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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추사 김정희의 흔적, 추사 유배지

by 휴식같은 친구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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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흔적, 추사 유배지

 

 

가파도에 들렀다가 이동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근방을 지나가는 중에 추사 유배지가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시·서·화 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면서 예술가로 유명합니다.

딸아이의 역사교육을 위해서 부모마음으로 들린 곳이기도 하네요. ㅎㅎ

 

대정읍에 있는 추사유배지는 헌종 6년(1840) 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곳에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까지 약 9년 동안 유배를 떠나온 곳이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자취를 찾아서 추사유배지 이곳저곳을 담았습니다.

 

추사 김정희 동상

 

김정희(1786~1856)는 조선후기 조선 금삭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실학자, 서화가로 활동한 문신입니다.

 

원춘, 추사, 완당, 예당, 시암, 과파, 노과, 노격, 담연재, 승련노인 등 무려 200여 개의 호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요.

예산출신으로 1819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암행어사, 예조, 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을 지냈고, 1930년에 부친의 윤상도의 옥사 배후조정 협의로 고금도에 유배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순조의 배려로 판의금부사,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정을 역임하였고,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10여 년 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다시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귀양이 풀린 후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2년간 함경도 북청에서 유배생활을 하였고,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시기에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부친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추사유배지 주차장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어려서 총명하여 북학파의 일인자인 박제가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연경에 체류하면서 고증학의 초고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금석학과 불교학에 정통하기도 하였고, 예술에 있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 유배할 때 완성한 추사체가  대표적이고, 난을 잘 그리기도 했으며, 세한도, 모질도, 부작란도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추사 유배지는 조선 태종 18년(1418)에 대정현감 유신이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읍성의 터인 대정성지 내에 있습니다.

 

대전성지 성벽의 둘레는 1,614m, 높이는 5.2m로 동문, 서문, 남문 등 세 개의 성문이 있습니다.

 

대정현성 모습

 

대정현성은 1858년까지 성내에는 관아건물 18동이 있었을 만큼 큐모가 컸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대정현성은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파손된 성곽은 대부분 복원되었다고.

 

대정현성 내에는 추사유배지를 비롯해 제주도 민속자료 2호인 돌하르방 12기, 제주 전통 옹기를 재현하는 가마터 등이 온전하게 남아 제주도 기념물 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추사유배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입장마감 17:30)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 설날

관람료 무료

해설시간 10:00, 11:00, 13:00, 14:00, 15:00, 16:00

(B1 안내데스크 신청)

 

추사유배지 앞에 들어선 추사관

2010년에 김정희와 관련한 역사자료가 전시되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임시휴관인 상태입니다.

 

추사유배지 입구

간혹 가다 관람객들이 하나 둘 오는데 비교적 많이 찾지 않는 제주 역사유적지입니다.

 

추사 김정희를 기리는 비석

 

추사 김정희 관련 기록들

 

추사의 수제자인 소치 허련 - 소치는 추사의 서울 집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배웠던 수제자로 초의선사가 소개해 주었는데 3차례 제주도 유배지의 스승을 찾았다고 합니다.

 

소치 허련 하니 생각나는 곳은 진도 운림산방, 소치 허련이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던 곳으로 후손들까지 남화의 맥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진도여행]진도 가볼만한 곳, 운림산방

 

 

 

추사 김정희의 영원한 벗, 초의선사 - 초의는 유배를 간 추사가 있는 제주도에 와서 반년을 함께 지낸 동갑내기 친구였다고 합니다.

세한도를 그리다 - 추사 나이 59세인 1844년에 유배 5년 차에 생애 최고의 명작인 세한도를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하라 - 추사 김정희가 대정향교에 써준 현판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뻗어나간다 - 김만덕의 선행에 대해 듣고 감명을 받아 그의 후손인 김종주에게 '은광연세'라는 편액을 써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추사유배지로 생활했던 공간으로 걸어갑니다.

 

정낭(제주 특유의 정문,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려줌)을 지나면 물방에(연자방아)가 있습니다.

보리와 밀이 주식인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이 집에는 개인 소유였다고 합니다.

 

입구에 있는 안거리 건물

 

외양간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유배지 모습

 

유배 초기에는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이곳 강도순의 집으로 옮겼고요.

이곳에서 살면서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며 제주지방 학문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하다가 1984년에 강도순의 증손이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습니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의 대가인 초의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며 제주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모거리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을 받은 김정희는 이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켰습니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붓 1,000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됐다고 합니다.

 

집주인 강도순이 생활했던 안거리

 

강도순은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강도순네 밭을 지나지 않고서는 마을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다도 모습

 

김정희가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밖거리

 

김정희는 문하생이 많아 3천여 선비가 있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제주에서도 역시 유배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모습

 

안쪽으로 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탈곡하기 전에 농작물을 단으로 묶어 쌓아 두거나 탈곡하고 난 짚을 쌓아 놓는 것을 '눌'이라고 하고, 이를 만드는 행위를 '눌을 눈다'라고 한답니다.

 

물팡과 물허벅

 

물허벅은 식수로 이용할 물을 길을 때 사용하는 도구이고, 물허벅을 올려놓는 곳을 물팡이라고 합니다.

 

 

대정읍을 지나갈 때 잠시 들러서 추사 김정희의 자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도 잠깐 들러 김정희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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