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역사관 in 돈의문 박물관마을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들렀는데요.
볼거리가 많아서 박물관마을에 있는 돈의문 역사관은 별도로 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돈의문 역사관은 새문안 동네의 식당으로 운영되던 건물을 활용해 새롭게 조성한 돈의문 전시관입니다.
1960년대 가정집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Agio)와 한정식집인 한정으로 운영되었던 곳이죠.
건물들이 가진 건축적 공간질서를 존중하며 보강공사를 통해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돈의문 역사관 이야기입니다.
돈의문 역사관/돈의문 전시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19:00
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공휴일 정상운영)
관람요금 무료
주차장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이용
돈의문 역사관은 식당이었던 아지오 1, 2층, 한정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지오 1층은 조선시대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개항 이후의 역사를 담고 있고, 2층은 교남동과 세문안 동네의 기록과 기억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정 1층은 새문안 동네 도시재생과 사진갤러리, 2층엔 새문안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돈의문 역사관 주위의 돈의문 박물관마을 모습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입니다.
1396년(태조 5) 한양도성이 1차 완공되었을 때 ‘의를 두텁게 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돈의문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ㅇ이후 1413년(태종 13) 풍수를 이유로 문을 닫은 뒤, 1422년(세종 4) 현재의 ‘돈의문 터’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신문 또는 새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으며, 돈의문을 지나는 도로는 신문로 또는 새문안로라 불리고, 그 안쪽 동네는 자연스레 새문안 동네로 불렸습니다.
2003년 새문안 동네를 포함하여 교남동 일대가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3년 성 밖 교남동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새문안 동네 역시 근린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전면 철거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옛 도시조직을 모두 지워버리는 전면철거 대신 도시재생의 방법을 선택하였고, 골목을 따라 건물을 비우거나 혹은 보강하면서 도시의 오래된 층위와 풍경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7년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다시 태어났네요.
서울역사박물관은 2009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일환으로 이 지역의 역사와 도시공간과 주거를 조사하여 돈의문 뉴타운 조사보고서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과 '도시민의 삶과 주거' 2권의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철거가 진행될 때는 현장에 나가 도시한옥의 주춧돌, 식당의 메뉴판과 그릇, 문패 등 동네의 이력을 담고 있는 사물 총 181건 526점을 수집하였습니다.
더하여 2013년 5월부터 민간연구모임의 교남동 일대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서울시는 새문안 동네의 건물을 실측하고 주민을 인터뷰하는 등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의 변화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결과물로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에서 총 307동의 건물에 대한 310장의 현장 기록 도면과 15,000여 장의 현장 기록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과 성과가 모여 돈의문역사관이 개관하였습니다.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곳이 도시재생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 건축물은 어디서나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옛것을 허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둘러보니 너무 잘 만들었고,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무척 많아서 좋았습니다.
경희궁 이야기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소실되어 광해군은 무너진 국가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구하고, 인경궁과 정원군 집터에 경덕궁을 짓게 하여 경희궁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광해군 본인은 인조반정으로 경덕궁에 살아보지도 못하고 쫓겨나고 현종대까지 창덕궁의 수리기간에 잠시 머무는 궁궐로만 남아있었습니다.
숙종은 경덕궁 이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영조는 경덕궁을 경희궁으로 고치고 19년이나 머물르며 경희궁에서 태어난 숙종에서 숭정전에서 즉위한 정조대까지 최전성기를 맞이했었습니다.
쇠당나귀 전차가 드나들던 돈의문
1898년 고종은 한성전기회사를 만들어 돈의문~청량리 구간을 운행하다가 1901년에 남대문~용산~돈의문~마포에 이르는 노선이 추가되어 운행했다고 합니다.
이때 돈의문을 통과하게 되었고, 성문을 여닫는 제도도 사라졌다고 하네요.
