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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무령왕릉 발굴 50년, 국립공주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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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발굴 50년,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백제의 비상을 꿈꾸었던 웅진에 자리하고 있으며 1946년 4월 1일 웅진 백제 문화를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 공주의 대표적인 박물관입니다.

웅진백제를 주제로 하는 전시실과 충청남도의 역사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요.

 

금년이 무령왕릉 발굴 50년을 맞이하여 기획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발굴 50년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인 공주 웅진의 역사와 백제 무령왕릉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전시를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공주시 웅진동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공주 여행지의 대부분이 공산성과 송산리고분 등 주위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주차장 모습입니다.

 

주차장 좌측으로는 공주한옥마을이 있고, 박물관 동쪽으로는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서쪽 금강유역에 공주의 지명으로 알려진 고마나루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주여행, 공주한옥마을 숙박체험하면 좋겠어요

 

국립공주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야간개장 4~10월 중 토요일 18:00~21:00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연휴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무료

 

박물관 앞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정문에 자리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

 

이 모형은 50년 전 무령왕릉 널길에서 발견된 진묘수를 7배 확대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 162호 진묘수를 박물관 대표 문화재로 선정하여 수호신의 의미로 설치한 것이라고 하네요.

 

진묘수는 중국 고대부터 나타나는 상상의 동물로 무덤을 지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진묘수는 머리에 뿔이 있고 몸에는 날개가 달려 있으며, 신체의 일부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로 붉게 칠해져 있습니다.

 

먼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기획전시실을 찾았습니다.

입구에 있는 웅진백제 어린이 체험실이 있고, 로비에는 무령왕 한일교류 20년 기념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2021. 9.14 ~ 2022.3.6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에 우연히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덤 입구에 놓인 지석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부흥시킨 제25대 무령왕 부부임을 알려주었고, 이후 백제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올해가 바로 무령왕릉이 발견, 조사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특별전시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연계하여 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전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1971년 발견 이후 무령왕릉 출토유물 전체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중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새롭게 전시하였고, 기획전시실에서는 1971년 무령왕릉 조사와 지금까지의 연구성과, 앞으로의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무령왕릉의 발견 및 조사

 

1971년 7월 5일 발견, 7월 7일부터 9일까지 단 3일간, 17시간 만에 유물수습을 종료하였다고 합니다.

8월과 9월, 10월에 3차에 걸친 추가조사가 있었지만, 당시의 부실한 발굴조사는 현재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발견된 송상리 고분군 1호분부터 6호분, 그리고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무열왕릉 전경입니다.

 

입구에 세워져 있던 진묘수가 이곳에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무령왕릉 조사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진묘수였고, 1446년 동안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길이 48.6cm, 높이 32.2cm, 무게 48.5kg

 

발견 당시에는 오른쪽 뒷다리가 부서져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무령왕릉의 것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 국보 1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령왕릉 막음벽돌

모두 614장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기획전시실에서 나와 상설전시실로 이동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1층에는 1전시실은 웅진 백제실인데요.

웅진백제기(475~538)를 중심으로 한성백제 후기부터 사비백제 초기까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무령왕릉과 백제사

 

묘지석에는 무령왕은 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에서도 501년 즉위하여 523년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령왕은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는 설, 개로왕의 아들이라는 설,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라는 설 등이 있는데요.

태어난 곳은 일본의 규슈 작은 섬으로 알려져 있고, 태어난 이름은 도군, 생전 이름은 사마(일본어로 섬)라고 합니다.

 

 

무령왕릉은 벽돌로 만든 무덤이며 그 연원을 중국 남조에서 찾고 있습니다.

왕릉 길이는 7.03m, 널길은 2.83m, 너비는 1.03m, 높이 1.53m인 좁은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

 

웅진백제는 6세기 전반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지로 중국 남조와 왜 등 주변국가와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중국 남조와의 우호관계는 백제의 부흥과 함께 국제적 위상회복을 이루어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잔, 청동사발, 청동바리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묘지석(국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께서 나이가 62세 되는 계묘년(523) 5월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525) 8월 12일에 안장하여 대묘에 올려 모시며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한다'

 

무령왕릉에 있던 부부의 관

수종은 금송으로 원형을 참고하여 새로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왕릉에서 발견된 수많은 못과 꺽쇠

 

왕과 왕비가 누워있던 자리에 있던 베개와 다리받침

수종은 주목으로 전체적으로 옻칠을 하였습니다.

