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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완도 가볼만한 곳,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by 휴식같은 친구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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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가볼만한 곳,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완도는 장보고 유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해상왕 장보고는 완도에서 태어나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장악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입니다.

 

장보고 유적지장보고 동상을 비롯하여, 장보고 기념관 그리고 청해진입니다.

장보고 동상을 관람하고 기념관에 와서 해상왕 장보고에 대한 일대기를 관람했습니다.

 

[완도여행] 위풍당당 완도 장보고동상과 청해진어린이공원

 

 

장보고 기념관은 1200년 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고 고취시키기 위해 청해진 앞에 2008년에 개관한 곳입니다.

 

완도 장보고전시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입장마감은 30분 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연휴

관람료(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및 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완도군 주요관광지 입장권이나 축제 티켓이 있으면 20% 할인)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우리는 옆에 있는 완도 해양생태전시관을 방문하고 와서 20% 할인받아 입장했습니다.

 

[완도 전시관] 완도 해양생태전시관

 

장보고 공원 모습

 

청해진유적 입구에 위치한 장보고공원은 4,500여 평의 면적에 완도군의 265개의 섬에서 채집된 기묘한 수석 200여 점이 상록활엽수와 어우러져 전시되어 있습니다.

 

공원 내에는 수석 이외에 장보고 기념관, 관광정보센터, 장보고대사의 흉상, 와이즈맨이 설치한 기념탑, 소나무·동백나무 군락지, 잔디광장, 화장실 등 관광/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공원입니다.

 

장보고 기념관의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건물외벽은 완도 앞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와 갯벌을 형상화하여 역동적인 청해진의 기상과 장보고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꾸몄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담을 쌓아 청해진 성을 표현했고, 정문진입로의 원목렬은 청해진의 목책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장보고 기념관 로비에 세워져 있는 장보고 무역선

(전장 31.6m, 선폭 7.8m, 선심 3.2m, 무게 200여톤 - 1/4로 제작)

 

 

장보고 무역선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선과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에서 출토된 11세기 고려 배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배와 문헌을 통해 신라시대 배로 추정하였고,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한 것이라고 하네요.

 

무역선은 13개의 격실을 갖춘 수밀격벽 구조이며, 첨원저형 형태의 배입니다.

순풍은 물론 역풍에도 능히 헤쳐나갈 뛰어난 조선술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해상왕 장보고의 목조벽화인데요.

 

1200여 년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 대사의 무역활동을 형상화한 벽화입니다.

완도 청해진 유적에서 바라본 상황봉 일대의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진 것인데, 중국공예미술대사 육광정의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8,000여 만원의 가치였는데, 지금은 3억원을 넘어간다고 합니다. ㅎㅎ

 

1층 기획전시실은 장보고 한상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는데요.

 

장보고 한상은 장보고 대사의 글로벌 개척정신울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재외동포 경제인(한상) 가운데 모국의 경제 및 문화영토를 확장하는데 이바지한 경영인에게 주는 상을 말합니다.

 

사단법인 장보고글로벌재단에서 이 상을 만들어 오늘의 장보고로 예우해주는 명예로운 상입니다.

 

장보고의 청해진은 통일신라 42대 왕인 흥덕왕이 허가를 해줘 설치가 되었습니다.

 

흥덕왕릉비에는 '무역지인간'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무역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장보고대사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왕릉에 업적이 뛰어난 사람의 흔적이 들어가 있는 자체가 정말 엄청난 업적을 세워야 가능하겠죠?

 

역대 장보고 한상 수상자

 

1층 영상실에서 장보고에 대한 영상을 보고 전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중국은 장보고와 동시대의 당나라 유명 문장가인 두목의 '번천문집'에 자세히 실려있고, 중국 정사인 '신당서'에 두목의 기록을 인용해 싣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일본후기', '속일본기',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해 여러 문헌에 소개되고 있다네요.

 

이렇듯 한중일 3국의 정사에 실린 인물은 장보고 외에 그 누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2층에서 찍은 로비에 있는 장보고 범선과 목조벽화

 

상설전시실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서"

 

상설전시는 뿌리, 생성, 제국, 항해 등 4개의 존으로 분류하여 장보고의 삶과 동북아 해상무역활동, 해양 개척정신과 그 정신을 계승하여 21세기 신해양시대 개척의지를 지향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1전시실

 

갈대를 상징하는 LED 조명을 헤치면서 1200여년 전 장보고 대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전시실입니다.

