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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경주여행] 경주계림과 내물왕릉(in 인왕동 고분군)

by 휴식같은 친구 201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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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인왕동 고분군에 있는 내물왕릉과 경주계림 풍경

 

 

경주교촌마을에 있는 경주향교를 지나면 경주계림과 인왕동고분군이 나옵니다.

 

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경주향교

 

인왕동 고분군 방향의 첫 번째 큰 능은 신라 17대왕인 내물왕릉이 있습니다.

 

경주계림의 천년 숲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더군요.

내물왕릉과 인왕리고분군, 그리고 경주 계림 풍경을 담았습니다.

 

경주향교 정문을 50며 미터 걸으면 인왕동 고분군이 나옵니다.

인왕동 고분군은 평지에 마련된 신라시대의 고분 밀집지역이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없어지고, 도굴을 당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의 구조로 금동장식, 무기류, 마구루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야간에도 근처의 첨성대, 경주계림과 함께 이곳도 조명을 비추어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경주향교에서 가장 가까운데 위치한 내물왕릉

내물왕은 정확히 내물 마립간이라고 합니다.

 

마립간이란 내물왕부터 그전의 왕호인 이사금 대신 쓰이기 시작해 22대 지증왕이 중국식 왕호를 사용할 때까지의 왕의 다른 말입니다.

 

참고로 신라시대 왕 명칭의 변화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마립간 - 왕 순서입니다.

 

 

내물왕신라의 1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356~402년입니다.

성은 김, 이름은 내물 또는 나물, 나밀이며 칭호는 마립간

 

제13대 미추이사금(미추왕) 이후 김씨 성으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왕이자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첫 번째 왕입니다.

미추이사금(미추왕)의 조카이자 사위로서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김씨 왕위세습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도움으로 백제와 왜군을 격파했는데 이후로 고구려 간섭이 심해져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볼모로 보내기도 했다네요.

 

내물왕릉밑지름 22m, 밑둘레 68m, 높이 5.3m로 흙을 올려 만든 원형봉토분입니다.

 

평지에 마련된 것으로 보아 내부는 나무로 만든 덧널 위에 냇돌을 올려쌓아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정식으로 발굴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내물왕릉은 첨성대 서남에 있다라는 기록에 의존한 추정일 뿐, 정확히 내물왕릉 이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인왕동고분군의 다른 능 모습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 신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신라 초기에는 6부족 연맹체로 시작해서 6부의 대표들이 회의를 통해 국가를 운영하였습니다.

 

 

따라서 왕권이 미약하였고, 왕도 박씨, 석씨, 김씨 등 세 성씨가 돌아가며 왕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물왕시대에 김씨 세습체계를 갖추면서 왕권이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왕의 명칭도  이사금-마립간-왕 의 순서로 변경되기도 했고요.

 

또 다른 인왕동고분군의 능들

 

우측의 숲은 바로 경주계림 입니다.

 

경주계림은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깃든 숲입니다.

계림은 원래 성스러운 숲이란 뜻의 ‘시림’으로 불렸는데, 닭과 관련된 김알지의 탄생설화 때문에 닭이 우는 숲이란 뜻계림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주계림은 휴무일 없이 24시간 언제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계림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려는 듯이 나무가 정말 수령이 많아 보입니다.

실제 100여주의 고목이 경주 계림에 있습니다.

 

김알지 탄생설화를 간단히 알아볼까요?

 

탈해왕 9년(65년), 왕은 한밤중에 금성 서쪽, 시림이라는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신하를 보낸다. 

조그마한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으며,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아이는 갈수록 총명함을 더했고, 이름은‘알지, 금궤 속에서 나왔다 하여 김이라 성씨를 붙였다. 

탈해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왕위를 받지 않았으며, 김알지의 육대손에 와서 김씨가 왕이 된다.

 

신라인들에게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알리는 동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황금상자는 권력을 상징하는데 토템과 금 숭배 사상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순조 3년(1803)에 세운 계림비각이 있습니다.

 

계림비각은 6각형 비각으로, 안에는 계림의 내력과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새긴 [경주김알지탄생기록비] 가 놓여 있습니다. 

 

비석은 높은 대석과 비신, 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의정 남공철이 비문을 짓고, 경주부윤 최헌중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비각 주위에는 토석 담을 두르고 따로 출입문을 달았습니다.

 

경주계림 숲 모습

 

거대한 회화나무 고목모습

 

이 회화나무는 계림 정문에 위치하고 둘레 직경 2m 정도이며 수령은 1,300년으로 추정됩니다.

과거 줄기 및 수간에 우레탄 수술로 인한 고사가 발생하여 현재 치료방법은 친환경 공동충전 방법으로 치료한다고 합니다.


수간부는 10% 정도 생존하고 있으며, 하부 그루터기는 이전의 수형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든 조형물입니다. 

 

경주계림에는 첨성대와 월성 또는 신월성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숲이니 정말 오래된 숲입니다.

 

반월성과 석빙고, 경주월성이 있는 지역의 풍경입니다.

 

경주계림과 계림비각 모습

 

계림에서 첨성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찍은 사진인데 이곳은 경주 황남동 대형건물지라고 합니다.

 

1988년 경주고적발굴 조사단이 발굴조사를 했는데 총 15기의 건물지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조성시기는 출토된 유물로 보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말 이후로 추정한다고 하네요.

 

황남동 건물터 뒤쪽은 인왕동 고분군 모습입니다.

 

경주계림을 지나쳐 첨성대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경주에 왔으면 당연히 첨성대는 필수입니다.

 

이튿날 저녁에 방문해서 찍은 야경모습 입니다.

인왕동 고분군 모습이네요.

 

그리고 경주계림 야경도 예쁩니다.

 

첨성대 야경도 눈에 들어오죠?

 

 

경주 교촌마을엔 정말 볼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주에 여행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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