사리진 돈의문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된 직후 한양도성을 철거하기 위한 성벽처리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도성 안팎을 왕래하는 교통이 빈번해진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궁극적으로 일본 태자의 방문을 앞두고 경비와 위생상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1914년에 소의문, 1915년에 돈의문을 헐고 단돈 205원(쌀 17가마)에 경매로 팔아버렸다고 합니다.
새문안 일대의 변화
1896년 경기감영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감영 건물은 한성부청사, 고양군청, 경성감옥, 태평동 출장소로 사용했고, 1923년 일본적십자사가 상설 진료소를 설치하며 서울적십자사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안티푸라민을 만들어 팔던 유일한의 유한양행도 1932년 정세권으로부터 새문안 동네 일부를 매입하여 사옥을 신축해 1962년 대방동 이전까지 사용했고요.
'홍도야 우지마라'로 알려진 연극을 공연했던 동양극장은 1935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극장으로 해방 이후에 영화관으로 사용되고 1976년에 폐관된 후 문화일보사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38년 금광업자 최창학이 죽첨장이라는 저택을 지었고, 해방 후 김구 선생이 환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한 경교장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시한옥의 건축가 정세권은 북촌 가회동, 익선동 한옥마을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새문안 동네 개발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1931년부터 작은 필지로 나누어 도시한옥들이 생기고, 이전에 없던 골목들도 생겼다고 합니다.
경희궁 궁장
유적전시실은 조선시대 경희궁 궁장과 근대 건물지의 흔적들을 원형 그대로 현장을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희궁은 경복궁 중건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경희궁 궁장의 길이는 1.8km에 이르는데 현재는 200m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경희궁 남쪽에서 궁장 유구가 발견되어 이곳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희궁 궁장의 발견으로 경희궁과 경희궁 밖 마을 사이의 경계를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돈의문 주변 역사유적지
경교장, 월암바위, 홍난파 가옥, 딜쿠샤, 권율 집터, 캠밸 사택, 사직단, 단군성전, 베델 집터, 황학정 등
돈의문역사관 창문을 총통해 보이는 경희궁지
아지오 2층은 돈의문이 있었던 지역,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의 기록과 기억이란 주제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홍파동 골목모형으로 이제는 볼 수 없는 골목을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도가니탕으로 유명했다는 대성집, 자전거포 한옥, 미용실, 할머니집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남동과 새문안동네 도시형태 변화 모습
새문안 동네
서대문여관, 안동회관, LP BAR, 서대문 의수족 보조기, 아지호, 한옥식당 골목, 풍미추어탕, 현대제철(구 유한양행) 등
새문안 동네의 변화
1960년대부터 주택가에는 주위의 명문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과외방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과외금지법 시행과 강남으로의 명문고 이전으로 사라지게 될 때까지의 30년간 서울의 대표적인 사교육 중심지였던 셈입니다.
과외방이 사라지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주변에 회사와 관공서들이 들어서면서 식당이 많아졌습니다.
이후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2014년에는 대부분 이주비를 받고 떠나고 돈의문박물관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새문안 동네 지도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 과외방 밀집지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전의 새문안 동네 모습 사진
오지오에서 한정으로 이동하면 2층에 새문안 동네사람들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진갤러리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1층에는 마을 반상회코너도 있습니다.
새문안 동네 사진갤러리
돈의문역사관을 모두 관람하고 나오니 야외에 화장실 유구가 있습니다.
2016년 발굴조사 당시 이곳에서 근대 건물지 1동이 발견됐는데, 그 건물지에서는 온돌시설과 아궁이 등이 있었고 화장실 관련 도기호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화장실은 살림집과 떨어져 있었지만, 현대로 오면서 집안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땅 속에 붙었던 독을 통해 이젠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돈의문역사관은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장소,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저장하는 현장 박물관입니다.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렇게 돈의문박물관마을과 돈의문역사관으로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앞으로 100년, 200년이 흐르면 어떻게 뱐해 잇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추억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하면 좋은 곳이니 한 번 들러보시기를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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