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완도 장보고동상과 청해진 어린이공원
해상왕 장보고(~841)는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어본 우리의 영웅일 것입니다.
해상무역이 발달한 9세기 초 완도에서 태어난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남해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당과 일본의 무역선이 지나가는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통해 신라는 당에서 사 온 물건을 일본에 팔고, 일본인들은 이곳의 배를 이용하여 당에 왕래하기도 했습니다.
1200년 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정복했던 장보고 대사의 해양개척정신과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장보고동상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아울러 장보고동상 앞에는 청해진 어린이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가면 즐거운 나들이 장소가 될 것입니다.
위풍당당 장보고 동상 모습
장보고 동상과 청해진 어린이공원 주차장
맑은 하늘 풍경이 예쁘기만 합니다.
장보고동상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입장마감은 30분 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연휴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주차장에서 바라본 완도농공단지 모습
장보고동상의 2009년에 완공됐는데, 높이는 30.7m, 무게는 52.8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장보고 동상 입구에는 청해진 어린이공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 놀 놀이기구가 많아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듯하네요.
특히 청해진어린이공원에 있는 자가발전 놀이기구가 인기가 많은데요.
자가발전 그네와 자가발전 시소 그리고 자가발전 모노레일 인기가 좋답니다.
놀이기구에 설치된 페달을 밟으면 회전력에 의해 자가발전이 되어 작동하는 놀이기구를 말합니다
딸아이도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가발전 모노레일에 올라타서 한바퀴를 돌아오며 즐거워합니다.
청해진어린이공원은 너무 더워서 곧바로 장보고 동상으로 이동했습니다.
장보고동상에는 장보고 무역선을 형상화한 배 모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배 위에 위풍당당 장군의 모습으로 청해진을 바라보며 호령하는 듯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장보고가 바라보는 쪽에 청해진이 위치하고 있답니다.
장보고 대사 일대기
장보고는 어린시절 완도에서 보내고 당나라로 건너가 강소성 서주에서 무령군중소장으로 활약하다 귀국하여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인물입니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 더 자세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장보고의 어린시절과 당에서의 활약
장보고는 청해(현. 완도)에서 7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궁복, 군파라 기록되어 있다네요.
완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당나라로 건너가 서주의 무령군이라는 군대에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30의 나이에 병사 천여 명을 거느리는 군중소장의 지위까지 오릅니다.
당에서의 활동과 해적들의 양민 납치
장보고는 산동반도 적산포에 적산법화원을 세워 활동을 하면서 재당 신라인 사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구법과 무역 등을 위해 신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을 보았고, 재당 신라인과 함께 예불도 보고 정보도 교환했습니다.
적산법화원은 당시 신라 교민들의 사랑방 기능을 한 곳이네요.
그런데 당나라에 신라인들이 노비로 잡혀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당시 해적에게 잡혀 노비로 팔리는 신라인을 신라노라고 하는데요.
이를 보고 신라로 돌아가 해적을 소탕하여 바닷길을 개척하겠다는 뜻을 품습니다.
흥덕왕 알현과 해적소통 그리고 청해진 설치
장보고는 귀국하여 통일신라의 42대 왕인 흥덕왕을 알현하고 군사 1만을 거느릴 수 있는 청해진 설치를 건의하여 허락을 받고 대사로 임명받습니다.
대사는 일종의 총독으로 청해진 지역의 자치권을 행사하는 우무머리였던 것이죠.
그럼으로써 해적을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청해(완도)다. 비록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하지만 곧 우리 손에 완벽한 해상요새로 바뀌게 될 것이다. 청해진은 도처에 창궐하는 해적들을 없애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며,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라며 청해진을 설치했습니다.
828년(흥덕왕 3) 장보고에 의해 설치된 청해진은 이후 23년 뒤인 851년(문성왕 13)에 폐진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해진 사람들은 강제로 벽골군(현 전북 김제)으로 이주당했다고 하네요.
청해진 설치 후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리는데, 김우징이 왕위(신무왕)에 오르는데 일등공신이 되고,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김양을 비롯한 경주 귀족들은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하였는데 그때가 841년 이랍니다.
장보고 선단은 중국과 일본에도 거점을 확보했고, 청해진은 우리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한-중-일을 잇는 해상무역활동의 본거지였습니다.
중국 남부까지 진출해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역해 이슬람 도자기, 유리제품 등을 신라와 일본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공원 모습
장보고의 해상활동을 한 본거지로는 산동성에 있는 적산법화원을 비롯하여 양자강 하류의 양주, 중국의 영파, 일본의 하카타(홍려관 : 영빈관)가 주요 활동지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적산선원에는 장보고 대사로 추정되는 신라대명신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바다 위의 저 섬이 바로 청해진이 설치되었던 곳인데, 섬 이름은 장도입니다.
파란 하늘에 파란 바다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완도 농공단지 모습
실내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위풍당당한 장보고 동상이 정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른손의 칼은 무인을, 왼손의 교역물품 도록은 상인을 상징한 것으로 이는 군인이자 상인이었던 대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보고 청해진 대사는 우리나라 문명교류사에도 획기적인 족적을 남겼는데요.
중국이 독점하던 청자 생산기술을 이전하여 해남과 강진 일대에 대규모 생산단지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두 번째 청자 생산국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고려청자를 만들게 한 이유입니다.
또한 선종불교가 신라에 전파되었을 당시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는데요.
청자-선종-차로 이어지는 당대 최고의 문명 3종 세트를 유입, 안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완도여행을 가게 되면 장보고의 기상은 받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의 신라처럼 현재의 우리나라가 제2의 장보고가 나와 동북아 패권을 잡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해상왕 장보고와 관련한 곳은 이곳 외에도 장보고 기념관과 청해진이 설치됐던 장도로 이어집니다.
2020/10/07 - [전라도 여행] - 완도 청해진 유적지(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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