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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절두산 순교성지와 한국 천주교순교자박물관(김대건 신부 전시)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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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성지와 한국 천주교 순교자박물관(김대건 신부 전시)

 

 

오랜만에 합정역에 일 보러 갔다가 양화진 역사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순교자묘원에 들렀습니다.

 

 양화진 역사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양화진공원에서 한강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좌측 편에 절두산 순교성지와 한국 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당산철교 북단, 강변북로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작은 산 위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 절두산 순교기념지 표지를 보고 10분 정도 도보로 이동하면 됩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한국 천주교순교자박물관을 담았습니다.

예전에는 절두산 순교박물관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한국 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절두산은 본래 북악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한강에 가로막혀 불뚝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잠두봉이라 불린 산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도가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했고, 1956년 잠두봉 일각을 매입한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잠두봉을 절두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 10월에 침범합니다.

조선 정부는 교전 후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에서 주로 처형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거슬러 올라왔던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 프랑스 함대의 조선 침범 책임을 묻기 위한 것과 일부러 보여주기 식이라 합니다.

수천이 목숨을 잃었지만, 기록된 확인자 수는 고작 29명(무명 5명 포함) 뿐이라고.

 

꾸르실료회관이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육관입니다.

 

꾸르실료(Cursillo)는 스페인어로  과정, 코스(Course)를 말하는 Curso와 short라는 의미의 접미사 -illo의 합성어로 단기과정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차장 쪽에 있는 절두산 순교자기념탑 모습입니다.

순교자는 8천여 명이지만 기록상 남은 순교자는 무명인 5명을 포함해 고작 29명이라고 하니 참으로 애석하네요.

 

이승훈 베드로(1756~1801) 동상

 

이승훈은 1784년 2월 북경에서 예수회의 그라몽 신부로부터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서적 및 십자고상, 상본 등 많은 성물을 국내에 들여와 이벽,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등과 신자 공동체를 형성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한강 양화대교 모습

 

강변북로 당산철교 방향으로 지나가다 보면 절벽 위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입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차장은 별도로 있으니까 차를 가져가면 주차하면 되고요.

 

아래 망원 한강공원 망원 1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바로 위가 절두산 순교성지이기도 합니다.

망원한강공원 주차장 주차비는 30분에 1,000원, 추가 10분당 200원입니다.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교육관

 

서울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사적 3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형 풍광이 아름답고 한양 도성과 가까워 사대부와 문인이 많이 찾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네요.

 

절두산순교성지로 들어가는 입구 

 

항아리 단지

 

성녀 마더 데레사 동상

 

마더 테레사는 가톨릭 수녀로 1928년 수녀회에 들어가 평생을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죠. 

1948년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하여 전 세계적으로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시복되어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20년 폴란드 태생으로 1946년 사제수품, 1967년 추기경 서임(바오로 6세교황), 1978년 재264대 교황으로 피선, 2005년 선종했습니다.

 

김대건 신부 동상(성 김대건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모방 신부를 통해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 교육을 받았고,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임명되었습니다. 

 

조선에 돌아와 전교 활동과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던 그는 기해박해 때 순교했습니다. 

그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진후는 50세 때 교인이던 아들의 권유로 입교한 후 1791년의 박해 이래 수차례 검거되어 고문과 귀양 등의 고난을 겪다가 1814년 충청남도 해미 옥중에서 순교했고, 이에 할아버지 택현은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했으며, 김대건은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제준은 다시 내포로 이사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성모동굴 성모상과 봉헌초 모습

 

강변북로와 당산철교 모습

 

한강과 여의도 풍경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상

 

절두산 순교성지 십자가의 길

 

박순집의 묘와 성 남종삼의 흉상

 

순교자들의 시신을 발견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박순집

그의 일가족 16위 순교자 공적비도 있습니다.

