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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문래창작촌, 문래철강골목 저녁 산책

by 휴식같은 친구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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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 문래철강골목 저녁 산책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더위도 문제지만 7월 들어 새로운 거리두기 2단계가 되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고 8인까지 모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폭증하는 코로나 확진자에 놀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2주간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하는 특단을 단행했습니다.

끝날 듯하면서 끝나지 않다가 결국은 4차 대유행이 오고 말았네요.
회사도 띄엄띄엄 나가던 것이 이제 2주 동안 완전 재택근무로 바뀌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전에 집에만 있기 답답해 문래창작촌까지 걸어서 저녁 산책을 하고 왔습니다.

코로나 4단계가 실시된다는 보도에도  예전보다는 거리의 인파가 줄어들긴 했지만, 작년 팬데믹이 왔을 때에 비해서는 훨씬 활기찬(?) 분위기입니다.ㅎ

문래창작촌을 산책하면서 공장 사이에 있는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들, 문래철강골목 풍경을 담았습니다.

 

당산로 문래공원 맞은편 문래창작촌 입구에 있는 용접마스크 조형물입니다.

 

 

문래동1930년대 군소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계옥정이라 불렀고,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문래동이란 지명은 글(文)이 왔다(來)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실을 잣는 물레에서 변형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문래동 일대에 방적회사들이 많아서 그리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

 

문래창작촌 입구 맞은편에는 문래근린공원이 있습니다.

문래근린공원 봄풍경 및 주차장 안내

 

문래근린공원에는 과거에 방적공장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조형물인 대형 물레가 있는데요
타임스퀘어 자리에서 공장을 운영했던 (주)경방에서 기증하여 설치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래창작촌 도로 풍경
좌우로 철강소들이 밀집해 있고, 사이사이에 카페나 예술공간, 레스토랑과 주점들이 입점해 있습니다.

 

방적공장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1960년대에 소규모 철공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다양한 기계부품을 생산하며 호황기를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밀려드는 저렴한 중국산 부품이 들어오면서 설자리를 잃어 하나 둘 문을 닫는 철공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서울시가 철강판매상가를 외곽으로 옮기면서 더욱 비는 공장들이 늘어났습니다.

 

문래창작촌 입구에 있는 대왕 곱창구이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근처 지나갈 때마다 항상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을 보면 맛집인가 봅니다.

 

 

하나 둘 철공소들이 떠나자 쇳가루만 남기고 차갑게 변해버린 철공소 지역이 다시 활기를 띈 것은 2000년대 초반.
작업공간이 필요했던 예술인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들어오면서 철공소에 둥지를 틀게 된 것입니다.

공장의 위층이나 다락, 지하공간이 많아서 노후화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저렴한 임차료가 그들을 유혹했던 모양입니다.
주로 대학로나 홍대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비싼 임대료로 이곳에 흘러 들어온 것이라고 하네요.

대략 문래창작촌에 둥지를 튼 예술가 및 창작가들은 250여 명, 창작공간은 100여개가 되는 모양입니다.
낮에는 철공소들의 쇳소리가 들리고, 밤에 창작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생활시간이 분리된다는 점에서도 메리트가 있다고 합니다.

 

스멜팅 커피와 치킨홀릭

예술인들이 하나 둘 찾아들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자 예술인들의 공방과 오래된 철공소의 색다른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철강소 앞에서 포즈를 잡으며 SNS 핫플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찾는 곳엔 어김없이 멋스러운 카페와 감성주점, 레트로 주점, 맛있는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게 마련이죠.
2년 전에 방문하고 자세히 들여다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때에 비해 카페나 식상, 주점들이 2배 이상은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문래동 가볼만한 곳, 문래동 문래창작촌 나들이

 

창작카페 클라쓰

 

입간판에 적힌 내용이 철공소가 있는 공장 건물 4층에 있음을 재치있게 적었네요.
'믿기 어렵겠지만 4층에 카페 있어요'

 

와인가게인 와인 도깨비

 

문래동 철공소 밀집지역에 작업실을 가지게 된 예술인들 수는 점차 늘어났고,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등 장르도 다양해졌다고 합니다.

 

2003년부터 문래창작촌이 형성되었는데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문화기획, 전통예술,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활동가들도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었습니다.

 

이 골목은 업소들이 들어서서 분위기가 있어 보이지만 다른 철공소 골목은 스릴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으슥한 골목들로 이어집니다.
낮에 방문하면 낯선 금속냄새가 코끝을 때리고 쇳소리가 귀에 울리는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예술인들은 매일 이곳에서 예술의 혼을 불태우고 있을 것입니다.

 

신성샤링이라고 적힌 곳 옆엔 감성주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래창작촌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영등포교회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그레이트 캠프

낮에 방문하면 초라해 보이기만 한 예술공간들을 볼 수 있는데, 밤이라 감성주점과 카페 등만 보입니다.
돈 없이 시작한 예술공간들은 별다른 치장 없이 옛날 철공소 공간에 최소한의 시설만 하고 누추한 인테리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으스스한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데 에술공간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이곳에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느낄 정도의 모습으로...

 

철공소 옆 팝콘(POPCON)

 

아직도 문래동에는 많은 소규모 철공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문래동은 일제강점기에 계획된 도시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일제는 문래동에 식민통치를 위해 주요 시설을 세웠고, 1941년 7월 전국 17개 지역에 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조선주택영단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문래철강골목

조선주택영단의 첫 사업이 문래동(당시 도림정)이었고, 한꺼번에 200채가 지어졌다고 하여 '이백채 마을'이라 불리기도 했다네요.
주택단지는 계획적으로 지어져 갑(20평), 을(15평), 병(10평), 정(8평), 무(5평) 등 5개 단위로 나뉘었는데, 갑과 을은 일본인 관리들 집이었고 나머지 병정무 주택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임대를 줬다고 합니다.
문래동의 영단주택단지 최초의 근대식 집합주택단지였던 곳입니다.

 

 

영단주택단지는 해방 후 가정집이나 철제상으로 쓰이다가 소규모 제조업체가 이전해 오면서 현재의 문래철강골목이 된 것입니다.

 

문래동사거리에 있는 깡통으로 만든 인형
조형물을 보면 그곳이 문래 철강골목이란 걸 알려주는 듯합니다.

 

문래창작촌은 도림로 길 건너까지 이어집니다.
문래공원 교차로 길 건너에 문래기계금속지구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돼지꼬리구이전문점인 돈꼬불

 

철강소가 있는 골목이지만, 이제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골목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입니다.

 

더워리어커피로스터스랩이 있는 골목

 

좁은 골목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있어 가게들 구경하면서 걷는 재미도 있습니다.
밤이지만 사진 찍으러 나온 분들도 제법 보입니다.

 

다플라스틱 클라이밍
간단하게 실내 클라이밍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브런치를 판매하는 봉(Bong)

 

디크래프트(D.Craft)와 디펍(D.Pub)
수제버거와 생맥주 맛집인가 봅니다.

 

한옥건물의 감성주점

 

분위기 좋아 보이는 와인바 & 맥주펍인 바바리움

 

문래창작촌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올드문래
카페와 펍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문래동 골뱅이


문래동창작촌은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상업시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고, 임차료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스러운 상황까지 왔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은가 봅니다.

여름날 저녁 답답하고 더운 날씨를 벗어나 잠시 산책하면서 문래창작촌을 구경하고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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