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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강화도 여행] 초지진 / 초지돈대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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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여행] 강화 초지진의 포탄 흔적들 

 

 

지난 주말 날씨도 포근해서 강화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의 가볼만한 곳은 거의 다녀왔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전쟁역사유적지는 지나치기만 해서 이번 기회에 둘러보기로 했네요.

 

강화도는 수도 한양에서 가깝기도 하고, 좁은 해협으로 인해 최고의 방어벽이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도가 되기도 하고 왕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를 수도로 삼았던 적(고려궁지)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후금(청나라)가 공격해 오자 인조가 피신하여 100여 일을 머물기도 했고, 한양으로 통하는 입구에 자리한 덕에 근대에 들어서 외세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보루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 명명된 "진, 보, 돈대"에 대해서 알아보고, 초지진-덕진진-광성보-갑곶돈대 순으로 둘러봤습니다.

차를 몰고 먼저 도착한 곳은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항쟁의 역사가 어린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강화도 초지진(초지돈대)입니다.

   

초지진은 강화 초지대교를 지나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위치합니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죠.

안산의 초지량이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한 곳입니다.

 

'진'과 '보', '돈대'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는 예비 수도로서 부각되고 방어시설을 확충하면서 5개의 '진'과 7개의 '보' 등 12진보를 설치하고, 53개의 돈대를 설치합니다.

'진'은 '보'보다 다소 큰 부대로 5진은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이며, 7보는 인화보, 승천보, 철곶보, 정포보, 장곶보, 선두보, 광성보 등입니다.

 

12개의 진보는 각각 3~5개의 돈대를 관할하고, '돈대'는 관측과 방어를 담당하는 소규모의 군사시설인 것입니다.

 

초지진 주차장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초지진에는 배 3척을 비롯하여 첨사 이하의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 등이 배속되고,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의 세 군데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 근대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적지입니다. 

 

초지대교 모습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4번 째로 큰 섬으로 김포에서 초지대교와 강화대교를 통해서 강화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국방유적지 투어는 초지대교에서 강화대교까지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달리며 진행했네요.

 

강화해협 한가운데 있는 초록 등대와 강 건너에 있는 김포시 대명포구 모습입니다.

 

강화도 유료 입장하는 관광지

 

초지진 입장료는 성인 700원, 청소년 및 군인은 500원, 어린이도 500원입니다.

6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 국가유공자, 장애인, 강화군민 등은 무료관람이 됩니다.

관람시간은 09:00~18:00

휴무일은 없음

주차장은 무료

 

강화도 유료관광지는 총 11곳

초지진, , 고려궁지,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역사/자연사박물관, 강화평화전망대, 화문석문화관, 마니산국민관광지, 함허동천야영장, 갯벌센터 등입니다.

 

이곳 중에서 3~4곳을 함께 결재하면 15% 할인되고, 5개소 이상 관람하면 20% 할인이 됩니다.

 

우리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돈대 등 4곳을 보기 위해서 결재해서 15% 할인을 받았습니다.

관광지에 가서 결재한 표를 보여주면 입장할 수 있습니다.

 

유효기간은 다음날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초지진 입구에 있는 소나무

수령이 400년 된 두 그루의 노송이 있는데 굵은 줄기가 위로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은 모양으로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모양으로 쳐져 아름다운 수형을 가지고 있고 생육상태도 양호합니다.

 

1656년(효종 7) 강화유수 홍중보가 초지진을 설치할 때 초지돈대에 선비의 기상과 지조를 상징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지돈대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 측의 함포공격으로 일부 파괴되었고, 1875년 일본 운요호사건 당시 조선 수비병과 일본군 사이의 포격전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 두 소나무는 격전 중 날아온 포탄으로 상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위 소나무의 중간에 시멘트로 메꿔진 부분이 포탄의 흔적이라고 하네요.

열강의 침입에 맞서 장렬하게 싸운 선조들의 기상을 간직한 채 400년 동안 초지돈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운데 하얀 돌은 당시 포탄에 의해 깨진 돌을 교체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 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해 우리 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세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해 싸웠던 곳입니다.

 

1875년 일본이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해 파견한 운요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습니다.


그 뒤 초지진은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대를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초지진의 초지돈대는 1871년 미군이 6월 10일 2시간 동안 맹렬한 함포사격으로 조선군을 파괴시킨 후 전투없이 입성하였다고 하는데 포격 전의 사진모습과 그리고 포격과 파괴로 폐허가 된 초지돈대 모습, 초지돈대에서 바라본 덕진돈대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초지진으로 들어가는 입구모습

날씨는 포근하나 겨울이라 많은 관광객은 없어서 한가롭게 관람했습니다.

 

초지진 모습

 

건물에는 구경 100mm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영조 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포탄은 폭발의 힘으로 날아가나 포탄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을 약하다고 하네요.

 

초지돈대에서 바라본 초지대교 모습

 

원래 장자평돈대, 섬암돈대, 초지돈대 초지진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초지돈대만 남아있고, 현재의 초지진은 초지진이라기보다는 초지돈대가 맞는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초지돈대의 작은 구멍에서 포탄과 총을 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네요.

 

초지진에서 바라본 강화 평야 모습

 

강화해협 맞은편은 대명포구와 김포함상공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지진은 복원된 규모가 작아 관람 소요시간이 10~20분이면 충분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도 개방정책을 펼치며 국력을 강화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너무 쇄국정책으로 많은 국민들이 죽고 수난의 시절을 보내게 됐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강화도 여행] 덕진진 (덕진돈대, 남장포대)

[강화도 여행] 광성보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강화도 여행] 갑곶돈대 / 강화전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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