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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역사기행]몽골침략과 병인양요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고려궁지' 답사

by 휴식같은 친구 2017.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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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역사기행]몽골침략과 병인양요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려궁지' 답사

 

 

강화도 역사기행 세 번째 방문지, 고려궁지

용흥궁과 대한성공회강화성당을 관람하고 고려궁지로 넘어왔습니다.

용흥궁과 성공회강화성당에서 도보로 5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서 같이 관람하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고려궁지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옮겨진 궁궐로 최우는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건립한 곳입니다. 

규모는 작으나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을 송악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원종 11년 환도할 때(대몽항쟁기)까지 39년간 고려의 궁궐로 사용되었는데요. 

 

몽골과의 화친 이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1270년)하자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안타깝네요.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행궁, 유수부건물과 민가까지 들어서면서 고려시대 궁궐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강화도에 궁궐이 있었다는 건 최근에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 무식함을 반성해 봅니다. 하하하

 

 

고려궁지 입장료성인은 900원, 청소년 및 군인은 700원, 어린이는 600원입니다.

강화군은 주요관광지에 대한 입장료를 받는데요. 

3~4개소를 방문하면 15% 할인이 되고, 5개소 이상 방문하면 20% 할인을 해줍니다.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는 고려궁지를 비롯해 갑곶돈대(전쟁박물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역사/자연사박물관, 평화전망대, 화문석 문화관, 마니산 국민관광지, 함허동천야영장, 갯벌센터 등이 있습니다.

 

강화도 유료관광지를 3개 이상 방문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미리 계획해서 입장료 할인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고려궁지 이용시간은 09:00 ~ 18:00 까지이고, 휴무일 없이 365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려궁지 주차장은 입구에 주차할 수 있는 무료공간이 있습니다.

 

고려 궁궐의 건물로는 본궁인 연경궁, 그 북동쪽 언덕에 강안전, 소동문을 들어가 성마루터 북쪽에 경령궁, 옥림리 자문고개 서쪽에 건덕전, 그 동쪽에 장년전, 뒤쪽에 만녕전, 북창문 밖의 대묘동에 태묘전각의로 대관전과 신격전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없어진 상태입니다.

또한 이궁과 가궁도 곳곳에 세워졌다고 하니 그 규모가 방대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려궁지에는 건물기단과 3단으로 된 돌계단이 남아 있었으나 후에 강화유수부 건물이 세워졌고 1976년에 3문의 출입문을 세우고 돌담을 두른 후 현재 사적 13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건물입니다.

인조 16년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였고, 영조 45년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관청들을 세웠는데요. 1622년(광해군 14년)에 봉선정(태조 영정을 봉안하는 곳)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고, 1631년(인조 9년)에는 행궁을 건립하였으며, 1638년(인조 16년)에 유수부 동헌을 개수하여 1654년(효종 5년)에 유수부 이방청을 건립하였습니다.

숙종 21년에 장녕전, 숙종 39년에 만녕전이 차례로 세워졌다고 하네요.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으로 정비되었습니다.

 

강화 유수의 업무를 보던 장면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본 건물은 외규장각인데요.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 선을 둘러 왕실의 위험을 더했다고 합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과 여러 건물들을 파괴하였고,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프랑스 군의 눈을 자극한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을 약탈하여 갔다고 합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강화천도 이후 왕국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문헌을 통하여 그 당시의 대략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며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는 곳입니다.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보수정화사업을 진행했으나 매장유구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일부 영역을 정비하는데 그쳤습니다.

 

외규장각 복원을 추진하게 된 것은 1991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병인양요 당시 약탈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촉구하였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가 대두되면서 국민 각계로부터 고려궁지에 있던 외규장각 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강화 외규장각 의궤는 1975년 박병선 역사학자에 의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자는 사실을 알고 시민단체, 정부가 협력하여 의궤 반환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1993년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1822년(순조 22) 1권이 먼저 반환되었습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 프랑스 양국 정상합의가 체결되고 후속조치로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강화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만에 모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고려궁지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인데요.

당시 상당한 크기였을 궁궐이 아무런 문헌 없이 추측에 의해서 이렇게 궁지만 재현해 놨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이곳은 강화유수부 이방청입니다.

강화유수부의 행정 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죠.

 

효종 5년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정조 7년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수리하였습니다.

1915년 이후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으로 정비되었습니다.

 

구조는 'ㄷ'자 형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모두 1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수많은 침략으로 궁궐이 강화도에까지 왔고 39년이나 도읍지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까지 민족의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강화도 역사기행 첫 번째, 용흥궁과 강화성당, 고려궁지를 다 둘러봤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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