석련지(국보)를 비롯하여 보물로는 법주사 사천왕 석등, 법주사 대웅보전, 사천왕 석등, 마애여래의좌상, 신법 천문도병풍, 원통보전, 괘불탱,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목조관음보살좌상, 철솥, 복천암 수암화상탑, 석조회견보살입상, 복천암 학조화상탑, 동종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5분 정도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 법주사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 입구에 있는 속리산 사실기비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동춘당 송준길이 쓴 비석입니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면산이라는 것, 세조가 행차한 사실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법주사를 크게 중창한 조선중기의 고승인 벽암대사(1575~1660)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정두경이 지었고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썼습니다.

 

벽암대사는 대표적인 선종의 승려이자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때에 해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 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인조 14년(1635)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승군 3000여명을 모은 후 항마군이란 이름을 짓고 남한산성으로 향했으나 도중에 전쟁이 끝나 항마군을 해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법주사 앞 계곡

 

법주사 금강문

 

일주문과 수정교를 지나 본격적으로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게 되는 건물입니다.

신라 553년(진흥왕 14)에 건립된 것으로 지금의 것은 새로 지어진 것이며, 금강문의 중앙은 법당으로 들어서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문 좌측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보여서 이동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4개 정도 줄지어 있습니다.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거대한 바위

아래쪽에 굄석이 이를 지탱하고 있네요.

 

다른 바위에는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이 새겨져 있습니다.

 

높이 6m의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마애불좌상으로 우리나라 마애불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평가되며 의자에 앉은 모습의 미륵불은 법주사가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임을 보여줍니다.


불상의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발이 촘촘하고, 눈은 가늘게 뜨고 잘 표현된 입술과 코는 온화한 표정을 만들어주고 있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은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마애불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깨에 비해 허리는 지나치게 잘록한 모습이며, 불상의 오른쪽에 짐 실은 말을 끄는 사람과 말 앞에 꿇어앉은 소를 새겨 놓았는데 이것은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 오는 모습과 소가 불법을 구하는 법주사 창건 전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속리산 법주사 경내 모습

 

법주사 석련지(국보)

 

법주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동쪽에 위치한 돌로 만든 작은 연못인데요.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며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석련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 경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조형물입니다.

8각의 받침돌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치고 있어 마치 연꽃이 둥둥 떠 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입니다.

 

몸돌은 커다란 돌의 내부를 깎아 만들었으며 반쯤 피어난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그 쓰임과 잘 어울립니다.

동자주(난간의 짧은기둥)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기발한 착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법주사 당간지주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인 금강문 왼쪽에 있는데요.

당간지주는 절의 행사나 법회 등을 알리는 안내문을 세운 깃대(당간)와 버팀돌(지주)을 말하는데 당간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있습니다.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고려 초 목종 9년(1006년)에 16m 높이로 조성되었으나 1866년 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한다는 명목으로 사찰의 금속물을 징발하면서 사라졌습니다.

현재의 당간지주는 1910년에 조성한 것으로 높이 22m이며, 1972년에 보수하였습니다.

 

커다란 나무 두 그루를 지나면 법주사 천왕문이 있습니다.

 

법주사 천왕문(사천왕문)

절을 지키는 사천왕상을 모시는 문으로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웠으며 혜공왕 12년(776)에 중창, 조선 인조 2년(1624)과 고종 34년(1897),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습니다.

 

사천왕상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을 말합니다.

위로는 제석천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하면서 불법을 믿고자 하는 중생을 수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규모의 목조탑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목조탑입니다.

법주사를 처음 만들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38년(1605)부터 인조 4년(1626)에 걸쳐 벽암대사가 주관해 다시 세운 것입니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기단 네 면의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는 주고입니다.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시대 때의 것입니다.

 

각 층의 밑면은 정사각형이며 1층과 2층은 5칸, 3층과 4층은 3칸, 5층은 2칸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어 안정감을 줍니다.

처마 끝을 받치는 공포는 1~4층까지는 주심포, 5층은 다포식입니다.

 

 

 

지붕의 꼭대기를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이 뻗어있는 사모지붕이고, 지붕 위 맨 꼭대기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밑에서 바라본 팔상전 처마 모습

오래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네요.

 

팔상전 내부 한가운데에는 5층 전체를 통과하는 기둥이 있습니다.

기둥의 네 면에는 팔상도가 두 폭씩 있고, 그 앞에는 열반상과 삼존불상이 있습니다.

 

팔상전 내부 천장 모습

 

법주사 범종각

 

법주사 미륵전(금동미륵대불)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m에 이르는 기단 위에 높이 약 25m의 거대한 이 청동대불은 국내에서 최대의 규모이며, 소요된 청동만 약 160톤에 이릅니다.

옛날에 방문했을 때에는 시멘트색이었는데, 지금은 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네요.

 

팔상전 뒤에 자리한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좌측에 있는 전각은 법주사 원통보전(보물)입니다.

 

원통보전은 관음보살상이나 아미타삼존상을 모셔 놓은 건물을 말하는데, 법주사 원통보전에는 2.8m 높이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인조때 건물을 중창하면서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임)을 목조팔각연화대좌 위에 모셔 놓고 있습니다.

1974년에는 해체하여 완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쌍사자 석등은 신라의 석등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높이 3.3M로 널따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조각이 올려져 있는데 머리의 갈기를 비롯하여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석등은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하나의 돌로 조각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같은 법주사 내에 있는 사천왕 석등(보물)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습니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뜻합니다.

 

높이 3.9M로 받침돌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돼 있습니다.

받침돌엔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화사석은 8면으로 4면에는 창을, 4면에는 사천왕상을 주었습니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양식으로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고쳐지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영각과 명부전, 삼성각이 대웅전 옆에 일렬로 들어서 있습니다.

 

진영각은 고승대덕의 영정을 모시는 곳으로 조사각이라고도 부릅니다.

법주사 진영각은 1991년에 새로 지은 것이며,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 조사와 전법초조 태고선사를 중심으로 모두 30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법주사 명부전은 원래  법주사는 지장보살과 깊은 관련을 맺은 사찰로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이 있었는데 사라져 이곳에 2003년 명부전이 건립된 것입니다.

 

법주사 삼성각은 대개 사찰의 언덕 가장자리에 들어서지 않고 대웅보전 왼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 북극성에 해당하는 치성광여래, 일광/월광보살 등을 그린 칠성탱,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는 독성을 그린 독성탱, 호랑이를 타고 앉은 산신을 그린 산신탱이 있으며, 이 불화들은 모두 1991년에 조성된 것입니다.

 

진영각 앞에 있는 저 조형물은 무엇일까요?

 

2층 모양의 웅장해 보이는 법주사 대웅보전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고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보전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입니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 전각입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입니다.

 

 

 

대웅전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이 놓여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는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많을 뿐만 아니라 길이 평탄해 관람하기 좋은 사찰입니다.

가는 길도 아름다운 보은 속리산 법주사, 날씨 좋은 봄과 가을에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네요.

 

법주사에서 나와 눈이 쌓인 속리산 세조길을 조금 걸으며 산책하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속리산 등산코스 및 속리산 세조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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