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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견훤왕릉(견훤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극과 극을 달린 인생

by 휴식같은 친구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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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왕릉(견훤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극과 극을 달린 인생



지난 연휴에 시골에 가는 도중 논산시 연무읍을 지나면서 견훤왕릉 표지판이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견훤하면 후백제를 건국한 왕이면서 백제땅에서 배출한 마지막 왕으로 대부분 알고 있을 텐데요.

견훤 왕은 한 국가를 건국하여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대적하던 영웅적인 측면도 있지만, 말년엔 왕위를 넷째 아들에게 넘겨주려 하면서 아들들에 의해 적이었던 왕건에 의탁했고, 화병으로 등창으로 비참한 생을 마감한 극과 극을 달인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견훤왕릉은 진위의 논란은 있지만, 그동안 견훤묘 또는 왕묘 혹은 왕초말랭이라 불리면서 내려온 곳이라 후백제를 기억하는 유일한 유적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견훤왕릉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논산훈련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 시설없이 큰 봉분 하나만 놓여 있어 쓸쓸했던 견훤의 마지막을 보는 듯합니다.

 

견훤 묘 진입로 모습
묘 주변에 공터가 있어 주차하면 됩니다.

후백제 왕 견훤(~936)상주 가은현(문경시 가은읍) 사람으로 아자개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900년에 완산(전주시)을 도읍으로 정하고 후백제를 세워 한 때는 후삼국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으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아들 신검과의 내분으로 936년 후백제는 고려에 멸망하고 맙니다.

 

 

견훤의 죽음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는 '걱정이 심하여 등창이 나 수일 후에 황산불사에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 은진 조에는 '견훤의 묘는 은진현의 남쪽 12리에 떨어진 풍계촌에 있는데, 속칭 왕묘, 왕총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견훤왕릉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맑은 날에는 전주의 모악산까지 보인다는데, 모악산이 어디쯤인줄 몰라서 알아보진 않았지만 이날도 맑아서 보였을 것 같습니다.

 

견훤왕릉 모습입니다.
무덤은 직경이 10m, 높이 5m, 둘레가 83m나 되는 크기의 규모로 왕릉다운 규모의 무덤입니다.

 

왕릉 옆에 세워진 이 비석은 1970년 견씨 문중에서 후백제왕 견훤릉이라고 적어 세웠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이 즉위하면서 몇몇 신하들의 횡포로 정치기강이 무너졌고,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의 원망과 봉기가 심해졌습니다.
이때 견훤이 경주의 서남 주현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가는 곳만다 백성들이 호응하며 진성여왕 6년(892)에 무진주(광주시)를 점령했습니다.

 

견훤은 그의 나이 34세인 900년에 완산주에 입성하여 나라 이름을 후백제로 정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오월과 후당에 사신을 보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해상의 거점도 확보하여 국제적인 외교활동도 벌였고, 이 무렵 북쪽에서도 궁예의 태봉이 자리잡고 있었고 후에 왕건이 권좌를 차지하여 국호도 고려로 바꾸어서 착실히 세력을 다지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고려 왕건과 라이벌관계를 유지해오다 934년 홍성 땅인 운주에서 왕건의 군대와 전쟁을 벌여 큰 패배를 당한 후 아들과 신하들에게 고려에 복속할 뜻을 밝혔습니다.

 

 

이때 이찬 능환의 음모로 장남인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석 달 만에 유폐에서 도망친 견훤은 왕건을 찾아가 몸을 의탁할 것을 말하고 후백제를 치기를 바라니,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10만 대군을 몰고 내려간 왕건에 신검은 제대로 대적해 보지도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훤은 스스로 일구었던 후백제를 세운지 45년 만인 936년에 왕건에게 내주고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그해 9월 8일 금산사에서 나이 일흔에 명을 다했습니다.
죽을 때 전주 완산이 그립다고 유언하여 완산을 향해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권력이 아들에게 버림을 받을만큼 비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는데요.
견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처참한 최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에서는 견훤이 포악하고 비참하게 그려졌는데 그는 원래 용맹스러운 장수였고, 왕건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그의 생애는 꿋꿋했습니다.
고려시대에 와서 승자 편에서 기록되는 역사를 감안하면 오롯이 믿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견훤왕릉에서 보이는 금산과 전주 풍경입니다.

원대한 꿈을 키워 후백제를 건국했지만, 아들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견훤.
그가 죽을 때까지 가보고 싶던 완산이 보이는 곳에 누워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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