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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 교촌 마을 풍경과 경부 최부자댁(경주 교동최씨) 고택구경

by 휴식같은 친구 2019.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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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 교촌 마을 풍경과 경부 최부자댁 고택구경

 

 

경주 교촌은 신라 신문왕 2년(682)에 한국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입니다.

신라시대의 국학은 고려시대의 향학, 조선시대의 향교로 이어졌는데요.

 

마을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으로 불리는 것은 모두 이곳에 경주향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주 교촌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착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 경주 최부자댁 고택이 있기 때문인데요.

최부자는 12대 4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지켰고, 9대 진사를 배출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진정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곳이네요.

 

경주여행을 하는 사람이면 꼭 들리는 코스, 경주 교촌풍경과 경주 최부자댁 고택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경주 교동, 교촌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한 황리단길 초입에 있는 이상복 경주빵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을 먹었던 별채반 교동쌈밥집도 보이네요.

 

교촌(교동, 교리) 주차장마을 주차장과 길거리 노상 공영주차장이 있는데요.

이곳은 30분에 500원을 받는 유료주차장입니다.

 

교촌 입구에 있는 관공안내소 앞 길건너에 주차장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틀간 이곳을 관광할 때 무료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교촌마을 일대(최부자댁 고택, 경주향교, 경주법주, 월정교, 계림, 첨성대, 대릉원)를 순서대로 관람하고 돌아오니 다리는 아팠지만 볼거리가 너무 많은 곳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교촌마을에 들어 와서 가장 먼저 교리김밥에서 점심으로 만생고를 해결했습니다.ㅎㅎ

 

경주맛집, 경주교동 교리김밥과 잔치국수 드디어 먹어보다

 

경주 교촌마을 관광안내소 안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조금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경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경주 교촌에는 향교와 최씨 고택을 중심으로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첨성대, 월성, 계림 등 중요한 신라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신라문화 속의 조선문화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교촌마을에 있는 한정식명가

이곳에서 한 끼를 먹으려고 계획을 했으나 결국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한정식 명가

 

휴무일 : 1, 3째주 화요일

영업시간 : 11:00~21:00

메뉴 및 요리 : 명가한정식(25000), 연잎밥정식(15000), 명가비빔밥(10000),수제돈까스(12000), 코스요리(33000/55000/88000) 등

 

교촌가람

 

인절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고, 맛있는 인절미를 시식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딸 아이가 자기 이름하고 똑 같다며 재밌어 하네요.ㅎㅎ

 

인절미 떡메치기 체험할 수 있고, 카페와 떡 등을 판매하는 교촌가람 모습

교촌에는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는데요.

 

토기공방, 토기가마, 누비체험장, 미경 전통식문화연구소, 교촌국악원 예악당, 전통한식당, 경주를 입다, 교촌 가람떡, 잔통찻집 다연, 박혜숙 어묵, 교촌식당 등에서 각종 체험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곳이 경주 최부자댁 고택입니다.

 

경주 최씨 최부자의 종가로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경주 향교 옆에 위치합니다.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키켰고 학문에도 힘을 써 9대에 걸텨 진사를 배출한 곳입니다.

 

이 가옥은 조선중기 최언경 대에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779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전해지며 문간체, 안채, 사랑채, 사당, 곳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안채는 'ㅁ'자 모양이고, 대문체는 '一'자 모양입니다,

 

 

아울러 이곳은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 생가이기도 합니다.

 

최준 선생(1884~1970)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 사회운동가, 교육자이기도 하는데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주의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 12대로 마지막 최부자이기도 합니다.

 

경주 최부자댁(국가민속문화재 27호)은 1947년 최부자 12대손 문파 최준 선생이 기증하였고, 현재 학교법인 영남학원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경주 최부자댁 관람시간09:30 ~ 17:30

휴관일매월 마지막주 월요일과 설날 및 추석 당일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마당에 자리한 항아리들

 

명부의 격조와 품격을 갖춘 경주 최부자

 

최부자댁 고택자리는 신라의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에 자리했다고 전해지며, 건축 당시 향교 유림들의 뜻을 수용하여 향교보다 2단계 낮게 터를 깎아내고 지었다고 알려졌습니다.

99칸이었던 가옥은 사랑채는 불타서 복원됐고, 작은 사랑채는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최부자댁 모습입니다.

 

1779년에 지어진 것이니 230년 정도 된 한옥건물입니다.

 

경주최씨 고택의 특징은 'ㄷ'자 건물 지붕을 보면 지붕이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옥모습은 쉽게 볼 수 없다고 하네요.

 

마당 앞에 자리한 굴뚝모습도 특이합니다.

 

최국선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다'는 신념으로 동네 어귀에 초가집을 짓고 곳간을 열어 죽을 쑤어 굶주린 사람을 구휼하니 사람들은 이곳을 활인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는 최부자의 상생과 나눔 정신의 시발점이 되어 교촌으로 이사한 후에도 계속되어 6.25 동란 시에도 피난민을 구휼하였다고 합니다.

최국선은 최동량의 맏아들로 가문을 부자의 반열에 올리고 흔히 말하는 만석꾼의 1대로 보면 됩니다.

 

 

최부잣집에서 전해오는 전통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으며,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최부잣집의 1년 쌀 생산량은 약 3천 석이었는데 1천 석은 사용하고, 1천 석은 과객에게 베풀고 나머지 1천 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네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댁을 본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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