완도 개요, 장좌리와 죽청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장보고의 유적, 법화사지, 장도 청해진 유적, 문헌 속 장보고, 장보고 대사의 인적, 지역적 내트워크라는 주제로 연출되어 있습니다.

 

죽청리 유적

죽청리에는 지금도 장보고와 관련된 지명과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법화사지 제2 건물지 발굴현장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들

 

완도 법화사지는 청해진 세력과 무역상인들, 당나라로 가는 구법 승려들의 기도처이자 휴식처라고 합니다.

 

중국 적산법화원은 820년대 초 장보고가 적산포에 세운 사원으로 연강 5백석의 곡식을 수확하는 장전을 소유하였고, 승려 24명 등 29명이 상주한 곳이었다고.

법화원은 산동성 무역의 거점이었고, 재당 신라인의 집회소, 정보수집센터로 결속력과 연대의식을 다지는 역할을 한 곳입니다.

또한 신라와 일본에서 온 구법 선승들의 기도처로 동북아 3국이 넘나드는 공동체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법화사지는 9세기 초 장보고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종교적 기능 외에도 긴 여정의 바닷길 항해에 나선 무역상인들의 안정을 꾀하고 휴식을 취하는 거처였다고 합니다.

 

천혜요새였던 청해진이 설치되었던 장도

원목렬과 잔목렬, ㄷ자형 판촉유구, 18겹 판축토성

 

청해진 우물

 

신라시대의 경주지역의 우물과 비교해도 규모가 상당하다고 하는데요.

성 내부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선박과 외부의 식.용수를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복원된 청해진 모습(장도)

 

완도 청해진 유적지(장도)

 

매납유구라 하여 제사 용기를 묻은 유적지라고 합니다.

 

장보고 전시관 제2 전시실은 바닷길을 열다

 

장보고와 해상 실크로드, 장보고 선단의 무역활동 등을 주제로 중국과 일본에서의 활동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장보고 선단의 바닷길

동중국해를 건너 인도양으로 향하는 바닷길과 북중국 대륙으로 가는 바닷길

그리고 일본은 큐슈의 하카타가 장보고 선단의 무역활동 중심지였습니다.

 

장보고 선단의 활동 모습

 

흥덕왕과 정목왕후

 

영자강 하류 양주는 대운하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고대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는데, 신라인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동남아시아의 여러나라와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항해하던 이슬람 상인의 최종 기착지이기도 했습니다.

장보고 선단의 교역활동으로 해상 실크로드는 이곳에서 한반도와 일본까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관문, 하카타

다자이후는 고대 한국과 중국과의 교섭을 관장하던 국가기관으로 신라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일본에 오면 가장 먼저 일을 보던 곳입니다.

 

적산선원은 엔닌스님의 유언에 따라 제자들이 세운 선원으로 이곳에 장보고 대사로 추정되는 신라대명신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재당 신라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적산법화원 모습

 

820년대 초 장보고 대사가 세운 사찰로 당시의 국제무역항이었던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 전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보고 선단의 활동 중심지로 산동성 일대에 살던 재당 신라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당나라로 유학온 신라와 일본 승려들의 안식처 및 문화교류의 장이었습니다.

 

현재 적산법화원에는 장보고 대사 동상에 세워져 있답니다.

 

영파는 고대부터 중국의 중요 국제무역항으로 장보고 선단의 주요 교역물자인 '월주요청자'가 이곳에서 생산되었는데, 장보고 대사에 의해 그 기술이 강진과 해남에 전수되어 훗날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어 세계 최고수준의 비색청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해상왕이 고려청자를 만들어내게 된 원동력이 되었네요. 대단~~~ 

 

장보고의 어릴적부터의 활동을 담은 청동상

 

발굴 전 청해진 모습

1959년 강력했던 사라호 태풍이 1200년간 잠들었던 청해진을 깨우는 효과가 있었답니다.

청해진 흔적인 목책(원목렬, 잔목렬)의 일부가 세상에 드러나자 1984년 사적 208호로 지정되고, 국가차원의 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토성을 보수하고 조경, 탐방로 조성, 유구 복원, 매단 석축정비, 사당 복원, 외성문 복원, 내성문 복원, 고대 복원, 우물 정비, 굴립주 정비, 안내판 설치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위풍당당 장보고 동상처럼 장보고기념관을 둘러보니 민족적 자긍심이 솟구치는 느낌이 듭니다.

9세기 동북아 패권을 장악한 것처럼 이제 우리가 동북아 패권을 장악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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