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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대전시.세종시

보은 전통가옥, 보은우당고택

by 휴식같은 친구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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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전통가옥, 보은우당고택

 
 
보은군 장안면 하개리에 있는 보은우당고택(선병국 가옥)은 일제강점기(1919~1921)에 지어진 개량 한옥 형태의 주택으로 중요민속문화재 134호로 지정된 전통가옥입니다.
보은군에 있는 대표적인 전통가옥으로 인근에 선병우가옥도 있는데, 이곳을 들러보지 않았습니다.
 
보은우당고택은 전남 고흥의 갑부였던 우당 선영홍(1862-1924)이 명당자리를 찾아 지은 대저택으로 지금은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선병국 가옥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헌 선정훈 선생은 아버지 선영홍과 함께 우당고택을 지은 주인공이며, 선병국과 인근에 있는 선병우 가옥의 선병우는 선영홍의 손주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보은우당고택 곳곳에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보은군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인 보은우당고택을 구경해 보세요.
 

대저택답게 보은우당고택 입구에는 소나무숲이 있습니다.
 
보은우당고택은 맨 아래의 지도에서 보듯 사방이 삼가천이라는 하천이 흘러가는 육지 속 섬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우당 선영홍이 꿈속에 나타난 육지 속의 섬이란 표현이 딱 떨어지는 명당자리인 듯합니다.
 

 

 
보은우당고택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
 
보은우당 고택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조용히 관람해야 합니다.
 

보은우당고택 입구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입구부터 보은우당고택 대부분은 현재 대공사 중입니다,
마당과 길이 모두 파헤쳐져서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다 보니 본격적인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환경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듯합니다.
 

보은우당고택 입구
 
우당 선영홍(1862~1924)은 전남 고흥에서 살았는데 해산물 교역으로 고흥 최고 갑부였다고 하는데요.
소작농들의 어려움을 알기에 소작료를 적게 받았고, 대흥사라는 기숙학교를 세워 숙식을 제공하며 가난한 집안의 인재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등 많은 덕을 베푼 의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자손들이 유복하게 지내며, 또 남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면서 대대로 오래오래 살아갈 구례 운조루나 경주 최부자댁 같은 가문이 자리할 명당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풍수가를 불러 백방으로 명당터를 찾았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명문 세가들이 차지하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 `육지의 섬에 터를 잡아야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다` 말하며 어느 명당터의 풍경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당 선영홍은 가장 먼저 한양 여의도를 찾았으나 꿈에 본 터가 아니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당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느 날 보은 속리산 남쪽 장안면 개안리에 가니 꿈에서 본 모습과 유사한 명당자리가 있어 이곳에 큰아들 남헌 선정훈과 함께 100여 칸에 이르는 큰 집을 지었습니다.
재산가에다가 식솔이 워낙 많아서 대저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집안에 있는 탱자나무
 
당시 집을 짓기 위해 우당 선영홍 공은 아들과 함께 경복궁보수를 담당했던 일급 목수들을 불러오고 아름드리 멋진 나무들을 실어 왔으며 명동성당을 짓는데 쓰인 같은 벽돌을 가져왔습니다.
선영홍 공의 나이 44세, 아들인 남헌 선생은 17세 때 시작하여 99칸의 기와집이 9년 8개월 만에 완공됐습니다.
 
우당 선생은 이 집에서 3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났고, 선생의 사후엔 장자인 남헌 선정훈 선생이 가주가 돼 부친의 가업을 계승하고 있고 지금은 그의 손주들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헌 선정훈 선생 역시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훌륭한 인재양성에 애썼던 부친의 뜻을 이어가며 선덕을 베풀었는데요.
보은 우당고택은 선병국 가옥으로 불리며 해마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보은우당고택이 있는 곳은 삼가천이 고택의 북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흐르다가 동쪽에서 다시 합쳐지는데, 집터의 형상이 연꽃잎 하나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인데요.
연화부수형의 명당에서 살면 대개 재복을 많이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택의 뒤에는 한 일자 모양의 기다란 산이 단아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데, 3000평 넘는 고택을 잘 보호해 주고 일자형의 주산은 어질고 현명한 사람들, 인품이 고매한 사람들, 총명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합니다.
(이상은 Business Post의 [풍수지리와 경제] 현몽으로 점지받은 명당, 충북 보은 우당 고택 (1) 기사를 인용함)
 

보은우당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북쪽에 사당을 배치하고 그 앞에 안채와 사랑채를 나란히 배치하여 전통적인 양반가의 주택 배치와는 전혀 다른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채 앞과 사랑채 사이에는 행랑채를 'e' 자 모양으로 크게 둘러서 안마당을 만들었고 행랑채 남쪽 끝에 안대문이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는 '공(工)' 자형 평면으로 가운데에 대청이 있고, 양끝에 방을 두었으며, 대청 앞뒤 툇마루를 통해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 앞의 마당이 넓고 개방되었으며 높은 기단, 정교하게 가공한 창살 문양 등이 특징적입니다.
이 보은우당고택은 개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한 것으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안태와 사랑채, 사당 모두 개방하고 있지 않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고택답게 항아리단지가 무척 큽니다.
 

고택에서는 이 항아리단지에 된장, 고추장, 간장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은우당고택 안채
 

안채는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어 출입 자제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살짝 바라본 안채 모습
설명처럼 마당이 무척 넓네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은우당고택 사당이 있습니다.
역시 대문은 닫혀 있어서 담장너머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당채는 안마당에 축을 직각으로 꺾어서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보은우당고택에는 33칸짜리 관선정(착한 사람끼리 모이면 본을 받는다)이란 이름이 붙은 서당도 있었는데요.
수업료나 숙식이 무료로 제공하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운영하다 보니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던 인재들이 그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관선정은 선영홍 공과 암현 선생의 뜻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아쉽게도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행랑채, 곳간과 함께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화유산신문, [한국의 고택] 보은 선병욱 가옥 인용)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넓은 마당은 공사 중....
 

이곳은 보은우당고택 사랑채
 
안채 동남쪽에 안채와 직각 축으로 남동쪽 방향에 있습니다.
부엌 위쪽에는 다락이 있고, 부엌 앞 퇴에는 골방을 둬 사랑방 앞 툇마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담장 너머로 본 사랑채 모습
 

반대쪽 출입문
 

입구 반대쪽 안채 모습
 

보은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이라고 해서 다소 기대하며 방문했는데, 공사 중에다가 안채와 사랑채, 서당 등 모두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아쉬움만 남기고 나왔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새롭게 단장 후 개방하면 좀 더 운치있는 우리의 전통가옥을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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