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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권 여행

양천구 목동 도심 속 사찰, 용왕산 본각사 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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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목동 도심 속 사찰, 용왕산 본각사 풍경

 

 

코로나로 집에만 있기 답답해 산책을 다녀온 양천구 목동의 용왕산 근린공원과 용왕정.

 

[양천구 목동] 용왕산 근린공원과 용왕정 산책

 

 

갈 때에는 목동 아파트 쪽으로 갔지만, 내려올 때에는 반대쪽인 본각사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잠시 용왕산에 있는 도심 속 사찰인 용왕산 각사 풍경을 담았습니다.

 

서울 도심속에 있는 사찰 중에 대표적인 곳은 강남 삼성동 봉은사와 종로 조계사가 있는데, 목동에도 이런 도심 속 사찰이 있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강서구 염창동인 염창리의 소금창고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안녕을 기원하며 만들어진 작은 암자, 본각사 이야기입니다.  

 

본각사는 양천구 목동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바로 옆이 용왕산 근린공원이 있고, 앞으로는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나는 합수부가 있습니다.

또한 용왕산 앞에는 거대한 목동 아파트 단지가 있죠.

 

본각사 주차장 입구에 있는 용왕각

그 옆으로는 최근에 조성한 폭포도 있습니다.

 

최초 용왕각의 건립 시기는 특정할 수 없는 상태.

조선시대 이름난 약수터에 초기 용왕각이 있었다는 사실만 설화처럼 내려올 뿐입니다.

 

 

현재의 용왕각은 2020년에 지어진 것이라 합니다.

약수의 기능은 잃었지만, 현재까지도 엄청난 양의 많은 물을 내뿜고 있다는 의미로 용왕각 옆은 폭포를 조성해 놓은 상태입니다.

 

내부에는 용왕님이 앉아 계시네요.

아마도 용왕산의 전설을 옮겨 놓은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용왕산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죽어서 왕으로 환생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설에 따라 용왕산, 왕령산, 왕재산 등의 '왕' 자가 포함된 이름으로 부르다가 현재는 용왕산으로 통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용왕산 본각사 대웅전인 대웅보전 모습

 

본각사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인근 양천현 염창리의 소금창고 노동자들이 용왕산의 약수를 찾아 물을 마시고, 병을 치료하였다는 이야기가 구전될 뿐입니다.

 

 

본각사는 처음에 염창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사찰이라기보다 인근 소금창고 노동자들의 안식처로 먼저 출발한 것이었죠.

염창절은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과 염전 노동자들이 침식을 하면서 무사고 기도를 올리던 곳으로 보이는데요.

인근의 서민들에게 공양을 제공하며 함께 기도를 올리던 곳입니다.

 

염창절은 후에 암자로 출발해 용왕사, 영전사, 본각사로 사찰의 이름이 변하여 왔다고 전해집니다.

 

본각사 칠층 석탑


본각사가 위치한 양천구 목동 주민들의 입에 의하면 과거부터 이곳의 약수가 유명해 조선조 세조가 피부병의 치료를 위해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세조는 피부병을 낫기 위해 전국을 다 찾아 헤매던 기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의 개발에 따라 도심지 가운데 있어 약수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은 물론 먼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름난 물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절의 입구에 있던 공덕비에는 1969년 범종각을 신축하면서 재일교포의 시주를 기리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곳에 영전사라는 사찰명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영전사에서 본각사로 바뀐 시기는 1982년입니다.

 

본각사가 창건된 것은 오래전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그 기록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본각사 대웅전 부처님 모습

 

부자동네 목동 중심에 있어서인지 법당 내부가 상당히 넓습니다.

 

대웅전 옆엔 석조여래입상과 삼성각이 있습니다.

 

본각사 석조여래입상

 

본각사 삼성각

 

본각사에는 보물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묘법연화경 권5-7(보물 제1147-3호)

 

성종 원년(1470) 정희태왕대비의 발원으로 판각한 왕실판본인데요.

판각의 솜씨와 인출의 상태가 당대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조선 전기 왕실판본 사례로서 간행시기와 동기가 분명하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고, 전래되는 같은 초인본이 극히 희소하다고 합니다.

특히 왕실판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여겨져 국가문화재 보물 제1147-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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