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여행] 광성보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강화도여행, 초지진과 덕진진에 이은 세 번째 강화전쟁유적지 목적지는 광성보입니다.
몽골의 침략과 신미양요를 버텨낸 곳,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 광성보에는 어재연 장군의 충절을 기려야 하는 곳입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후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입니다.
조선 광해군 대 헐어진 곳을 다시 고쳐 쌓았고,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습니다.
12개의 진과 보 중 하나였으며,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관할했습니다.
그 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던 곳입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로,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한 곳입니다.
이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를 1976년에 복원하였고,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하고 정비하였답니다.
광성보에는 광성돈대를 비롯하여 용두돈대,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 신미순의총, 쌍총비각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덕진진에 속해 있던 손돌목돈대는 광성보를 통해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광성보 입장료는 성인 1,100원, 청소년 및 군인은 700원, 어린이도 700원입니다.
6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 국가유공자, 장애인, 강화군민 등은 무료관람이 됩니다.
관람시간은 09:00~18:00
휴무일은 없음
주차장은 무료
광성보 입구인 안해루 성문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안해루 옆이 광성돈대입니다.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돈대로,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홍이포, 사정거리 700미터), 소포(사정거리 300미터), 불랑기(프랑스군이 쓰던 포)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습니다.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3문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숙종 5년(18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여 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이 40일 만에 완공했다고 하네요.
광성보는 다른 진과 보와 다르게 규모가 상당히 넓습니다.
이런 산책로가 있어서 가족 나들이로 정말 좋아 보이더군요.
인적없는 강화해협의 풍경은 돈대나 진, 보를 방문하면 어김없이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한참 걸으니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와 쌍총비각이 있습니다.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는 신미양요 때 미군이 10여 명의 사장자를 냈던 것에 비해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입니다.
광성보 주차장 진입 전 로터리에 어재연 장군상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쌍촌비각은 신미양요 시 광성보 전투에서 순결한 어재연 장군과 아우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그리고 어재연, 어재순 이하 수비군은 열세한 병기로 미국아세아 함대의 해병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전 수비군이 장렬히 순국한 곳에 나라에서 충절을 기리기 위해 새운 비입니다.
1기는 광성파수순절비로 비의 규모는 폭 62cm, 높이 168cm, 두께 25cm의 양면비로 1873년에 세워졌습니다.
다른 1기는 어재연과 어재순 순절비인데 폭이 58cm, 높이 177cm, 두께 25.5cm의 양면비로 역시 1873년에 세워졌습니다.,
쌍문비 비문해설
고종 때부터 제사를 지내왔고, 1970년부터는 어재연의 후손들이 제사를 올려 충절의 유업을 추모하고 있답니다.
쌍촌비각 맞은편 아래에는 신미 순의충이라는 무덤이 7기 있습니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이 묘인데요.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 중 어재연 향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안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을 했다고 합니다.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 갈림길
용두돈대로 내려가는 길에 바라본 손돌목돈대 모습
멀리서 보니 콜로세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광성포대 모습
광성포대는 조선 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중 하나인데요.
국방강화책으로 내성, 외선, 12진보, 54돈대를 설치하였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고종 11년(1874) 용진진, 광성진,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합니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하였고,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었으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미터, 포좌의 크기 약 6미터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복원하였습니다.
용두돈대로 가는 길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였습니다.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죠.
대포
용두돈대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두돈대에서 바라보이는 광성포대 모습
용두돈대 앞에 있는 소나무 하나가 과거의 치열했던 전투를 홀로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용두돈대 앞 강화해협은 특히 물살이 셉니다.
그래서 손돌목이라고도 하는데요.
물길이 빠르고 밀물과 썰물 차이가 심해서 숙련되지 않은 뱃사공은 이 물길을 건너지 못했다고 합니다.
후금(청)이 쳐들어 왔을 때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길을 나섰는데 손돌이 길안내를 맡았습니다.
급한 물살로 뒤집힐 것 같은 배는 임금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갔습니다.
임금은 속으로 뱃사공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짓이라 생각하고 손돌을 죽이라 명을 내립니다.
손돌은 죽기 전에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러면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손돌은 죽었고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아갔더니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임금은 그제야 손돌을 죽인 것에 후회를 하고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에 손돌을 묻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손돌의 목이 베인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르고,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이를 손돌의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고 하네요.
조선을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뜨리고, 자기를 피신시키는 뱃사공을 죽인 임금이야말로 자기 잘못을 진즉 뉘우쳐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마침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배가 있네요.
이어서 다시 온 길을 돌아가면 손돌목돈대가 있습니다.
일명 손석항돈대라고도 하는데 용두돈대에 못 미쳐 구릉 정상부에 둥그렇게 쌓은 돈대입니다.
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아울러 덕진진에 해당하는 돈대인데, 지금은 광성보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손돌목돈대는 공사 중이라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둥그렇게 제대로 만든 요새입니다.
방금 지나왔던 용두돈대 가는 길 모습
손돌목돈대까지 구경하고 내려오는 예쁜 소나무길
광성보는 크기가 제법 커서 소요시간을 넉넉하게 1시간 정도 잡아야 합니다.
풍경 좋은 볼거리도 많아서 다른 곳보다 우선 방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세 번째 진지를 구경했는데요.
가는 곳마다 조선 후기에 외세 침략에 대한 처절한 싸움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앞으로는 정말 전쟁은 꼭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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