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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여주박물관, 여강에 새긴 역사

by 휴식같은 친구 2021.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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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박물관, 여강에 새긴 역사

 

 

여주여행을 가면 꼭 들리는 곳은 보물들의 보고, 신륵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륵사로 가던 중 여주박물관이 눈에 들어와 들렀습니다.

 

1997년 여주군 향토사료관으로 문을 연 여주박물관은 여주의 역사와 문화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인데요.

여주지역 출토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서 볼 수 있고, 여주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를 수 있는 곳입니다.

 

지역 여행을 하면서 박물관에 들리면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며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주박물관에 들러 가볍게 여주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면 어떨까 싶네요.

 

여주박물관은 신륵사 입구로 들어서면 큰 건물로 자리하고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주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1~2월 09:00~17:00, 3~10월 09:00~18:00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

 

여주박물관의 전시공간은 상설전시관인 황마관기획전시실인 여마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외에 야외전시장과 전통놀이체험장 등이 있습니다.

 

각 전시관의 명칭은 남한강변 영월루 아래 기암절벽인 마암에서 황마(누런말)와 여마(검은말)가 승천하였다는 여주의 옛 지명(황려현)의 유래를 반영한 명칭입니다.

 

황마관으로 들어가서 발열체크, 방문기록을 남기면 무료입장권을 줍니다.

여마관까지 둘러보기 위해선 입장권을 소지하여야 합니다.

 

황마관 로비에 있는 우리나라 보물 6호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이 있습니다.

층높이는 508cm, 비신 높이는 291cm입니다.

 

 

고려 초 국사 원종대사 찬유(869~958)를 기리기 위해 975년(광종 26)에 세운 탑비의 비신입니다.

이 비신은 1915년 봄에 무너져 여덟 조각으로 깨져 국립 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2016년 여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고달사지 현장에는 귀부 위에 이수가 얹힌 형태로 있었으나 2010년부터 원종대사탑비 비신 복제 및 탑비 복원공사를 추진하여 2014년 8월에 준공했다고 합니다. 

 

보물 6호로 지정된 이 탑비의 귀부와 이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형상을 자랑하며, 비문에는 원종대사 탄생과 출가, 당나라 유학과정, 귀국 후 국사로 책봉되어 입적한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달사지와 원종대사탑비, 고달사지 문화재와 옛 풍경, 원종대사탑비 내용, 탑비의 구조와 명칭 그리고 용생구자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주박물관 황마관 1층 로비 모습

 

2층에 전시실이 있습니다.

먼저, 여주 역사실입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 고달사지, 파사성, 신륵사,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명성황후 생가 등 많은 문화유적에서 출토되거나 관련 있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1872년의 지방지도인 여주목지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조선의 국방을 강화하고 사회,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지도라고 합니다.

여주시 대부분과 양평군 개군면이 여주에 속했으며, 남한강을 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주의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의 역사

고대엔 백제의 영토로 시작하여 고구려, 신라라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여주의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여주 선사유적

여주 흔암리(청동기시대)와 연양리(구석기시대) 선사유적 

 

여주하면 가마터로도 유명합니다.

중암리 고려백자 가마터와 퇴적층의 고려백자 등 천년의 도자역사

 

고려 초 대규모 지방사찰이었던 원향사

중부내륙고속도로 공사 중 확인한 유적이라고 하네요.

 

원향사는 8세기 중엽에 만들어졌고, 10세기 후반에 확장하고, 12세기 중엽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려 3대 선종사찰이었던 고달사도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봤던 보물 6호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이 나왔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고달사지엔 고달사지 승탑(국보 4호), 원종대사탑비(보물 6호), 원종대사탑(보물 7호), 석조대좌(보물 8호), 고달사지 석조(경기 유형문화재 247호)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문화재가 즐비하던 곳입니다.

 

8세기에 원감화상 현욱이 주석했고, 18세기 말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의 영릉

북벌의 정신, 효종대왕의 영릉

 

세종대왕릉의 영릉과 효종대왕릉의 영릉, 여주 영녕릉

 

명당선정과 왕릉조성 모습

 

여주는 역대 임금의 왕비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포함해 11명의 왕비와 빈을 배출한 고장으로, 조선왕비는 8명입니다.

 

여주 가볼만한 곳, 명성황후 생가

 

조선 왕비의 삶

 

여주 출신의 왕비

 

고려시대의 순경태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태종의 비 원경왕후,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순조의 비 순원왕후, 헌종의 비 효현왕후, 철종의 비 철인왕후, 고종의 황후 명성왕후, 순종의 황후 순명효황후 등입니다.

 

여강 예찬

 

나라의 길, 여강은 남한강을 부르던 엣 명칭입니다.

중부내륙과 한양을 연결하는 수송로로 조선시대엔 영남지방과도 연결되는 교통로의 주축이었습니다.

 

 

여주에는 삼국시대에 이용하던 나루 1곳, 고려시대 4곳, 조선시대 13곳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주 금은모래 캠핑장과 황포돛배 유람선, 금은모래 강변공원 풍경

 

이포나루는 삼국시대부터 금사면 이포리와 천서리를 연결하던 나루터입니다.

조선시대 4대 나루터에 속했으며, 관에서 운영하는 진강도가 설치되었던 곳입니다.

 

근대시기엔 여주 역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여한 조성환이랑 국무위원이 여주출신이라고 합니다.

 

여주의 산업 - 쌀, 도자산업, 잠업

교통의 중심 여주

 

황마관 전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야마관이 나옵니다.

 

야외 전시장엔 류주현 문학비가 세워져 있네요.

류주현은 우리나라에 대하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작가입니다.

 

여마관 기획전시실에선 '100년 전 여주의 문화재를 만나다'라는 주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871년 영국의 사진사 겸 내과의였던 매독스에 의해 발명된 유리건판 사진은 1883년 일본에 소개되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었습니다.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촬영된 유리건판은 일제가 우리나라 전역과 만두 증지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리건판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한 조사사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날 연구하는 사람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고달사의 유리건판

 

여주지역에서 촬영한 유리건판은 통 177장으로 대판 9장, 중판 7장, 소판 161장입니다.

대판과 중판은 고달사와 신륵사에서만 촬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신륵사 유리건판

 

여주 가볼만한 곳, 신륵사

 

세종대왕의 영릉과 효종대왕의 영릉의 유리건판 사진

 

묵사 류주현 문학전시실도 있습니다.

 

류주현은 여주출신의 소설가로 '대원군'을 조선일보에 연재했고, '조선총독부'로 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부문 본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도도한 장강의 문학과 일생

 

한국문학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온 대하 역사소설의 대장정

 

삶, 문학, 그리고 예술

 

문인과의 교류

 

묵사 류주현 선생 집필실

 

지하에는 남한강 수석전시실이 있습니다.

남한강은 수석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라고 하네요.

 

수석전시실엔 운암 김정식 선생이 57년간 수집한 애장품을 여주시에 기증하면서 전시를 하고 있네요.

 

수석의 종류들인 모양입니다.

재물석, 애정석, 화목석, 합격석 등

 

산수경석, 물형석, 추상석, 12지석 등 자연이 빚은 수석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여주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할만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신륵사 가는 길에 잠시 들러서 구경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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