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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청해진 유적지(장도)

by 휴식같은 친구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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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청해진 유적지(장도)

 

 

완도에서의 해상왕 장보고는 정말 특별한 위인입니다.

 

장보고 동상이 있는 청해진 어린이공원과 장보고 기념관이 청해진 유적지인 장도 앞에 들어서 있는 등 완도와 장보고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지요.

 

[완도여행] 위풍당당 완도 장보고동상과 청해진어린이공원

완도 가볼만한 곳,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해상왕 장보고가 신라 흥덕왕의 재가를 받아 청해진을 설치함으로써 해적을 소탕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전무후무한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청해진이 설치된 장도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청해진 유적이 있는 장도장보고 동상과 장보고 기념관이 바라보이는 작은 섬입니다.

 

청해진은 9세기 전반 신라의 장보고가 해상권을 장악하고 완도에 설치한 무역 기지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8세기 이후 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신라에서는 울산, 당항성, 영암을 중심으로 국제 무역을 전개하였는데, 이들 항구를 통해 신라의 금은 세공품, 인삼 등이 수출되었고, 당의 산물, 동남아시아와 서역의 물품이 수입되었습니다.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할 것을 흥덕왕에 요청하였습니다.

장보고는 당에서 벼슬을 하다가 신라인의 참상을 보고 귀국하여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한 것이죠.

 

당시 장보고는 청해진 대사로 임명을 했는데, 신라에서는 그런 관식이 없는 별도의 직책이었습니다.

 

청해진은 당과 일본의 무역선이 지나가는 해상 교통의 요지로, 신라는 이곳을 통해 중계 무역을 전개하면서 동방 무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완전한 섬이 되는 장도에는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나 주차료 모두 무료이고, 관람시간은 따로 없습니다.

저녁에 올라가면 야경도 보며 나름 운치가 있겠습니다.

 

나무다리에서 바라보이는 장보고동상

 

완도읍에 있는 완도타워도 보입니다.

 

완도 가볼만한 곳, 완도타워 전망대의 완도야경

 

청해진 유적지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가, 1959년 9월 강력했던 사라호 태풍이 휩쓸면서 1200년간 잠들었던 청해진 유적지를 들추어냅니다.

즉, 청해진 흔적인 목책(원목렬, 잔목렬)의 일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죠.

1984년에 사적 208호로 지정되고, 국가차원의 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그후 1991~1998년에 1차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과 내부 건물지, 굴립지 건물지, 매납유구 등을 확인하였고, 331m에 달하는 해안 원목렬의 분포 범위 확인과 함께 3만 여점이 넘는 많은 유구를 발굴하여 장도가 청해진의 주요 근거지임을 확인합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관련한 해안 출입 겸 접안시설로 e자형 석축석렬 유구와 우물 등 중요 유규들을 발견하여 청해진의 본영이 바로 장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들을 확보하게 되었답니다.

 

장도가 청해진 유적지임을 밝혀준 것은 1959년 사라호 태풍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1200년 만에 드러난 것이 목책입니다.

 

목책은 청해진 유적지의 서쪽 해안에서 시작하여 입구까지 331m 길이로 갯벌 속에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목책의 수종은 대부분 소나무이고, 폭 80cm, 깊이 90cm 규모로 동서방향으로 긴 도랑을 만든 후 1열로 통나무를 촘촘히 세워 조성한 것입니다.

목책은 방어용이었거나 접안시설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탄소연대 역시 장보고 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짠물인 바닷속에 오래 있어 1200년 동안 보존된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청해진에서 바라본 장보고 기념관 모습

 

완도 가볼만한 곳,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그리고 위풍당당 장보고 동상도 정면으로 바라 보입니다.

 

[완도여행] 위풍당당 완도 장보고동상과 청해진어린이공원

 

완도타워 모습

 

청해진 우물

 

신라시대의 경주지역의 우물과 비교해도 규모가 상당하다고 하는데요.

성 내부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선박과 외부의 식.용수를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물은 5.8미터의 깊이로 주름무늬병과 철제편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청해진 섬 입구에 있는 외성문은 날렵한 팔작지붕 형태입니다.

성의 입구이자 방어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청해진 유적지는 공원처럼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습니다.

 

이날 더운 날씨에 관람객은 오직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블로거의 사명감(?)으로 땡볕에도 불구하고 잠시 다녀온 것이네요. ㅎㅎ

 

청해진은 판축기법으로 성이 만들어진 곳인데요.

판축이란 흙으로 기초성벽을 쌓는 방법을 말합니다.

 

 

판자로 틀을 만들어 가운데 흙이나 모래를 번갈아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쌓는 것이죠.

청해진 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890m를 만들었고, 성벽은 양쪽에 기단돌을 깔고, 그 안쪽으로 흙과 모래를 다져 쌓은 판축토성입니다.

 

내성문으로 올라서 바라본 외성문 모습

 

두 번째로 있는 건물은 내성문으로 외성문과 함께 성 내부로 통하는 출입문과 방어역할을 하였습니다.

 

위쪽에 있는 건물은 세 번째로 복원된 고대입니다.

 

더워서 여기까지만 갔다가 그만 내려왔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은 것은 그만큼 적이 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완도 대야리 마을 모습

 

청해진은 828년(흥덕왕 3)에 설치되었고, 23년 후인 851년(문성왕 8)에 폐진 되었는데요.

당시 청해진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로 벽골군(현 전북 김제)으로 이주당했다고 합니다.

 

장보고는 841년에 신라 왕실의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려 암살을 당했는데요.

결국 청해진은 장보고의 운명과 함께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청해진 유적지인 장도는 섬이 작아 30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습니다.
선선해질 때 찾으면 사방 전망이 훌륭해서 산책하듯 다녀오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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