 

왕비의 시상

시상은 시신을 관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판으로 왕비의 것만 확인되었습니다.

수종은 금송입니다.

 

신선의 세계를 담아낸 은잔

 

왕비 머리 쪽에서 발견된 은잔은 뚜껑과 잔,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에는 화려한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은잔에 새겨진 음각들

 

청동받침 중앙(우)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둘레에는 톱니무늬를 새겼으며 그 사이에는 신수들을 새겼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새의 몸을 한 인면조가 손에 꽃을 들고 있고, 용과 사슴, 새 4마리가 연꽃 사이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은잔 겉(중앙)에는 연꽃무늬를 돌리고 그 위에 용 3마리를 돌아가며 새겼습니다.

 

뚜껑(좌)에는 꽃봉우리 모양의 꼭지를 달고, 아래에는 작은 연꽃무늬 금판을 붙였으며, 그 밑으로 큰 연꽃을 새겼습니다.

뚜껑 아래에는 산봉우리를 4구역으로 배치하고 봉우리 사이에 봉황과 새, 사슴, 나무를 배치하였습니다.

 

그 시대에 은잔에 음각기술을 새겨놓은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기술이 아닐 수 없네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온 무령왕의 이름과 생김새에 대한 내용입니다.

 

관꾸미개

 

무령왕릉 발굴 당시 관에 있던 진묘수 모습

 

왕과 왕비의 목관

 

목관은 일본열도에 자생하는 금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전후 측면에 마구리 장식을 하였습니다.

 

용, 봉황무늬의 고리자루 큰칼도 발견되었습니다.

 

왕비의 금귀걸이(좌)와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우)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국보급 유물만 해도 17점이나 됩니다.

 

왕비의 청동거울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연꽃무늬 벽돌

당시 중국 지배층의 무덤 양식을 따라 만든 벽돌무덤입니다.

 

양직공도

 

양직공도는 중국 양무제의 아들 소역(후 원제)이 526~536년 무렵 양에 파견된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고 사신들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사신 왼쪽에 제목을 적고 나라 이름과 산천, 풍속을 기록했으며, 양나라와의 관계, 공납물품 등을 적었습니다.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후대의 모사본에 13개국에 대한 기록과 그림만 남아 있습니다.

 

백제국사 조에는 백제에 종속된 9개 소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9개 소국은 신라와 가야제국을 포함한 남방지역 나라들로 백제 사신은 주변국가들을 소국으로 낮추어 보고 백제가 대국임을 과시하였습니다.

 

무령왕대에 이룩한 대내외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한 백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기록입니다.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하였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제6집 지리집 2권 강역고 변진별고에 나온 문구로 웅진 백제전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층으로 이동하면 충청남도 역사문화실이 있습니다.

충청남도 역사문화실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충남의 선사, 고대, 중근세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선사문화와 최초의 도구, 뗀석기

그리고 신석기인의 자원활용

 

고대문화와 고대문화의 기틀인 마한

 

고대로 이끄는 힘은 역시 철입니다.

 

백제시대 토기들

 

충청감영과 호서예학

 

국립공주박물관 로비에 있는 전시물

 

서혈사지 석불좌상(보물 979호)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부처상입니다.

 

부처에게서 나오는 빛 장식

 

국립공주박물관 야외전시 모습

 

공주 대통사 석조(보물 148호, 149호)

석조는 물을 담아 쓴 큰 물통으로 백제시대의 석조라고 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지금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국보와 보물 등 5200여점이 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공주 여행하는 날 이런 전시를 볼 수 있어 무척 유익한 시간을 가졌네요.

 

역사기행의 시작은 바로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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