 

남상교(아우구스티노)의 청덕거사비

남상교는 성인 남종덕의 백부이자 양부로 현풍 현감으로 재직 시 어려울 때 백성들에게 성정을 베풀어 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절두산 성당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전시와 '오랜 기다림, 영원한 동행'이라는 주제의 김대건 신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09:30 ~17:00

관람료(입장료) 무료, 자율적인 봉헌금

휴관일(휴무일)은 매주 월요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전시 모습

1층은 한국의 천주교 역사, 2층은 절두산 순교성지의 내용, 지하는 김대건 신부의 일생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에 관항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찍지는 못했습니다.

 

양화진 잠두봉이 절두산이 되다.

 

양화진은 서해의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인데요.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입으로 발생한 병인양요 때 양화진까지 침범한 것에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인의 피로 씻어낸다며 양화진을 천주교인 처형지로 삼은 곳입니다.

 

조선에 말씀이 깃들다

 

18세기 조선은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서 천주교를 접했습니다.

이후 18세기 후반부터 학문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훈은 이벽의 권유로 중국 북경의 천주당을 방문하여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785년 김범우(토마스) 집에서 가진 종교집회 발각, 1787년 이승훈과 정약용 등 유생들이 천주교 교리를 연구한 일의 발각, 1791년 모친의 신주를 불태운 윤지충과 권상연의 진산사건 발생 등으로 100여 년에 걸친 천주교 박해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1794년 중국 북경의 주문모 신부를 맞이하며 신자가 만 명을 넘어섰으나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와 노론은 남인세력 제거를 위해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1801년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 등이 죽은 신유박해가 발생했습니다.

 

조선대목구 설정, 보편교회의 일원이 되다

 

신유박해 후 교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북경 교구와 로마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1년에 조선에 대목구를 설정하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파견했습니다.

 

브뤼기에르는 4년 동안 조선입국을 시도했으나 결국 중국에서 순교했고, 이후 모방, 샤스탕, 양베르 주교가 차례로 입국해 조선 신자들을 돌봤습니다.

모방 신부는 사제양성을 위해 3명의 신학생을 선발해 마커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이들 중 김대건(안드레아)이 포함됐고, 1845년에 사제품을 받으면서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격변하는 국제사회 속 조선의 천주교회

 

1849년 철종이 즉위하고 안동 김씨가 주도권을 잡으며 안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은 1866년 천주교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4대 교구장인 베르뇌, 남종삼, 홍봉주 등이 체포되고 12명의 프랑스 선교사 중 9명이 순교하면서 8년간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개항 이후, 새로운 시대 한국천주교회의 소명

 

병인년에 불거진 프랑스와 조선의 갈등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표면적으로 해소되었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으로 혼란기를 거친 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25년의 기해박해, 병오박해 순교자 79위,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이 이루어졌고, 1984년에 시성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절두산 순교자 13위를 포함한 132위가 시복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1층 전시모습

 

2층은 절두산 순교성지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의 시작

 

순교 성인을 만나는 순간이 되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바로 이 자리에

 

기억의 유선, 백년의 여정을 위하여

 

지하는 기획전시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년 전 방문했을 때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년을 맞이하여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특별전을 했었는데, 지금은 김대건 신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김대건 신부와 관련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지만,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습니다.

 

성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오랜 기다림, 영원한 동행'이라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1857년 가경자, 1925년 복자,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한국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되어 선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

 

1821. 8. 21 충남 당진 출생

1836. 12 모방신부로부터 신학생 선발

1837. 6 마카오 조선인 신학교에서 공부 시작

1845.1 조선 교회 밀사들의 도움으로 조선 입국 성공

1846. 6 순위도에서 체포, 병오박해 발발, 

1846. 9. 16 25세 나이로 국문효수령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와 새남터 기념성당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지도상으로 표시하고 있는 모습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바라본 김대건 신부 동상

 

본인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신앙을 전파하는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요?

무신론자로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시퍼런 칼날 앞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일이란 아무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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